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산업혁명 바탕이 된 포용적 정치제도…정치의 힘

신동우 나노 회장 2023. 10. 23.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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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셔터스톡

고고학자들은 서기 1년 지구상 인구를 약 2억 명으로 추산한다. 서기 1500년에는 5억 명으로 1500년간 인구는 정체됐다. 산업화 초기인 19세기 초에는 10억 명, 2023년 80억 명이다. 지난 200년간 세계 인구는 8배 증가했고, 이 기간은 인류사에 혁명적인 시간이었다. 기대 수명은 2배 늘었으며 전 세계인의 평균 소득은 14배 증가했다. 1970년대에는 세계 인구의 40%가 하루 소득 2달러 미만의 빈곤선 아래였으나 2023년은 아프리카를 포함해도 10%에 지나지 않는다. 200년 전 인류 대부분은 문맹이었고, 대다수 농민은 끊임없이 노동해도 극빈자로 지냈다. 아이의 절반은 성인이 되기 전 죽었다.

신동우 나노 회장케임브리지대 이학 박사, 현 경북창조경제혁신센터 이사장, 현 한양대 특훈교수, 현 한국공학한림원 정회원

18세기 중반 영국에서 처음으로 산업혁명이 시작된 계기는 포용적인 정치제도였다. 영국은 권력을 분산하고, 재산권을 보호하며, 민간기업과 사회적인 이동성을 장려하는 포용적인 제도를 도입했다.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정치적 안정이 잠재된 군수 기술을 끄집어내 민수산업을 촉진, 경제성장을 가속했다. 정치적 안정과 과학기술의 진보를 통해서 우리는 무언가 창조하고 평등을 촉진하며 행복을 향상시켜 왔다. 2020년 기준으로 남북한의 경제 규모는 약 80배, 기대 수명은 11년 차이가 난다. 정치제도 차이로 이 격차가 벌어졌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집단이 있으면 정치가 있었고, 정치가 있는 곳에는 권력이 있었으며, 권력은 집단적인 협력을 가능하게 했다. 사람이 이룩한 모든 문명과 번영의 토대에는 정치의 성공이 있었다. 인간 집단이 질서를 잃어 무정부 상태가 된다면 과학과 기술의 발전은 불가능하다. 결국 정치의 성공에 의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 또한 정치는 무엇보다 분배에 따른 불평과 불만을 해소하는 역할을 한다. 큰 의미의 정치는 사람이 함께 모여 살 수 있는 규범과 규칙으로 질서를 유지하고 목적을 공유하게 한다. 작은 의미의 정치는 개인이 더 자유로운 환경에서 더 많은 가치를 획득하고 누리게 한다. 17세기 이후 등장한 국민국가는 이전까지 함께한 적 없는 사람들이 법 앞에 평등하게 사는 실험을 했다. 국민국가는 인종, 종교, 이념의 충돌을 정치 질서 안에 수용하여 사람들이 서로 적이 아닌 같은 시민이자 국민으로 같이 살게 하는 데 성공했다. 인류 최고의 발명품이다.

안정적인 권력은 설득과 수용의 과정을 거쳐 구성원에게 내면화된 권력이다. 권력은 구성원에게 해야 할 것을 강제하는 것이 아니라 구성원 스스로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권력은 끊임없이 비판받고 견제돼야 하며 이를 위한 법적· 제도적 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여야 한다.

전쟁과 정치는 적과 동지를 구분하는 데서 시작한다. 정치는 이기적 탐욕이 강해 필연적으로 적을 만들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전쟁과 달리 정치의 적과 동지는 수시로 변한다. 남한이 빠른 경제 발전을 이룰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로 북한과 경쟁이 일정 역할을 했다는 해석도 있다. 노태우 대통령은 1988년 7·7 선언에서 처음으로 북한을 적이 아닌 동반자로 규정한 바 있다. 1941년 1월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네 가지 자유를 언급했다. 언론과 의사 표현의 자유, 신앙의 자유, 가난과 결핍으로부터의 자유, 모든 공포로부터의 자유다. 정치의 적이 특정 집단이 아니라 변해야 하는 생각이 됐다. 이런 생각에 많은 이가 공감하면 사상이 되고 현실을 바꾸는 실제적인 힘이 된다.

우리 정치도 대한민국 공동체가 직면한 공멸의 위험, 즉 생산 가능 인구 소멸, 지방 소멸, 전쟁의 위험 등을 우리 정치의 적으로 규정하고 이 적들과 싸워서 이기기 위해서 국민적인 합의를 성공적으로 이끄는 정치가 돼야 한다. 먼저 생산 인구 확대를 위해서는 생산 가능 인구의 연령 폭과 인구 풀을 넓혀야 한다. 고졸 취업 확대, 정년 연장, 외국인 인재의 영주권 완화와 인공지능(AI)과 자동화를 적극 도입해야 한다. 지방 소멸을 막기 위해서는 소멸하는 지역 대학들을 중·장년 재교육 기관으로 전환해 인구 흐름과 지역 산업의 불씨를 살려야 한다. 결국 국가의 번영은 정치의 성공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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