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선보공업 2세’ 최영찬 선보엔젤파트너스 대표 | “잇단 신사업 투자 실패…밖으로 나오니 답이 보였죠”
“많은 중견·중소기업이 산업의 위기를 신사업으로 풀어내려고 합니다. 수년간 내부 인재 수십 명을 투입해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죠. 성공하기 어렵습니다. 신사업을 추진했다가 실패하면 회사가 휘청거리기도 합니다. 저도 100억원이란 큰돈을 들여 신사업에 나섰다가 제품 상용화에 실패한 경험이 있습니다. 내부 자원이 아니라 외부 인재·기술에서 답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한 건 ‘이거라도 해보자’는 절박함 때문이었습니다.”
최근 서울 강남구 선보빌딩에서 만난 최영찬(43) 선보엔젤파트너스(이하 선보엔젤) 대표는 벤처캐피털(VC)을 차린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선보공업 2세다.
1986년 최금식 회장이 부산에 설립한 선보공업은 엔진을 제외한 배 부품 대부분을 만드는 곳이다. 2000년대 초부턴 이를 세계 최초로 모듈화해 제작·판매하고 있다. 사명인 선보(船寶)는 ‘배가 보배’라는 뜻이다. 선보공업은 지난해 매출 1670억원, 영업이익 89억원(선보유니텍·선보하이텍 등 계열사 합산)을 올렸다. 최 회장의 아들인 최영찬 대표는 미국 위스콘신대 경제학과 졸업 뒤 2005년 25세에 선보공업 생산직 사원으로 입사했다. 2016년 선보공업 신사업팀을 스핀오프(분사)해 선보엔젤을 설립했다. 선보공업 및 관계사의 자본금으로 투자하는 회사다. 비슷한 고민을 하는 다른 기업의 자본금도 투입한다. 현재까지 118개 기업에 총 368억원을 투입했다. 지분 가치는 1000억원으로 추산된다. 2017년에는 라이트하우스컴바인인베스트(이하 라이트하우스)를 설립하기도 했다. 혁신 산업으로 전환하기 위해 비슷한 고민을 하는 전통 산업 중견기업이 참여하는 국내 최초의 연합 VC다.
최 대표는 이처럼 외부에서 수혈한 혁신 엔진을 기반으로 선보공업을 신재생에너지 기업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2013년 선보공업의 지분 승계를 마무리 지었지만 아직 최 회장이 경영 일선에 있다.
선보공업에서 신사업을 담당했었는데.
“선보공업에 들어왔을 땐 조선업이 활황이었다. 대기업, 중견·중소기업을 망라하고 조선업을 하는 기업은 대부분 해양 플랜트 등 신사업에 투자하거나 해외 진출을 모색하던 시기였다. 하지만 대부분 실패했다. 나도 2008년에 100억원을 들여 선박 평형수 처리 장치(BWMS·선박 균형을 위해 탱크에 담는 바닷물 살균 장치)를 연구개발해 제품까지 만들었지만 이를 상용화해서 매출을 올리는 단계까진 가지 못했다. 만든 제품을 영업해서 판매까지 할 줄 몰랐던 거다. 연어를 운반하는 노르웨이 조선소가 매물로 나와 신사업으로 해볼까 싶어 현지 실사를 하고 인수합병(M&A) 검토도 했었다. 하지만 중견·중소기업의 이런 ‘묻지 마’식 신사업 투자 방식은 대부분 실패할 수밖에 없다.”
왜 그런가.
“기업의 자원 90% 이상이 당장 물건(서비스)을 만들어 팔고, 문제가 생기면 사후 관리(AS)하기 위해 존재한다. 신사업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이 없고, 있다 해도 인센티브가 없다. 운 좋게 좋은 아이디어가 회장까지 올라가더라도 오너의 직감에 의해 사업 여부가 결정되고 사후 관리도 전혀 안 된다.
‘100억원을 한 아이템이 아니라 10억원씩 10개에 나눠서 했더라면’ ‘많은 인력·시간을 들여 우리가 직접 개발할 게 아니라 외부 기술을 도입했더라면’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VC의 출발점이었다.”
