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칼럼] 고장난 모사드, 자만은 치명적이다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 지상군 투입을 저울질하고 있다.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급습으로 무고한 인명이 '살육'되고 인질로 끌려가면서 이스라엘의 대규모 보복전이 거침없이 진행되고 있다. 이스라엘판 9·11이다. 세계 최고의 정보력을 자랑하던 이스라엘정보당국에게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정보전쟁의 실패는 세계의 화약고 중동에서 '아마겟돈'의 문을 열었다.
미 중앙정보국(CIA)의 정보력을 능가한다는 모사드(Mossad)의 굴욕을 보면서 오사바 빈 라덴의 9·11테러가 떠올랐다. 9·11 테러가 발생하기 한 달 전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책상에 한 보고서가 올라왔다. 작성자는 CIA 분석관들이었다. "빈 라덴이 미국을 공격하기로 결심했다"는 제목의 보고서였다. 부시의 반응은 '알카에다는 위험하구나'라는 정도에 그쳤다. 훗날 정보계는 이 보고서의 허점을 이렇게 지적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테러가 일어날 것'이라는 식으로 특정되지 못했다고 했다.
미국의 정보전의 실패는 8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본은 1941년 12월 7일 일요일에 진주만을 기습 공격했다. 하와이를 지키는 미 육군과 해군은 일부 인원만 빼고 달콤한 휴식을 즐기고 있었다. 미국은 그냥 앉아서 당했다. 일본은 공습이 시작한 지 1시간이 지난 후에서야 선전포고문을 미국에 전달했다. 당시 주미 일본 대사관에서 본국에서 온 암호 전문을 해독하고 이를 타이핑하는 것도 시간이 오래 걸렸다. 공습의 결과는 치욕스러웠다. 당시 미군과 민간인 등 2400여 명이 사망했다.
이같은 정보전의 실패가 이스라엘에서 반복됐다. 이스라엘은 대외정보기관인 모사드와 내무 첩보기구인 신 베트(Shin Bet·샤바크), 그리고 방위군(IDF) 산하 군 정보기관인 아만이 물샐틈 없는 세계 최고의 방첩 활동을 펴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스라엘은 레바논, 시리아 및 그밖의 지역 뿐만 아니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내에도 정보원과 요원들을 숨겨두고 있다.
그 뿐만 아니다. 지상에는 가자와 이스라엘 사이의 국경 철책을 따라 카메라와 지상 움직임 감지기가 촘촘하게 깔려 있다. 게다가 첨단 무기로 장착한 육군 정찰대가 삼엄한 경비 활동을 벌인다. 그러나 하마스 무장단체는 센서가 부착된 철조망을 절단하고 바다를 통해 패러글라이더를 타고 유유히 하늘에서 내려와 이스라엘에 진입했다. 이스라엘이 하마스의 기습에 완벽히 뚫리고 말았다.
아랍국가에 포위된 지정학적 불리함은 이스라엘 건국 초기부터 해결해야 할 절대 과제였다. 정보력의 강화는 생존 그 자체였다. 그렇게 모사드는 탄생했다. 모사드는 1938년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던 유대인들을 속속 불러들이기 시작할 무렵부터 태동했다. 건국 1년 후인 1949년, 이스라엘 초대 총리 벤 구리온은 이스라엘 정보기관들을 중앙에서 관장할 목적으로 모사드를 창설했다. 그 후 1951년 총리실 직속으로 구조조정돼 오늘에 이른다.
하지만 의문이다. 신출귀몰한 정보력을 가진 모사드가 어떻게 하마스의 동태를 놓칠 수 있었을까. 이스라엘군 정보부문을 총괄했던 전 장성은 이 원인을 두 가지로 요약했다. 극단적 이슬람주의를 추종하는 하마스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한 것과 방위력에 대한 과신이었다는 지적이다. 하마스가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 주민의 삶을 개선하기를 원한다고 믿고 싶어했고 수천명의 팔레스타인인이 매일 이스라엘로 와서 일할 수 있게 하면 하마스가 만족할 것이라고 판단했다는 건데, 치명적 착각이었다. 두 얼굴을 지닌 하마스를 제대로 읽지 못했다.
'사피엔스' 저자로 유명한 유발 하라리 교수는 하마스의 민간인 학살에 대해 이렇게 꿰뚫었다. "하마스의 목표는 이스라엘과 이슬람 세계에 있는 수백만 명의 마음에 증오의 씨앗을 뿌려 다음 세대들에서도 이스라엘과의 평화를 막는 것"이라고 했다. 모사드는 하마스의 위장 평화술에 유린 당했다.
중동 평화협정이 또다시 요원해졌다. 이스라엘은 2020년 아랍에미리트(UAE), 바레인, 모로코와 '아브라함 협약'을 맺고 관계를 정상화한 데 이어 이슬람 수니파 종주국인 사우디와도 국교 정상화를 모색해왔지만 하마스의 공격으로 논의가 올스톱됐다. 정보전의 실패가 국가운명에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꼭 되새겨야할 대목이다.
김광태기자 ktkim@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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