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원 확인이라도…' 아이 몸에 이름 적는 가자지구 부모들
[김효진 기자(hjkim@pressian.com)]
요아브 갈란트 이스라엘 국방장관이 임박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지상 공격이 1~3달 이어질 수 있다고 밝혔다. 주말 가자에 이틀 연속 인도주의적 구호 트럭이 진입했지만 물량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가자 사망자는 4600명을 넘어섰다. 생존에 대한 희망을 잃은 부모들은 죽은 뒤 신원 확인이 가능하도록 아이들의 몸에 이름을 새기고 있다.
<뉴욕타임스>(NYT), 이스라엘 매체 <타임스오브이스라엘> 등에 따르면 22일(현지시각) 요아브 갈란트 이스라엘 국방장관은 공군 사령부에서 가자지구 지상 공격이 "한 달, 두 달, 세 달 가량 이어질 수 있다"며 전쟁이 길어질 수 있음을 시사했다. 그는 이번 지상 공격은 "가자에 대한 마지막 작전이 돼야 할 것이다. 이후에는 하마스가 존재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난 13일 이스라엘군이 가자 북부에 대피령을 내린 뒤 가자에 지상군 진입이 임박했다는 관측이 나왔지만 실제 투입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데 대해 미 언론들은 미국이 인질 협상 및 민간인 보호를 위해 이스라엘에 지상 공격 지연을 권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가자지구를 통제하는 무장 정파 하마스는 지난 7일 이스라엘 남부 습격 당시 납치한 200명 이상의 인질 중 미국인 모녀 2명을 지난 20일 처음으로 석방했다. 미 CNN 방송은 해당 논의에 정통한 소식통이 미 정부가 가자지구에 구호 트럭을 보내야 할 필요성 및 "인질 전선의 진전으로 인해 이스라엘 지도부에 (지상 공격) 연기를 압박했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뉴욕타임스>도 복수의 미국 당국자들을 인용해 인질 협상을 위한 시간을 벌고 팔레스타인에 더 많은 인도적 지원 전달을 위해 미국이 이스라엘에 가자 지상 침공을 연기할 것을 권고했다고 보도했다. 매체는 2명의 미 당국자가 이러한 권고가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을 통해 이스라엘이 전달되고 있다고 말했다고 덧붙였다. CNN은 관련 보도를 이스라엘 고위 당국자가 "미국이 지상 작전에 대해 이스라엘을 압박하고 있지 않다"며 부인했다고 덧붙였다.
지난주 토니 블링컨 미 국방장관, 조 바이든 미 대통령, 리시 수낵 영국 총리 등 각국 고위 인사들이 이스라엘에 방문하며 지상 공격이 늦춰졌다는 분석도 나오는 가운데 이스라엘 총리실은 마르크 뤼테 네덜란드 총리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23~24일 연이어 방문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로이터> 통신은 뤼테 총리가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의 회담과 별개로 마흐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과도 회담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22일 미국, 캐나다,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영국 정상은 공동성명을 내 하마스와의 분쟁에서 "이스라엘과 이스라엘의 방어권에 대한 지지를 재확인"하면서도 "민간인 보호를 포함한 국제인도법 준수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지상군 본격 진입은 지연되고 있지만 가자지구 내부에서 이스라엘군 지상 작전은 이미 벌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2일 CNN은 하마스가 가자 남부 칸 유니스 인근에서 매복 중이던 이스라엘군 전차 1대와 불도저 2대를 파괴해 이스라엘군이 차량 없이 후퇴했다고 주장했다고 보도했다. 방송은 관련해 이스라엘군이 가자 내부에서 작전 중이었음을 확인했고 이스라엘군 전차가 자국군에 발포한 무장 세력을 공격했다고 밝혔다고 설명했다. 방송은 이는 가자 내부에서 발생한 첫 지상 전투 중 하나로 판단된다고 덧붙였다.
가자에 이틀 연속 구호 트럭…부모들, 사망 시 신원 확인 위해 아이 배·다리에 이름 새겨
유엔(UN)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에 따르면 전날 20대에 이어 22일 이집트에서 가자로 통하는 라파 검문소를 통해 14대의 인도주의적 구호 트럭이 이틀 연속 진입했다. 물, 의약품 등을 실은 구호 트럭 1대 당 적재량은 통상 10~20톤(t) 가량이다.
