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국감 나온 ‘발달장애인’
일본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는 ‘얼굴이 없는(가오나시)’ 캐릭터가 등장한다. 하얀 가면을 쓴 가오나시는 이름은커녕 목소리도 없다. 한국에서 살아가는 발달장애인들은 자신들을 가오나시에 비유한다. 우리 사회에서 보이지 않는 유령과 같은 대우를 받기 때문이란다. 이들은 지난 5월 한국피플퍼스트 주최로 열린 ‘발달장애인 참정권 확보를 위한 전시회-발달장애인은 유령이 아니다’에서도 가오나시 복장을 했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인기를 끌면서 발달장애에 대한 이해의 폭이 한뼘 넓어지긴 했다. 그러나 현실에선 드라마처럼 아름답지 못한 경우가 많다. 발달장애인 문석영씨도 그랬다. 태어난 지 4개월 만에 시설에 맡겨진 문씨는 그곳에서 25년을 살았다고 한다. 이젠 시설을 나와 중증장애인의 취업을 돕는 ‘동료지원가’로 활동한다. 그가 23일 동료지원가 187명을 대표해 국정감사장에 섰다. 그가 국감장에 나온 이유는 자신들의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서다. ‘동료지원가 사업’으로 불리는 ‘중증장애인 지역맞춤형 취업 지원 사업’이 내년도 정부 예산에서 전액 삭감돼 폐지될 상황에 놓였기 때문이다. 발달장애인 최초로 국감장에 선 문씨는 자신과 같은 중증장애인들을 돕는 동료지원가가 되고 나서야 “내가 쓸모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했다.
25만명에 이르는 발달장애인들에겐 ‘출근할 곳’을 찾는 것조차 쉽지 않다. 국내 발달장애인 10명 중 7명은 직업이 없다. 그래서 이들에게 또 하나의 버팀목이 되어주는 동료지원가 사업은 각별하다. 과거 정책이 복지서비스 수혜자로만 보는 데 그쳤다면, 이 사업은 경제활동 당사자로 본다는 점에서 출발부터 다르다. 그런데도 고용노동부는 ‘실적 저조’를 이유로 예산만 꾸준히 삭감해 왔다. 장애인이 일할 수 없는 세상의 구조적 문제를 정부가 동료지원가에게 떠넘겨 온 격이다.
문씨와 동료들은 예산 삭감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정부가 이제 와서 성과의 잣대를 들이대며 간신히 세상 밖으로 나온 이들의 작은 기회와 희망마저 없애선 안 된다. 드라마 <우영우>는 이렇게 끝난다. “제 삶은 이상하고 별나지만, 가치 있고 아름답습니다.” 함께 살아가기 위한 ‘그들’의 싸움을 지지한다.
이명희 논설위원 mins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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