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의 인물과 식물] 마가렛과 마리안느, 그리고 소나무
구라탑(救癩塔). 한자를 병기해도 금방 이해하기 힘들다. 한센병 환자를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세워진 소록도 중앙공원의 탑이다. 부모 자식이 생이별하고 몇년 만에 길을 사이에 두고 마주했던, 시름과 탄식의 장소 수탄장(愁嘆場). 바람을 맞으며 서 있는 부모의 건너편에는 자식들이 바람을 등지고 서 있었다. 행여 천형(天刑)이 바람에 실려 갈까 걱정했기 때문이다. 이름은 아름답지만 삶은 처절했던 섬, 소록도.
부모 자식 간에도 쉽사리 만날 수 없었던 그곳에 환자를 돌보려 스스로 찾아온 사람이 있었으니, 수녀 마리안느 스퇴거와 마가렛 피사렉이었다. 그들은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 국립간호대학 출신으로 마리안느는 1962년에, 마가렛은 1966년에 소록도로 파견됐다. 오로지 봉사만을 생각했던 그들은 급여를 받지 않았고 열악한 숙소도 마다하지 않았다. 자신의 신분을 철저히 ‘자원봉사자’로 한정 짓고, 수녀로 불리기도 꺼렸다. 대신 ‘큰할매(마리안느할매)’, ‘작은할매(마가렛할매)’라 불리는 것을 좋아했다. 그들은 한국인 의사들도 주저했던 환자들의 짓무른 손발을 직접 소독하고 고름을 닦으며 치료했다.
40여년을 한센인과 동고동락했던 그들은 2005년 11월 ‘사랑하는 친구, 은인들에게’라는 편지 한 장 남기고 조용히 소록도를 떠났다. ‘소임을 다했고, 행여 주변 사람들에게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20대에 소록도에 와 70세가 다 되도록 한센인들을 돌봤으니, 한평생을 소록도에서 봉사한 셈이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2016년 5월16일, 국립소록도병원은 개원 100주년 기념사업으로 노벨 평화상 후보 추천과 함께 두 사람을 초대했다. 마가렛은 건강상의 이유로 참석지 못했다. 소록도를 다시 찾은 마리안느는 마가렛과 함께 살았던 사택 앞에 자라는 소나무를 한참이나 끌어안았다. 오랫동안 말없이 그들을 지켜보았던 소나무는 두 사람에게 커다란 위안이자 든든한 후원자였을 것이다. 마리안느는 소나무를 어루만지고 포옹하며 언어와 눈빛으로 전하지 못하는 또 다른 진심과 온기를 전했을 것이다.
지난 추석, 마가렛은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시신을 기증하며 주검까지도 타인을 위해 바쳤던 마가렛은 나눔과 섬김의 표상으로 우리에게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40년간 함께 살던 소나무가 솔바람으로 작별 인사를 한다. “그동안 고생했응께, 이제 편히 쉬씨요. 작은할매요, 고맙소잉.” 작은할매, 마가렛의 명복을 빈다.
이선 한국전통문화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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