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 혁신위원장에 인요한…당내선 ‘반신반의’
김기현 “전권 가질 것”…일각 “대수술 집도할 수 있을까” 의구심
국민의힘이 23일 당 쇄신을 이끌 혁신위원장에 인요한 연세대 의대 교수(사진)를 임명했다. 인 위원장은 “와이프와 아이 빼고 다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고, 김기현 대표는 인 위원장에게 전권을 주겠다며 힘을 실었다.
당내에서는 “불편한 것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카드”(천하람 전남 순천·광양·곡성·구례갑 당협위원장), “대수술을 집도할 수 있을까”(윤상현 의원) 등 의구심이 제기됐다.
국민의힘은 이날 국회에서 최고위원회의를 열어 인 위원장을 혁신위원장으로 의결했다.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참패 후 12일 만이다. 김 대표는 이만희 사무총장 등 김 대표 체제 2기 인선을 하고 지난 16일 혁신위 출범을 공식화했지만 접촉 인사들이 연이어 혁신위원장직을 고사하면서 난항을 겪다 전날 인 위원장 수락을 얻은 것으로 전해졌다.
박정하 수석대변인은 “인 교수가 끝까지 망설이다가 어제 늦게 최종적으로 답을 했다고 김 대표가 비공개 회의 때 말했다”고 전했다.
인 위원장은 19세기 미국에서 온 선교사 유진 벨의 증손자로 2012년 대한민국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특별귀화 1호의 주인공이 됐다. 전남 순천 출신으로 2012년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 인수위원회에서 국민대통합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은 바 있다.
김 대표는 이날 최고위에서 “지역주의 해소와 국민통합에 깊은 안목과 식견을 가진 분”이라며 “정치개혁 필요성에 공감하고 투철한 의지도 가져 국민의힘에 최적의 처방을 내려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혁신위가 전권을 갖고 자율적·독립적 판단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인 위원장은 이날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이 총장, 김 대표와 상견례를 하고 혁신위원 선임 등 작업에 착수했다.
인 위원장은 기자들과 만나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 발언을 인용해 “와이프와 아이 빼고 다 바꿔야 한다”며 “국민의힘에 있는 많은 사람이 내려와서 듣고 변하고 희생할 각오가 돼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인 위원장은 또 “생각이 달라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자는 통합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혁신의 폭을 크게 하고, 최근 신당 추진설이 불거진 비윤석열(비윤)계와의 통합을 진행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인 위원장은 혁신위 구성과 활동 방향에 관해서는 구체적인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많은 사람 내려와야” 일성…‘공천룰 건드나’ 촉각 세운 여당
‘전권’ 쥔 인요한 혁신위 “생각 달라도 미워 말고 통합”
장예찬 “지도부 등 기득권 포기 각오를”…조해진, 실행 강조
천하람, 대통령실 관여 제기…윤상현 “집도 두고봐야” 온도차
보건의료노조 “부유층 위한 사보험 도입 주장한 인사…참담”
인 위원장은 총선 공천 룰 변경 논의에 대해 “(위원장의) 권한이 정확하게 어디까지인지 모르지만 국민의힘에 있는 많은 사람이 내려와야 한다”고 말했다. 혁신위 구성을 두고는 “아주 능력 있는 분들을 다 보고 있다”며 “여성이 많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인 위원장은 혁신위 활동 방향과 관련해서는 “당 안에서의 활동도 중요하지만 앞으로 대한민국 먹거리가 뭔지, 살아나갈 길이 뭔지, 선진국·7대 강국인데 어떻게 더 발전할 건가, (어떻게) 후대에 조금 더 좋은 세상을 물려줄 건가, 거기에 중심을 맞춰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당 지도부는 인 위원장에게 기대감을 표시했다. 장예찬 최고위원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과감한 변화로 가는 선택”이라며 “현역 의원도, 지도부도 기득권을 포기할 각오를 해야 한다”고 밝혔다. 당의 중진과 영남권 의원들에게선 현재 선거·공천 제도를 크게 뒤흔들 인선은 아니라는 생각에 안도하는 분위기가 감지됐다.
지난해 이준석 전 대표가 띄운 ‘최재형 혁신위’에서 부위원장을 지낸 조해진 의원은 YTN 라디오에서 “잘된 인사 같다”면서도 “(최재형 혁신안은 지도부가) 보고만 받고 사장시켜버렸다. 그 혁신위처럼 되면 안 된다”고 혁신안 실행을 강조했다.
비윤계와 수도권 선거를 준비하는 인사들 사이에선 비판이 나왔다. 천 위원장은 MBC 라디오에서 “흥미롭고 혁신적인 느낌은 나지만 실제 불편한 건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카드일 수 있다”고 말했다. 천 위원장은 인 위원장이 얼마 전 김한길 국민통합위원장과 대담을 한 사실을 들어 “어떤 방향성, 의도를 가지고 된 카드냐 지켜봐야 한다”고 대통령실 관여 의혹도 제기했다. 이에 대해 박 수석대변인은 “(대통령실 관여 없이) 당 내부에서 움직였다”고 부인했다.
윤상현 의원은 이날 채널A 유튜브에 출연해 “(인 위원장은) 국민통합위원장에 적절한 분인데, 총선에 바람을 일으키기 위한 대수술 집도의 역할을 할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했다. 국민의힘 상근부대변인을 지낸 신인규 정당바로세우기 대표는 BBS 라디오에서 “인 위원장 같은 좋은 분을 데려다가 이미지를 소비하고 본질은 안 바꾸는 불상사가 지속된다”며 “인 위원장이 당을 혁신할 거라고 전혀 믿지 않는다. 가능하지도 않다”고 말했다.
김희서 정의당 대변인은 논평을 내고 “용산 눈치 보기, 민생 외면, 여전한 기득권 정치 옹호는 계속하면서 혁신을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성역과 알맹이는 쏙 빠진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쇼로는 더 이상 국민을 속일 수도 없고, 물결치는 민심 이반도 막을 수 없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은 성명을 통해 “인요한 교수는 부자들이 더 손쉽게 의료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차별적인 시스템을 만들고 부유층이 이용할 수 있는 사보험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인물”이라며 “국민건강보험을 사회주의적이라고 비판하고 부자들을 위한 의료서비스를 강화하자고 주장하는 인사가 여당의 혁신위원장이라는 사실이 참담하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국민의힘은 침해할 수 없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정치 논리와 이념의 잣대로 재단하는 인요한 혁신위원장의 임명을 지금 당장 철회하라”고 밝혔다.
조미덥·문광호 기자 zorr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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