[최승룡의 시선(詩線)] ④ 아이들은 세상을 그립니다

최승룡 2023. 10. 24.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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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을 만났다. 낡은 3∼5층 연립주택에벽화들이 그려져 있다. 감탄했다.
거리 미술관이 나를 찾아왔다.
알마티의 젊은 예술가들이 함께 만든
작품이라고 했다.아름다운 도시를 위해,
낡은 주택에 사는 주민들에게
자부심을 주기 위해 작업했다고 했다.
▲‘The children are painting the world’ 벽화

키르기스스탄 알틴 아라샨 민박집에서 카라콜 시내로 가는 길, 구소련 군용차량을 개조한 ‘푸르공’을 탔다. 올 때처럼 걸어서 내려 가려고 했는데 밤새 급체로 힘들었다. 걸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푸르공을 탔더니 아이자말(16)이 있다. 울고 있다. 2박 3일 머물렀던 민박집에서 일하는 아이이다. 짧은 만남이지만 잘 웃고 상냥해서 친해졌다. 여름 내내 민박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집에 가는 길이란다. 내일이 9월 1일 새 학기 시작이란다. 민박집 식구들과 헤어지는 것이 아쉬워서 눈물을 흘리는 것이었다. 차가 떠날 때 손을 흔들며 더 슬프게 운다. 울지 말라고 달랬다.

잠시 후 아이자말이 묻는다. 내일이 BTS 정국의 생일이 맞는지. 이름은 들어 봤지만 얼굴도 잘 모르는데 생일을 어떻게 알겠냐만 그런 것 같다고 했다. 정국을 좋아한다고 한다. 차은우도 좋아한다고 한다. 한국 음식 중에는 떡볶이를 꼭 먹고 싶다고 한다. 한국 드라마에서 많이 봤단다. 방금까지 눈물 콧물 쏟아내더니 지금은 한국 얘기를 하면서 계속 웃는다. 민박집 일손을 거들 때는 씩씩하고 당찼지만 아이자말도 십 대 소녀이다.

카라콜에 도착했다. 밤거리에 활기가 넘친다. 거리에서는 축제가 열린다. 아이스크림, 음료수, 간식을 파는 가판과 이동식 놀이기구에 어린아이들이 타고 있다. 8월 31일 오늘이 키르기스스탄 32주년 독립기념일이다. 중앙아시아 5개국(카자흐스탄·우즈베키스탄·키르기스스탄·타지키스탄·투르크메니스탄)은 1991년 8월 31일 소련이 무너지면서 독립했다. 독립기념일 축하 행사가 너무 소박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우리는 8·15 광복절을 어떻게 보내는지, 우리가 더 무심하지 않은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숙소로 가는 길에 ‘이식쿨 고등학교’가 있다. 학교 안 풋살장과 농구장에서는 학생들이 힘차게 뛰어다닌다. 운동장에서 뛰노는 아이들은 언제나 어디서나 기특하다. 김용택 시인의 ‘아이들이 뛰노는 땅에 엎드려 입 맞추다’가 떠올랐다.

우즈베키스탄 부하라, ‘칼랸 미나렛’ 야경을 보러 왔다. 한 젊은이가 다가온다. 한국 사람이냐고 묻는다. 5개월 동안 학원에서 한국어를 배웠단다. 고등학교 2학년 ‘아사디 벡(17세)’, 서울대 유학을 목표로 공부한다고 한다. 날마다 이곳에 와서 여행을 온 한국 사람을 찾아 ‘한국어 실전’을 한단다(내 피부가 원래 검은 데다가 여행으로 정말 까만데 한국 사람으로 봐주니 고마웠다). 가장 기억나는 사람은 블라디보스토크를 출발해 부하라까지 온 부부라고 한다. 그 부부의 힘찬 기운이 아사디 벡에게 가득 전달됐으리라. 세상에는 아사디 벡처럼 공부 열정이 넘치는 사람, 부부처럼 여행 열정이 넘치는 사람을 비롯해 열정 가득 힘차게 살아가는 사람이 참 많다.

오래된 성이 잘 보전된 히바. 6시부터 광장에서 민속 공연이 시작된다. 여행객들이 자리를 잡는다. 아이들은 광장을 뛰어다니며 논다. 태평소와 비슷한 소리를 내는 악기를 시작으로 공연을 시작한다. 한 아이가 맨 앞 무대에 기대어 넋을 놓은 채 구경한다. 공연이 끝나자 얼굴에 아쉬움이 가득하다. 타슈켄트 티무르 박물관에서는 유물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아이를 봤다. 한 아이는 광장의 공연에, 한 아이는 오래된 문화재에 마음을 가득 보낸다. 박물관에 있는 아이를 광장으로 내몰아서도 안 되지만 광장에 있는 아이를 박물관 안으로 집어넣어서도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은 다 똑같지만, 또한 다 다르다.

중앙아시아 여행을 와서 곤혹(?)스러운 일을 만났다. 아미르 티무르 박물관을 구경하고 나오니 대학생들이 외국인 대상 프로젝트를 한다며 영어로 인터뷰 요청을 한다. 안 한다고 할 수도 없고, 정중하고 진지한 질문에 길거리 서바이벌 영어로 버벅거리며 대답하느라 애먹었다. 인터뷰를 마치니 학생들이 진지한 얼굴을 풀고 어디에서 왔는지 나이가 어떻게 되는지 묻는다. 한국에서 왔다고 했다. 활달한 모습으로 “감사합니다. 한국 좋아해요. 한국 가고 싶어요.”라며 서툰 우리말을 건넨다.

카자흐스탄 알마티, 트램을 타고 20분 갔다. 어딘지 모르는 곳. 내려서 구글지도에 숙소를 찍었다. 4.5㎞. 경포호 한 바퀴 정도 거리. 걸었다. 행운을 만났다. 낡은 3∼5층 연립주택에 벽화들이 그려져 있다. 감탄했다. 거리 미술관이 나를 찾아왔다. 구글링했더니 유명한 작품들이었다. 알마티의 젊은 예술가들이 함께 만든 작품이라고 했다. 아름다운 도시를 위해, 낡은 주택에 사는 주민들에게 자부심을 주기 위해 작업했다고 했다. 벽화의 주제는 생활 모습, 사회 문제, 도시 상징 등 다양했다.

한 그림 앞에서는 더 오랫동안 서 있었다. 그림 아래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The children are painting the world’.
 

▲ 최승룡

◇최승룡= 중등사회교사, 강원도교육청 대변인, 교육과정과장, 강원도교육연수원장으로 일했다. 실크로드, 유라시아에 호기심이 많아 이곳을 안내하는 책, 여행을 좋아한다. 8월 중순∼9월 말 중앙아시아 몇 나라를 여행하며 이곳의 지리와 문화, 우리와의 친연성을 6차례의 연재를 통해 강원도민일보에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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