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상은 철거, 유해는 방치…이럴 거면 홍범도 장군을 고려인 곁에 뒀어야”
카자흐스탄 고려인 3·4세
독립운동가들 기리고 있어
의병과 독립군은 국군 산실
정치인은 역사 이용 말아야
홍범도 장군은 1937년 69세의 나이로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를 당했다. 홍 장군이 이듬해 터를 잡고 말년을 보낸 카자흐스탄의 크질오르다에는 ‘홍범도거리’가 있다.
40여년간 독립기념관 등에서 독립운동사를 연구해온 이동언 선인역사문화연구소장(사진)은 지난 8월 초 이 거리를 찾았다. 국가보훈부가 주관하고 대한해협해전전승기념회가 주최한 국외 보훈 사적지 탐방 프로그램의 지도교수 자격이었다. 해군사관생도 7명을 포함해 고등학생·대학생 40여명으로 구성된 탐방단은 크질오르다시에 홍범도 장군을 설명하는 한국어·카작어(카자흐어) 현판을 기증했다. 본디 러시아어로만 소개글이 적혀 있던 터였다.
대한민국의 민족 영웅, 무장투쟁의 전설적인 지휘관이라는 한글 소개말을 만리타국에 걸고 온 지 한 달 만에 이 소장은 육군사관학교가 교내에 설치된 홍범도 장군 흉상을 외부로 이전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지난 20일 서울 양천구에 있는 도서출판 선인 사무실에서 경향신문과 만난 이 소장은 “홍범도 장군은 대한민국 국군이 존경해야 할 인물이지 배제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니다”라며 답답한 마음을 토로했다.
“우리나라 연구자들 가운데선 가장 최근에 카자흐스탄을 다녀온 사람일 것”이라는 그는 이번 탐방에서 소련에 의해 강제 이주를 당한 고려인들이 얼마나 먼 길로 내몰렸는지 체감할 수 있었다고 했다. 지금도 카자흐스탄 알마티 국제공항까지는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로 6시간 반 걸리고, 크질오르다까지는 거기서 1시간 더 걸린다.
이 소장이 만난 고려인 4, 5세들은 강제 이주당한 독립운동가들을 잊지 않고 기리고 있었다고 했다. 그는 “고려회관이라는 곳에는 홍 장군이 실제 입었던 예복이 남아 있었고, 거리에 홍범도·계봉우 선생 흉상도 잘 조성돼 있었다”며 “우리보다 우리 역사를 더 소중하게 여기는 모습이었다”고 했다. 탐방 이후 불거진 ‘홍범도 흉상 이전 논란’에 이 소장이 더 기가 찬 이유다. 육사는 지난 16일 홍범도·김좌진 장군 등 독립영웅을 기려온 충무관 내 ‘독립전쟁 영웅실’ 철거 작업에 착수했다.
이 소장은 정치인들이 역사를 폄훼하거나 이용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2021년 크질오르다에서 홍 장군의 유해를 송환해 올 때는 관심이 집중됐지만 지금은 대전현충원에 쓸쓸히 방치돼 있다. 그러더니 이젠 흉상을 치운다, 만다를 놓고 싸우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럴 거면 카자흐스탄에 있는 게 낫지 않았나는 생각이 탐방 이후 더 든다”고 했다.
이 소장은 홍범도 장군과 같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나선 의병들이야말로 국군의 산실이라고 했다.
그는 “의병이 독립군으로 발전해 싸웠고, 임시정부 정규군 광복군이 됐고, 그게 국군의 뿌리”라고 했다.
이 소장은 학자들이 할 수 있는 건 연구를 하고 글을 쓰는 일이라고 했다. 대한민국순국선열유족회가 발간하는 월간 ‘순국’ 2023년 10월호는 홍범도 장군 특집으로 꾸몄다. 이 소장의 카자흐스탄 탐방기와 홍 장군의 항일무장투쟁기를 다룬 역사학자들의 글이 다수 실렸다.
이 소장은 “주변 학자들 중에 홍범도 사태 이후로 분해서 잠 못 이루겠다는 분들이 많다”면서 “홍범도 지우기에 온 역사학계가 들고일어난 것만 봐도 이번 논란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인지 알 수 있다”고 했다.
전지현 기자 jhy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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