OCHA는 구호 트럭 14대 분량은 "적대 행위 전 가자로 들어오던 일평균 물품 규모의 3%"라고 지적했다. 분쟁 전 이 지역엔 하루 500~600대 가량의 구호 트럭이 들어갔다. 21일 들어온 구호 트럭엔 유니세프가 지원한 생수 4만4000병이 실렸는데 이는 2만2000명이 하루 쓸 분량 밖에 안 된다. 계속된 폭격으로 가자지구 인구의 절반 이상인 140만 명이 난민이 된 것으로 추정된다. 유엔 팔레스타인난민구호기구(UNRWA) 쉼터에 머무는 이들만 58만 명에 달한다.
더구나 반입된 구호품 중 연료가 없어 당장 전력 부족에 시달리는 병원의 긴급한 필요를 채우지 못하고 있다. 당장 인큐베이터에 있는 130명 신생아의 목숨이 위태롭다고 가자 보건부가 전했다. 공습 부상자가 늘며 가자지구에서 가장 큰 병원인 가자시티 시파 병원의 경우 5000명의 환자가 몰려 수용 여력인 700명을 훌쩍 넘겼다. 이스라엘은 분쟁 초기부터 연료와 식량 공급 차단을 포함해 가자를 완전 봉쇄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무차별 공습 사망자는 점점 늘어 가자 보건부에 따르면 7일부터 22일까지 가자 주민 4651명이 목숨을 잃었다. 전체 사망자의 40%인 1873명이 어린이다. 이스라엘 쪽 사망자도 1400명 가량으로 양쪽 사망자는 6000명을 넘어섰다. 이스라엘 쪽 사망자는 대부분 하마스의 이스라엘 남부 습격 당일인 지난 7일 발생한 것이다. 이날 하마스는 수백 명의 민간인을 살해하고 200명 이상을 인질로 삼아 대다수를 석방하지 않고 있다.
생존에 대한 희망이 옅어진 가자지구 부모들이 자녀들의 몸에 아이들이나 자신이 죽었을 때를 대비해 신원 확인용으로 이름을 적어 넣고 있다고 22일 CNN이 보도했다. 방송은 가자 중부 알아크사 순교자 병원에서 숨진 유아 1명과 어린이 3명의 종아리에 아랍어로 이들의 이름이 적힌 것을 발견했다고 전했다. 방송은 이들의 부모도 죽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알아크사 병원 응급실장 압둘 라만 알마스리는 CNN에 "부모가 아이의 배나 다리에 이름을 쓴 사례를 일부 접수했다. 이는 자신들이 언제든 공격 받을 수 있고 죽거나 다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이 병원의 주검 안치실 관리자는 방송에 밤새 200명이 넘게 죽었다며 아이들의 몸에 이름을 적는 것은 "가자에서 막 시작된 새로운 현상"이라고 말했다. 그는 "많은 아이들이 두개골이 부서진 채 실려 와 신원 확인이 불가능하며 (몸에) 적힌 (이름) 글귀를 통해서만 신원을 알 수 있다"고 덧붙였다.
확전 우려가 지속되는 가운데 이스라엘과 레바논 무장 조직 헤즈볼라의 교전은 이어지고 있다. 이스라엘군은 22일 밤부터 23일 새벽 레바논 국경에서 헤즈볼라 조직 두 곳을 타격했다고 밝혔다. 이스라엘군은 헤즈볼라가 이스라엘 영토를 향해 대전차 미사일을 발사할 계획이었다고 설명했다. <로이터>는 23일 헤즈볼라 쪽이 자세한 설명 없이 전투원 한 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이번 분쟁이 시작된 뒤 레바논 국경에서 7명의 이스라엘 군인이 사망했다.
<로이터>는 이번 분쟁에서 하마스와 헤즈볼라를 지원하는 이란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고 이란 당국자 9명을 인용해 보도했다. 분쟁을 방관하기엔 지역 내 패권 축소가 염려되고 직접 뛰어들기엔 막대한 피해가 예상되는 데다 이미 경제 등 국내 문제가 산적한 상황에서 대중의 분노가 촉발될 수 있다는 것이다.
3명의 보안 당국자는 통신에 현재 이란 최고 의사결정권자들 사이에서 헤즈볼라의 이스라엘에 대한 제한적 공격을 지지하고 이 지역 내 미국 목표물에 대한 낮은 수준의 공격을 허용하되 이란을 분쟁에 끌어들일 수 있는 대규모 확전은 방지해야 한다는 합의가 이뤄진 상태라고 전했다.
[김효진 기자(hjkim@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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