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5:5 배분? 현장 상황 반영 못한 허무맹랑한 대책"

천선휴 기자 2023. 10. 23. 18:43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계명대 동산병원 배진곤 교수 전화 인터뷰
"지방 필수의료 전공의에 확실한 인센티브 줘야"
서울의 한 종합병원의 전공의들이 기숙사에서 나와 업무를 위해 병원으로 향하고 있다./뉴스1 ⓒ News1 김명섭 기자

(서울=뉴스1) 천선휴 기자 = "어떻게 그 병원, 그 과에 전공의를 갈 수 있게 할까 생각해야 하는데, 이쪽(수도권)을 밟아서 저쪽(비수도권)으로 공기가 쏠리게 하겠다? 지금 풍선이 터질 판국에 이런 생각이 가당키나 하냐는 겁니다. 오히려 서울에 있는 전공의마저도 없애버리겠다는 생각밖에 안 드는 거예요."

24시간, 365일 전국에서 가장 많은 고위험 산모를 받고 있는 '고위험 산모 신생아 통합 진료센터'를 책임지는 배진곤 계명대 동산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23일 뉴스1과 통화에서 정부가 수도권과 비수도권 전공의 비율을 현행 6 대 4에서 내년 5 대 5로 조정하기로 한 데 대해 열변을 토했다.

지방에서 필수의료의 최전선에서 일하고 있는 의사가 보기엔 필수의료를 살리겠다고 내놓은 정부의 대책이 현장의 상황을 조금도 반영하지 못한, 오히려 역효과만 불러일으킬 허무맹랑한 대책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오랫동안 "필수의료를 살려야 한다"고 외쳐온 배 교수가 이토록 가슴을 치며 "이렇게는 안된다"고 외치는 정부의 대책은 바로 수도권의 수련병원에 전공의 배치 인원을 줄이고, 비수도권을 늘려 전공의들이 지방 의료기관에서 훈련을 받을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지난 1월 모든 국민이 언제 어디서든 골든타임 내 필요한 필수의료를 제공받는 체계 구축을 목표로 한 '필수의료 지원대책'에 이 같은 내용을 담았다.

이런 정부의 의지는 지난 19일 정부가 발표한 '필수의료 혁신전략'에도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혁신전략에는 '전공의 수련·배정 체계를 개선해 지역‧필수 분야 경험 기회를 확대하고 필수진료 과목의 수련비용도 국가에서 지원한다'며 비수도권 배정 비율을 기존 40%에서 50%로 확대하는 방안을 재확인했다.

6 대 4로 정해진 전공의 배정 비율로 최근 10년간 배분된 전공의 수를 평균으로 계산해보면 전공의 3463명 중 2132명이 수도권에, 1331명이 비수도권에 배치됐다.

하지만 전공의 비율을 5 대 5로 조정하면서 수도권은 400.5명이 줄고, 이 400.5명은 비수도권에 배치된다.

정부는 의대 정원 증원과 연계해 전공의를 배정하면 중장기적으로 지역의 모자란 필수의료 인력을 확충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19일 오후 정부세종청사 브리핑실에서 '생명과 지역을 살리는 필수의료 혁신 추진전략'을 발표하기 위해 단상으로 향하고 있다. /뉴스1 ⓒ News1 장수영 기자

