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이시여, 뉘우치는 뜻을 보이소서”…400년 전의 돌직구

한겨레 2023. 10. 23.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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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이 고통스러운 것은 전하께서 안민(安民)에 뜻을 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1635년(인조 13), 이조참의 유백증이 상소해 인조의 잘못을 말했다.

"유백증과 나만갑이 임금과 조정의 잘못을 비판한 것은 나라와 백성을 걱정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전하께서는 그들에게 벌을 내렸습니다. 이는 아름다운 일이 아닙니다. 나만갑을 파직하라는 명을 거두소서." 인조가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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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용 등을 모신 충렬사(강화군 선원면). 필자 제공

[왜냐면] 이경수 | 강화도 주민

“백성이 고통스러운 것은 전하께서 안민(安民)에 뜻을 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1635년(인조 13), 이조참의 유백증이 상소해 인조의 잘못을 말했다. 바른말 하는 신하는 벌주고, 아첨하는 신하들만 이뻐하는 인조에게 “언로란 국가의 혈맥입니다. 혈맥이 통하지 않고서 그 몸을 제대로 보존하는 자는 없습니다”라고 호소했다. 유백증은 또 임금을 바로잡지 못하면서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대신들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인조는 유백증을 잡아들여 심문하게 한 뒤 수원부사로 보내버렸다. 좌천이다.

대신들의 반응은 어땠을까? 좌의정 오윤겸은 유백증의 말이 옳다고 했다. “오랫동안 부당하게 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면서 여태 물러날 줄 모르고” 있던 자신을 반성하면서 사표를 냈다. 우의정 김상용도 유백증을 지지하며 사표를 썼다. 인조는 좌의정과 우의정의 사표를 받아주지 않았다.

이번엔 형조참의 나만갑이 상소해서 유백증을 좌천시킨 인조와 조정을 두루 비판했다. “임금에게 잘못이 있어도 말할 줄 모르고, 정사에 하자가 있어도 바로잡을 줄 모르니, 조정이 참으로 한심합니다.” “관료들의 비위를 적발하고, 임금에게 간쟁하는 소임을 맡은 이들이 외려 입 다물고 말하지 않으며, 윗선은 건드리지 못한 채 하급 관리의 잘못이나 들추어내면서, 책임을 다했다고 여깁니다. 하긴, 바른 소리 하면 임금의 진노를 사서 귀양 가는데, 누가 화를 자초하려 하겠습니까.” “반정(反正)한 신하들이 공을 내세워 함부로 토지와 백성을 취하고 재산을 늘리는 등 방자함이 점점 심해집니다. 단속하지 않으면 전하께 뒷날의 후회를 끼치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인조는 나만갑을 파직했다. 그러자 좌의정 오윤겸이 다시 나섰다. “유백증과 나만갑이 임금과 조정의 잘못을 비판한 것은 나라와 백성을 걱정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전하께서는 그들에게 벌을 내렸습니다. 이는 아름다운 일이 아닙니다. 나만갑을 파직하라는 명을 거두소서.” 인조가 대답했다. “파직으로 끝낼 죄가 아니다만, 내가 특별히 배려해서 가벼운 벌을 내린 것이다.”

이번엔 우의정 김상용이 나섰다. 글을 올려 임금의 처신이 잘못됐음을 지적했다. “바라건대 자신을 통렬히 꾸짖으시어 뉘우치는 뜻을 분명히 보이소서.” 임금이시여, 당신의 잘못을 철저히 뉘우치고 반성하시라! 신하가 임금에게 이렇게 말한 것이다. 에두르지 않았다. 엄청난 돌직구다. 이쯤 되면, 임금의 반응이 궁금해진다. 인조가 김상용에게 내린 답변은 이러했다. “유념하겠다.”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한 것이다.

2023년 가을날 ‘인조실록’이라는 창문을 통해 400년 전 봄날의 조정을 들여다봤다. 그때 인조 조정을 나는 아름답다고 평한다.

한편, 김상용이 인조의 반성을 촉구했던 그 다음 해에 병자호란이 터진다. 청군에게 강화도가 함락될 무렵, 강화성 남문루에 있던 김상용은 화약에 몸을 불사른다. 순절이었다. ‘백성을 전쟁이라는 구렁텅이로 떨어트린 죄, 누군가 책임을 지는 사람이 있어야 하지 않겠나.’ 이런 생각을 하며 김상용은 화약에 불을 붙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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