선보엔젤은 어디에 어떻게 투자하나.
“조선뿐 아니라 자동차, 석유화학, 철강 등 화석연료에 기반한 산업을 하는 기업이 갑자기 인공지능(AI)이나 바이오에 진입하면 경쟁력이 없다. 화석연료는 결국 신재생에너지로 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선보공업의 미래로 생각하고 주로 투자하고 있다. 특히 수소 기술 기업은 신재생에너지를 저장·운송하기 위한 수단으로 각광받을 것이기 때문에 주목하고 있다. 예를 들어, 선보엔젤은 엘켐텍이라는 중소기업에 80억원을 투자해 2대 주주에 올랐다. 엘켐텍은 전기분해 기술을 이용해 물을 수소로 만드는 그린수소 발생기를 만든다. 세계적인 기술력을 갖추고 있으나 규모가 작고 품질이 낮고, 불량도 많았다. 선보유니텍에 에너지솔루션사업부를 만들어 엘켐텍의 그린수소 발생기가 탑재된 시스템을 국내 최초로 내놓을 수 있었다. 우리 제조 역량과 엘켐텍의 기술력이 결합한 결과다. 호주·유럽 등 해외 진출도 모색하고 있다.
울산과학기술원(UNIST)과 함께 탄소 포집 솔루션 개발 기업인 ‘카본밸류’라는 회사를 공동 설립하기도 했다. 아무리 수소를 써도 나올 수밖에 없는 탄소를 저장·재활용하는 사업을 한다. 여기에 직접 개입해 성과를 내고 있다. 지난 7~8년간 밖에서 오픈 이노베이션(개방형 혁신)을 추진하고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앞으로 선보공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 ‘신재생에너지 기업’이란 걸 명확히 알게 됐다.”
중견기업 연합 VC도 운영하고 있다.
“라이트하우스의 시작은 2015년 스타트업 공부 모임이었다. 선보공업을 포함해 태광, 조광페인트, 기성전선, 오토닉스 5개 회사 2·3세가 머리를 맞대고 공부해 보자는 취지였다. 스타트업 기업 설명(IR)을 듣고 소액으로 투자하거나 사업을 논의해 보기도 했다. 그러다 라이트하우스를 설립해 ‘지역 전통 중견기업들이 힘을 합쳐 성장 동력을 모색해 보자’고 공식화했다. 취지에 공감한 KDB산업은행이 먼저 펀드 조성을 제안했다. 2017년 산업은행과 파트너 중견기업이 돈을 댄 413억원 규모의 ‘중견기업 연합 펀드 1호’가 만들어졌다. 최근 2호 펀드가 700억원 규모로 조성됐다. 산업은행뿐 아니라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한국산업기술진흥원(KIAT)이 새롭게 참여했다.”
최근 2세 경영자가 바깥에서 미래 먹거리를 발굴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1세대 기업인들은 굉장히 보수적이다. 많은 2세가 ‘쓸데없는 짓 하지 말라’는 아버지의 벽에 부딪힌다. 하지만 아버지는 10년 전부터 토지·노동·자본으로 하는 산업은 끝났다고 판단했다. 운 좋게도 다양한 시도를 할 기회가 주어졌다.
조선, 철강, 반도체 등 산업이 성장하던 시기는 끝났다. 2·3세 경영자는 기존 산업에서 원가 절감, 생산성 향상 등을 해야 하는데, 조직 내에서 수십 년간 시행착오를 겪으며 노하우가 있는 임직원을 따라가기 어렵다. 그러니 내부적으로 2세를 뭐만 하면 문제를 일으키는 ‘시한폭탄’처럼 바라본다. 정보도, 네트워크도 부족한 지역 중견기업 2세가 신사업을 잘 발굴한다는 건 만만치 않다. 그래서 요즘엔 외부 VC 같은 방식으로 기여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Company Info
회사명 선보엔젤파트너스
본사 부산시 해운대구
사업 혁신 기술·산업 투자
설립 연도 2016년
누적 투자금 368억원
주요 투자처 신재생에너지, 수소, 이차전지
Copyright © 이코노미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