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가계부채, 규제정책 안 통하면 금리 인상 고려"(종합)
성장 회복세 지연…반도체는 "좋아질 듯"
가계부채·물가 불확실성에 긴축 정책 필요
[서울=뉴시스]남주현 남정현 정성원 한은진 기자 = "부동산 시장 불황으로 완화했던 규제 정책을 먼저 타이트하게 하고, 그래도 가계부채 증가 속도가 안 잡히면 심각하게 금리 인상을 고려하겠다."
23일 한국은행에서 열린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한은의 가계부채 관리에 대한 국회의원의 질타가 쏟아졌다. 정부가 가계대출 완화 정책과 함께 한은이 올 들어 6 연속 금리 동결을 이어갔다는 점에서 가계부채 책임론을 피해가기 어렵다는 시각에서다.
우리나라의 은행권 가계대출은 한은이 금리 동결을 이어가는 가운데 올해 들어서도 매달 최고치를 경신하며 9월 1080조원을 경신했다. 국제금융협회(IIF)에 따르면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중이 2분기 말 기준 101.7% 수준으로 전 세계에서 스위스, 호주, 캐나다에 이어 네 번째로 높다.
이 총재는 가계부채에 대한 한은의 해결책에 대한 질의에 국감 내내 우선 정부의 미시적 정책을 취한 후 증가세가 꺾이지 않을 경우에는 통화정책을 사용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이날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금리 동결 자체가 대출 증가에 영향 미친 것이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이 총재는 "금리를 더 올릴 경우 가계대출을 잡을 수 있다. 그러나 이로 인해 생기는 금융시장 안정 문제는 어떻게 할 것"이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물가가 만약에 계속 올랐다면 계속 (금리를) 올렸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총재는 박대출 국민의힘 국회의원의 통화정책으로 가계부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냐는 질문에는 "통화정책을 통하는 것보다 미시적 정책으로 조정하는 것이 비용이 적게 든다"면서 "긴축 기조 유지하면서 가계부채 올라갈 수 있는 여력을 없애야 한다. 그래도 안줄면 금리 올릴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놔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경숙 민주당 의원의 가계부채 급증에도 6연속 동결했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1년 사이에 늘어난 게 아니라 지난 10년 사이 늘어왔고 부동산 가격 증폭될 때 많이 올랐다"면서 "이 순간에 증가한게 문제가 아니라 트렌드를 바꾸는게 가장 중요하다"며 한은의 책임론을 피해갔다.
이 총재는 우리나라 경기 전망에 대해서는 더딘 성장 회복을 우려하면서도 반도체 경기가 회복세에 들어섰다고 평가했다. 홍영표 민주당 의원의 "올해 경제성장률이 1. 4%로 잠재성장률보다 훨씬 아래"라는 지적에 대해 "잠재 성장률이 낮기 때문에 경기 '침체기'"라고 언급했다. 잠재성장률은 물가 상승을 초래하지 않으면서 달성할 수 있는 최대 성장률을 의미한다.
불황형 흑자의 장기화가 이어지고 있다는 양기대 민주당 의원의 평가에 대해서는 "올해 초에는 7·8월이면 반도체 경기가 회복될 것으로 예상했지만 10월 들어서야 회복세를 보이는 등 지연된 측면이 있다"면서 "11월에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수정할지 보고 있다. 현재는 1.4%로 예상하고 있다"고 했다.
다만 반도체 경기는 회복세를 전망했다. 정부의 경기 '상저하고' 전망에 대한 평가를 묻는 서영교 민주당 의원의 질문에 대해 이 총재는 "반도체는 좋아질 것 같다"고 답했다.
하지만 이 총재는 경기 부진에도 가계부채 관리와 물가 안정을 위해서라도 긴축 기조를 이어가겠다는 방침을 재확인했다. 이 총재는 모두발언을 통해서 "여전히 물가목표수준(2%)을 상당폭 상회하고 있다"며 "상당 기간 물가안정에 중점을 두고 긴축적인 정책 기조를 이어나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주호영 국민의힘 의원의 물가 상승률이 목표 수준을 웃도는 상황에 대한 질의에 대해서는 "이스라엘·하마스 사태에 더 오를 수는 있다"고 우려했다. 아울러 이 총재는 목표 물가 수정에 대해서는 "현 상황에서 목표치(2%)를 올리는 것은 일단 그 자체가 기대인플레이션을 확 올리는 문제가 된다. 현재 상황에서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일축했다.
이와 함께 이 총재는 한미 금리차 확대를 전망하면서도 외화 유출 가능성에 대해서는 우려할 만한 수준이 아니라고 진단했다. 그는 "금리 차가 벌어졌지만 외화 자금이 빠져나가는 상황은 아니다"면서도 "금리차가 얼마 이상이 되는지 안전하다는 건 사전에 없다. 외화자금의 움직임을 보면서 유연하게 (통화정책을) 결정할 것"이라고 했다.
이날 국감에서는 한은의 일시차입금 제도도 쟁점이 됐다. 양경숙 의원에 따르면 정부는 세수 결손을 메꾸기 위해 올해 1월부터 9월까지 정부가 한은으로부터 일시 대출한 금액은 총 113조6000원에 달하며 이에 따른 이자 비용만 1500억원에 달한다.
이 총재는 "정부가 중앙은행의 발권력에 의존한다는 면에서 단점이 있지만, 단기 유동성을 조절할 때 60일 이내에서는 더 효율적이라는 장점도 있다"면서 "일시대출금 문제는 장점과 단점이 있어 국회에서 한도나 부대조건 등을 논의해 개선 방안을 찾는게 개인적으로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CBDC(중앙은행 디지털 화폐) 도입도 도마에 올랐다. 한은은 금융위원회 및 금융감독원과 함께 미래 통화 인프라 구축을 위한 실험을 내년 말까지 공동 추진하기로 했다. 이 총재는 "미국이나 유럽에서 표준화된 시스템이 나오면 기술적인 안정성 등을 보고 실제로 실행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이 총재는 CBDC 도입에 따른 국민 통제 우려에 "중국처럼 중앙은행이 직접 통화를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은행을 통해 간접적으로 해 정보는 개인은행이 가지고 있다"고 대답했다. 고령층 등의 금융소외 현상 심화 지적에 대해서는 "CBDC를 도입해도 당분간 현금을 병존하는 시스템으로 운영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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