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듦’에 대하여[2030세상/김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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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부모님이 집에 들르셨다.
"와, 되게 오랜만이다! 그때 나한텐 제일 야한 영화였는데. 아빠 옛날에 우리 집 고전 명화 DVD 모았었잖아. 기억나?" 혼자가 익숙한 공간에 부모님이 계시니 왜인지 꿈같았다.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 '나이 듦'으로 주제가 옮겨갔다.
피부도 전 같지 않아 피부과 상담을 갔다가 "적은 나이는 아니시니까"라는 당연한 말을 듣고 한동안 마음이 싱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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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34세. 흘려들었던 이야기들이 이젠 내 차례가 되는 것 같다. 점심 한 끼 잘 챙겨 먹고 나면 종일 딱히 배고프지 않고, 똑같이 운동하는데 살이 붙는 느낌이다. 피부도 전 같지 않아 피부과 상담을 갔다가 “적은 나이는 아니시니까”라는 당연한 말을 듣고 한동안 마음이 싱숭했다. 한 해 한 해 다르다는 말이 무언지 이제 조금 체감하는 구간에 들어선 듯하다. 이런 이야기를 늘어놓자 아빠가 말했다. “우리 딸이 벌써 그렇게 됐나?”
얼마 전 만 61세 아버지는 응급실에 다녀오셨다. 아침 산책을 하고 왔는데 갑자기 말이 안 나왔다고 했다. 뇌 주변부에 경미한 출혈이 있었지만 다행히 약물로 치료할 수 있는 수준이라 온 가족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빠는 말이 안 나오자 순간 눈앞이 아득해졌다고 했다. “아, 이렇게 병원 신세 지다가 삶을 마감할 수 있겠구나, 생각 들더라니까.” 건강만큼은 잘 지키고 살자 노력했는데 나이 드니 어쩔 수 없더라는 말도 덧붙이셨다.
그간 ‘삶’이라 하면 자연스럽게 2030의 얼굴을 떠올렸다. 각종 미디어에서 일터에서 흔히 ‘주인공’으로 다루어지는 반짝이는 시절의 얼굴들과 ‘청춘’, ‘사랑’, ‘꿈’ 같은 뜨겁고 거창한 단어들을 함께 떠올렸다. 그런데 100세 시대, 그 구간은 고작 20년. 청춘은 정말 찰나이고, 사실 인생의 상당 부분은 어제보다 덜 예쁘고 덜 건강한 스스로의 육신을 받아들이는 과정, 나이 듦의 설움과 무대 뒤편으로 물러나는 초연함을 체득해 가는 기간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어쩌면 그게 ‘삶’의 진짜 얼굴인지도.
반짝였던 나의 학창 시절 사진을 뒤적여 본다. 그땐 맘에 안 들었던 얼굴도, 통통하다 여겼던 젖살도 지금 보니 마냥 예쁘다. 그때 어른들이 나를 보며 지었던 표정을 내가 과거의 나에게 지어 보인다. 작년에 회갑을 맞이하며 아빠가 말했다. “쉰 될 때는 크게 감흥이 없었어. 마치 서른 될 때처럼. 그런데 예순이 되니까 많은 생각이 들어. 꼭 마흔 될 때 같아.” 그 마흔조차 나는 아직 겪어보지 못했다.
근래 부모님은 종종 죽음에 대해 말씀하신다. 당신들의 장례 방식을 당부하고 휴대전화 잠금 패턴을 굳이 공유한다. 그때마다 나는 질색을 하며 울상이 되지만, 예순의 나는 이날을 어떻게 회상할까. “아빠도 이 나이는 처음이니까.” 우리 모두 이 나이는, 오늘은 처음이니까. 삶의 진짜 얼굴을 깨닫는 것은 아마 눈 감는 마지막 순간 즈음이 되지 않을까. 확언할 수 있는 것은 다만 이 한 가지. 마흔의 나, 쉰, 예순의 나는 서른넷 오늘의 내 사진을 보며 생각할 것이다. 참 반짝이던 시절이었다고.
김지영 스타트업 투자심사역(VC)·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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