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배터리 인력’ 이직 제한, 기술 혁신 발목 잡는다
독일의 자동차 기업 폭스바겐그룹의 배터리 전문 자회사인 파워코(PowerCo)는 이달 말 한국 배터리 인력들을 대상으로 하는 채용설명회를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연사는 LG화학과 삼성SDI 배터리 부문 임원으로 근무했던 한국인 파워코 배터리사업부 CTO가 맡는다. 노골적으로 한국의 배터리 인재들을 유럽으로 채용해 가겠다는 뜻이다. 오래전부터 글로벌 기업들의 한국인 배터리 인재 모셔가기가 이뤄져 왔지만 이렇게 대대적 홍보를 통해 채용 설명회를 개최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배터리 기술은 대한민국 경제와 외교·안보를 좌우하는 기술 패권 경쟁 시대에 기술 주권을 책임질 12대 국가전략기술 중 하나다. 국가 차원에서 배터리 기술을 육성하고 지원해 나가겠다고 선포했지만 글로벌 배터리 기업들은 더욱 적극적으로 한국의 배터리 인재 영입에 힘을 쏟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한국기업들 또한 배터리 인력 확보가 녹록한 상황은 아니다. 한국전지산업협회에 따르면 국내 배터리 업계의 부족한 인력은 약 3000명에 달한다. 국내 배터리 3사인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은 최근 1년간 5000여명의 직원을 신규 채용했지만, 여전히 배터리 인력난을 호소하고 있다.
놀랍게도 이 기업들이 1년간 채용한 5000여명의 인원 중 배터리 전문가라고 부를 수 있는 인력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2021년 SK-LG의 배터리 분쟁 이후 국내 배터리 기업 간 이직 길이 막혀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배터리 전문가들은 해외 배터리 기업이나, 자동차 산업 혹은 배터리와 아예 연관없는 산업으로 이직하고 있다. 즉, 배터리 기업의 총 직원 수는 증가하지만, 실력 있는 배터리 전문가의 수는 감소하고 있다는 뜻이다. 생산기술·제조 인력의 경우 디스플레이와 같은 유사 산업으로부터 인력 흡수가 가능하지만, 배터리 연구·개발(R&D) 인재는 채용이 불가능하기에 석·박사 신입 연구원으로 채워 나가야 한다. 이들이 배터리 전문가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세계 배터리 1위 기업인 중국의 CATL은 R&D 인력만 1만6000여명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이 중국이라는 배터리 강국에 맞서 배터리 기술 패권을 장악하기에는 시간과 전문가가 턱없이 부족하다. 노동 이동성을 통한 혁신이 필요하다. 과거부터 경제학자들은 노동 이동성을 R&D 지식의 중요한 파급효과 채널로 간주해 왔다. 배터리 이직 제한을 지속적으로 유지한다면 대한민국 배터리 기술의 혁신은 더 늦어질 수밖에 없다.
지금이라도 국내 배터리 기업 간의 이직 제한을 해제하고, 처우 개선을 통해 정당한 방식으로 인재를 확보해 나가야 한다. 그러면 인재들의 해외 유출은 줄어들고 신규 인력은 배터리 산업으로 더 빠르게 유입할 것이며, 배터리 지식은 더 확산할 것이다. 이를 통해 대한민국 배터리 기술 혁신은 가속화되어 결국 기술 패권을 주도할 수 있을 것이다.
안지은 카이스트 기술경영전문대학원 석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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