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헤즈볼라에 이스라엘 국경넘는 '제한적 공격' 허용"
전쟁 방관시 역내 영향력 상실 vs 적극개입시 군사 타격·여론악화
(서울=연합뉴스) 김지연 기자 =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와 이스라엘간 전쟁의 확전 우려가 제기된 가운데 이란이 레바논의 무장정파 헤즈볼라에 이스라엘에 대한 제한적 공격을 허용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2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란이 이스라엘과 하마스간 전쟁에 적극적으로 개입할지를 놓고 역내 영향력 유지와 자국 여론 사이에서 진퇴양난에 빠진 와중에 제한적인 개입으로 방향을 잡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란 내부 소식에 정통한 관계자들에 따르면 현재 이란 수뇌부가 의견 일치를 이룬 부분은 헤즈볼라에 국경 넘어 이스라엘 군사 표적에 대한 제한적 공격을 허용한 것이다.
레바논은 가자지구에서 북쪽으로 200㎞가량 떨어진 곳에서 이스라엘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
또한 이란과 연계된 역내 다른 무장단체들에 미국을 겨냥해 수위가 낮은 공격을 하는 것도 허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낮은 수위의 제한적 공격으로 본격적 확전을 피해 이란이 전쟁에 직접 휘말리는 일은 피한다는 것이다.
이란 관영 매체에 따르면 이란 의회 안보위원회의 바히드 잘랄자데 위원장은 지난 18일 "우리는 우리의 친구 하마스와 이슬라믹지하드, 헤즈볼라와 접촉하고 있다"며 "그들은 우리가 군사 작전을 수행할 것으로 기대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라고 주장했다.
자국을 기습 공격한 하마스를 섬멸하겠다고 선언한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지상전이 임박한 중대한 순간에도 이란이 이런 어중간한 입장을 취하는 것은 전쟁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도, 수수방관할 수도 없는 딜레마 상황에 있기 때문이다.
이란 내부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란은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전면전을 준비하는 국면에서 열외를 택한다면 역내에서 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지난 40년간의 전략에서 중대한 후퇴가 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이란은 그동안 적대국인 이스라엘에 대적할 수단으로 이스라엘 점령군에 대항한다는 팔레스타인의 대의명분에 힘을 실어 왔다.
또한 레바논 헤즈볼라부터 예멘 후티 반군에 이르기까지 중동 지역 곳곳의 무장단체들을 지원해 '대리 세력 네트워크'를 구축함으로써 중동 지역 내 영향력을 굳혀 왔다.
이란으로서는 이번 전쟁에서 손 놓고 있는다면 대리 세력들에게 나약함의 징후로 받아들여질 수 있고, 하마스와 이슬라믹 지하드를 통해 가자지구에 형성한 세력기반을 잃으면서 이 같은 네트워크에 구멍이 생기게 되는 셈이다.
그렇다고 미국의 지원을 받는 이스라엘을 대대적으로 공격한다면 그 반격으로 이란이 존립의 위협을 받을 수 있고 이미 경제난 속에 악화한 반정부 여론이 더욱 거세질 수 있다.
이스라엘은 자국을 공격한 하마스를 섬멸하겠다고 선언하고 즉각적으로 공습을 퍼부을 수 있는 군사력을 지니고 있으며,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있지는 않지만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나라다.
또한 군사 강대국 미국이 이란에 개입하지 말라는 경고로 동지중해에 항모전단과 전투기를 보내며 이스라엘의 등 뒤를 받치고 있다.
이란의 한 고위 외교관은 "이란 수뇌부, 특히 최고 지도자(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에게 최우선은 (이란) 이슬람공화국의 생존"이라며 "이란 당국이 이스라엘의 공격이 시작된 이후 강한 화법을 구사하면서도 직접적인 군사 개입에 당장 나서지 않는 이유"라고 말했다.
서방 제재와 경제정책 실패 등으로 인한 경제난, 히잡 의문사로 촉발된 대대적인 반정부 시위 등 이란 국내 여건상으로도 이란 수뇌부가 이번 전쟁에 개입할 여력이 없는 것으로 분석된다.
경제난 속에서 역내 영향력 확대를 위해 무장세력들에 자금을 지원하는 수십 년 된 대외정책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최근 수년간 이란에서 열린 반정부 시위에서는 "나는 가자도 레바논도 아닌 이란을 위해 내 삶을 희생한다"는 구호가 등장했다고 한다.
이란의 전직 고위 관리는 "현재 이란이 처한 미묘한 입장은 지역 내 이익과 내부 안정 사이에서 이란이 세밀하게 맞춰야 할 균형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cheror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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