하지만 의사들의 생각은 다르다. 현재 6 대 4 비율도 유명무실할 정도로 지방의 필수의료 인력을 채우기 쉽지 않은 상황인데 4를 5로 늘린다고 해서 인력 부족이 해소되지는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거기다 그나마 수도권에서 필수의료를 하겠다는 전공의들마저 지방으로 내려가게 한다면 차라리 다른 과를 전공하겠다고 그만두게 되는 현상까지 생길 수 있을 거라는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배진곤 교수는 "필수의료를 할까 말까 많은 고민 끝에 '그래도 관심 있으니 해봐야겠다'고 마음을 잡은 사람에게 무조건 지방에 가야 된다고 하면 누가 하겠느냐"며 "버는 돈이 똑같아도 몸이 덜 고된 피부 미용을 택하지 지방까지 내려갈 만큼 필수의료는 매력이 있는 분야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심지어 작년엔 세브란스병원도 산부인과 전공의 정원을 못 채웠는데 수도권도 필수의료 분야 전공의를 줄일 인원조차 없다"며 "정부는 정원이 수도권은 많고 비수도권은 적어서 생기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부터 인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명하 서울시의사회장도 "인기 좋은 과는 경쟁률이 워낙 높으니 지방이건 서울이건 다 차겠지만 필수과는 그렇지 않다"며 "오히려 수도권에라도 전공의 지원을 하는 게 좋은 방안인데, 수도권 정원을 빼서 지방에 보낸다는 건 생각을 해봐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실제로 중증외상 분야로 유명한 경기 수원시 아주대학교병원의 경우, 최근 보건복지부로부터 정형외과 전문의를 4명에서 3명으로 줄이라는 통보를 받았다. 단순히 수도권에 있다는 이유에서다.

아주대병원 관계자는 "이미 우리 병원은 지금도 중증외상 환자 대비 전공의 수가 부족한데 이런 조치는 이해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문제의 중심에 있는 전공의들도 생각은 다르지 않다. 대한전공의협회는 지난 20일 ‘수도권-비수도권 5:5 전공의 정원 배정에 대한 정부의 일방적인 강행에 반대한다’는 성명서를 통해 지방의 필수의료 인력 부족 현상은 전공의 정원 배치 조정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다.

전공의협회는 "지역 의료 활성화를 위한 인력 배치 조정의 기본 취지는 공감하지만, 그 효과는 미미할 것이며 오히려 의료 현장에 큰 혼란을 가져올 것"이라며 △수도권에 근무하는 전공의들의 업무 부담 가중 △현재도 열악한 전공의 교육에 악영향 △비수도권 전공의 인력 확보의 어려움 등의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면서 "비수도권 전공의 지원을 높이려면 전공의와 의견을 조율하고 지방 병원의 수련 환경을 개선하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며 우선적으로 △의료 전달 체계 개편 △전공의 1인당 환자 수 제한 △전문의 중심의 진료 체계 구축 △전공의 교육 강화 △수련의 질 보장 등의 정책이 함께 수반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공의들의 이 같은 우려는 현직 의사들도 공감한다는 입장이다. 지금 당장 전공의 수를 늘려 배치한다고 해도 가르칠 의사조차 없는 지방 병원이 많다. 이는 수도권도 마찬가지다.

실제로 교육부에 따르면 올해 10월 기준 국가 거점 국립대 부설 종합병원 본원과 분원 17곳에 필수의료 분야의 병원당 평균 전임교수는 응급의학과 3.5명, 흉부외과 4.1명, 산부인과 4.8명, 소아청소년과 6.7명으로 집계됐다.

빅5 병원의 상황도 녹록지 않다. 빅5 병원의 한 산부인과 의사는 "수련병원에선 산과 교수들만 4명 정도는 돼야 후배를 양성하고 의료의 질도 높일 수 있는데, 현재 전임의가 없는 병원이 전국 수련 병원의 3분의 2에 이른다"며 "현장 상황을 보면 그저 속이 타들어간다"고 토로했다.

배진곤 교수는 "학생들이 바보도 아니고 확실히 트레이닝 받을 수 있는 곳에 가려고 할 텐데, 같은 지방대라도 전공의를 훌륭하게 훈련시킬 만한 병원에 돈을 더 지원하는 등의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며 "지방 국립대학의 인프라를 키워 서울로 가는 환자를 정말 막고 싶다면 무작정 인력 배치를 강제로 할 게 아니라 지방에 경쟁력 있는 과를 만들어주고 그에 따른 지원을 제대로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무조건 수도권의 인력을 강제로 누르는 네거티브 방식이 아니라 지방에서 필수의료를 하겠다는 전공의들에게 확실한 인센티브를 주는 등의 긍정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바라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sssunhue@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