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비대’라서 과로사가 아니라는 쿠팡의 궤변…놀랍다”

한겨레 2023. 10. 23.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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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죽음, 산업재해]

지난 1월10일 이른 새벽 서울동남권물류단지에서 택배사 관계자가 분류 작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왜냐면] 한선범 | 전국택배노동조합 정책국장

지난 13일 사망한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CLS·씨엘에스) 위·수탁 택배기사 사망 사건에 대한 쿠팡씨엘에스의 언론 대응이 참으로 놀랍다. 고인에 대한 그 흔한 ‘유감’, ‘애도’ 표현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첫 마디가 “우리 회사 근로자가 아니다”였고, ‘쿠팡 택배노동자’라고 했다고 택배노조에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한다. 잘 모르는 분들이 보면 씨제이(CJ)대한통운 택배노동자가 사망했는데 택배노조가 “쿠팡 택배노동자가 죽었다”고 이야기한 것처럼 들리도록 만들었다.

과로사로 추정된다는 택배노조의 주장에 대해서는 이렇게 답했다. “심장 비대로 인한 사망이라는 국과수의 1차 부검 소견과 이에 따른 경찰의 내사종결 예정이라는 보도에도 불구하고, 택배노조는 고인의 안타까운 죽음마저 쿠팡에 대한 악의적 비난의 도구로 이용하고 있다.” 터무니없는 궤변이다. 국과수의 부검 결과와 경찰의 내사종결은 택배노조의 과로사 추정에 부합하는 결과이기 때문이다.

‘심장 비대’는 심근경색의 결과이고, 심근경색은 뇌·심혈관 질환이며, 장시간 노동으로 과로사하는 분들은 대부분 뇌·심혈관 질환으로 사망한다. 부검 결과는 고인의 과로사 인정에 필요한 핵심적 근거 두 가지 가운데 한 가지인 ‘사인’을 확인해 준 것으로, 택배노조의 과로사 추정에 부합한다.

경찰의 내사종결은 ‘타살’이 아니라는 뜻이다. 타살이 아니라 질환으로 사망했으니 타살 혐의가 있는지 수사할 필요가 없어 내사를 종결하는 것이지, 이것이 과로사가 아니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경찰의 내사종결이 과로사라는 노동조합의 주장에 부합한다.

그런데 쿠팡씨엘에스는 마치 “부검 결과와 경찰 수사가 과로사가 아닌 것으로 나왔음에도 택배노조가 ‘정치적 의도’로 ‘과로사’라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것처럼 만들었다.

과로사 인정의 두 번째 핵심 근거인 ‘노동시간’은 어떤가? 쿠팡씨엘에스는 택배노조의 기자회견 이후, 이에 대한 입장을 내면서 고인의 주 평균 노동시간이 55시간이라고 밝혔다. 심야노동은 ‘2급 발암물질’로 규정돼 있으며, 밤 10시부터 새벽 6시까지의 심야노동은 산재 질병 판단을 위한 업무시간 판정 때 30% 할증하게 돼 있다. 고인이 새벽배송 기사임을 감안하면, 산재 기준으로 70시간에 육박해 사회적 합의인 주 60시간 기준을 현저히 초과한다.

그 입장을 발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쿠팡씨엘에스는 ‘55시간’을 삭제한 뒤 이후 ‘52시간’이라는 문구를 추가했다. 그렇게 해도 할증하면 60시간을 훌쩍 넘긴다.

이러한 심야노동의 문제를 싹 무시한 채, 쿠팡씨엘에스는 “근로기준법 기준인 주 52시간 근무했는데 택배노조가 과로사라는 황당한 주장을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야간 할증 30%는 산재 업무상 질병 판단 기준일 뿐, 실제 업무시간 기준이 아니”란다. 이는 법령과 규정의 기본 취지를 외면한 채 법조문으로 말장난하는 전형적인 ‘법꾸라지’ 행태다. 그렇게 오래 일하면 위험하니 그런 판단 기준을 둔 게 아닌가?

이러한 쿠팡씨엘에스의 언론플레이로 이번 택배기사 사망사건은 “쿠팡 택배기사의 사망이 아니고, 부검 결과와 경찰수사 종결로 과로사가 아닌 것으로 판명 났고, 노동시간도 근로기준법상 주 52시간을 지켜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처럼 보인다. 거의 마술과 같은 언론플레이다.

그러나 마술은 결국 속임수에 불과하며, 아무리 현란해도 달라지는 건 없다. 쿠팡 택배기사는 새벽배송하다 사망했다. 사인은 심근경색에 따른 심장비대이고, 산재 인정기준으로 주당 노동시간이 60~70시간에 달했다. 과로사의 핵심 인정기준 두 가지를 모두 충족했다. 이는 고인의 특수한 사정이 아니라 쿠팡의 새벽배송 시스템 전체의 문제다. 오히려 고령이었던 고인의 노동시간이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반성 없는 쿠팡이 이를 개선하지 않으면, 과로사 사태가 재발하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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