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학수의 골프 오디세이 <152> 세계 최강 한국 여자골프의 추락 ⑤] 투타 겸업 야구 천재 오타니는 어떻게 단련됐나
한국 골프 선수의 성공 모델은 박세리(46)의 ‘맨발 투혼’이다.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위기 시절 당시만 해도 한국 선수는 불가능할 것 같았던 US여자오픈 우승컵을 들어 올리며 국민 영웅이 됐다. 20홀 연장 승부를 펼치는 가운데 연장 18번 홀 워터 해저드에서 양말을 벗고 맨발로 샷을 해 위기를 극복하던 장면은 두고두고 감동을 선사한다.
훗날 공동묘지 앞 담력 훈련은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지만, 상식을 뛰어넘는 극한의 훈련과 온 가족이 딸의 성공에 헌신해 세계 정상에 오른 박세리 모델은 한국 골프 선수들에게 명예와 부(富)를 이루는 하나의 성공 방정식이 됐다. 하지만 국내 투어 여건이 좋아지면서 세계 무대에 도전하려는 한국 선수들 열의는 예전 같지 않다.
자신의 꿈과 완성을 향해 무한 도전을 하는 새로운 박세리 모델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런 점에서 세계 최고의 야구 무대인 미 MLB(메이저리그 베이스볼)에서 현대 야구에서 매우 희귀한 투타 겸업(이도류·二刀流) 선수로 성공 가도를 달리는 오타니 쇼헤이(29)는 종목과 국적을 떠나 세계 스포츠 선수들에게 영감을 준다.
오타니의 야구는 불가능에 도전하는 정신
2018년 LA 에인절스에 입단한 오타니 쇼헤이는 신인왕, 리그 MVP를 거치며 최고의 선수로 성장했다. 올해 부상으로 시즌을 일찍 마감했는데도 단일 시즌 투수로 10승, 타자로 40홈런을 달성했다. 154년 MLB 역사상 최초의 일이다.
이종성 한양대 스포츠산업학과 교수는 “일본 야구계에서는 대체로 오타니의 이도류 선언을 무모한 도전이라고 봤다. 타자와 투수를 같이하게 되면 부상 위험도 커지고 체력적인 측면에서 힘들다는 게 주된 이유였다”며 “오타니는 이런 비판과 우려가 제기된 뒤, 더욱 이도류에 대한 열망을 강하게 드러냈다. 그가 생각한 야구는 불가능에 도전하는 정신에 있기 때문이었다”고 했다.
오타니의 도전 정신은 정교하게 시각화된 계획으로 현실화됐다. 그 중심에는 그가 고교 시절 활용했다는 자기 계발법의 일종인 ‘만다라트(Mandarat)’ 기법이 있었다. 만다라트는 핵심 목표 1개와 이를 달성하기 위한 세부 목표 8개로 구성된다. 여기에 세부 목표 8개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실천 과제 8개가 추가된다.
오타니의 핵심 목표는 일본 프로야구 8개 구단으로부터 드래프트 1순위 지명을 받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시속 160㎞의 공 스피드, 제구, 구위, 멘털, 몸만들기 등이 세부 목표로 제시됐다. 여기까지만 봐도 오타니의 고교 시절 계획표는 훌륭하다. 하지만 그의 계획이 정말 대단한 이유는 세부 목표 가운데 인간성과 운(運) 같은 부분이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인성 좋은 선수가 되기 위해 그는 예의, 지속력, 감사, 배려 등을 실천 과제로 삼았다. 또한 그는 인사하기, 쓰레기 줍기, 독서 같은 일을 꾸준히 실천하는 게 야구를 하는 동안 본인에게 행운으로 작용할 것이란 믿음마저 갖게 됐다.
오타니가 이처럼 야구와 무관해 보이는 무형적 가치에도 큰 의미를 부여했던 이유는 그저 8개의 만다라트 세부 목표를 채우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어떤 야구 선수도 도달하지 못한 신세계를 개척하기 위해서는 본인이 스스로 제어할 수 있는 부분을 극대화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는 야구는 다른 어떤 스포츠 종목 이상으로 매우 작은 결함 때문에 승부를 그르치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했다. 특히 투수와 타자 겸업을 목표로 했던 오타니에게 그라운드 안팎의 다양한 변수를 제대로 관리할 수 있느냐는 매우 중요한 문제였다. 그래서 그는 무형의 가치를 통해 자기 내면까지도 가다듬어야 한다는 생각까지 도달하게 된 셈이었다.
고교 은사가 강조한 ‘생각의 힘’, 오타니를 성숙시켜
일본 동북부 이와테현(縣)에 위치한 하나마키히가시(花卷東)고교 시절 오타니가 사려 깊은 계획을 세울 수 있었던 배경에는 사사키 히로시(48) 감독의 영향이 크다. ‘선입견은 가능한 것을 불가능하게 만든다’는 그의 야구 철학은 오타니가 주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도류 선수로 활약하게 되는 원동력이었다. 지난 3월 미국과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 결승전을 앞두고 오타니가 “오늘만큼은 미국에 대한 경외심을 버리자”라며 미국 콤플렉스에 빠져있던 일본 선수들을 독려한 것도 선입견을 버려야 한다는 사사키 감독의 야구 철학과 맥이 닿아 있다.
이처럼 사사키 감독은 선수들에게 ‘생각의 힘’을 강조했다. 1979년 일본의 한 경영 컨설턴트가 개발한 만다라트 기법을 오타니에게 추천해 준 사람은 다름 아닌 사사키 감독이었다. 그는 ‘수백 년 전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고 미래를 예측할 수도 있는 독서는 1000엔으로 할 수 있는 인생 최고의 투자다’라며 오타니에게 독서를 권유하기도 했다. 사사키 감독은 아무리 중요한 선수라도 특혜를 주지 않았다. 사사키 감독은 에이스 투수 오타니에게 화장실 청소를 시켰을 뿐 아니라 늦잠을 자느라 연습 시간에 늦었던 그를 팀 훈련에서도 제외했다. 사사키 감독은 오타니가 스타 의식에 사로잡혀 자만하지 않고 늘 겸손함을 갖도록 도와줬다. 그래서 야구 실력뿐 아니라 인성 측면에서도 귀감이 되는 오타니 성공 신화의 원류는 야구 감독이자 하나마키히가시고교에서 지리, 역사를 가르치는 교육자 사사키에서 찾아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야구라는 종교에 귀의한 것 같은 구도자(求道者) 오타니를 더욱 성숙하게 만든 건 고시엔(甲子園) 야구대회였다. 고시엔 야구대회는 우수 고교를 초청해 치르는 봄철 고시엔 야구대회와 3500개가량 되는 일본 고교야구팀 가운데 지역 예선전을 통과한 49개 팀만 참가할 수 있는 여름철 고시엔 야구대회로 나뉜다. 토너먼트 방식으로 치러지는 이 대회에서는 초고교급 선수라도 패배의 눈물을 흘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들은 야구가 혼자만의 힘으로 상대를 이길 수 있는 스포츠가 아니라는 점을 체득한다. 실패를 경험한 선수들은 겸손과 희생이라는 가치를 배우게 된다. 그래서 고시엔 대회는 재능 있는 야구 소년들이 인격적으로 성숙한 성인으로 성장하는 일종의 통과의례로 불린다. 오타니에게도 고시엔 대회는 그런 대회였다. 오타니는 고교 3년간 고시엔 대회 본선에 두 번 참가했다. 하지만 모두 1회전에서 고배를 마셨다. 특히 오타니가 3학년이었던 2012년 봄철 고시엔 대회에서의 패배는 뼈아팠다. 고교 투수 랭킹 1, 2위를 다투던 후지나미 신타로(29·오클랜드 애슬레틱스)와 맞대결에서 완패했기 때문이었다. 오타니는 이 경기에서 8과 3분의 2이닝 동안 9실점을 하며 쓰라린 패배의 아픔을 맛봐야 했다. 고시엔 대회에서 경험한 실패는 오타니가 시속 160㎞의 공을 던지는 개인적 목표뿐만 아니라 팀의 일원으로 내가 무엇을 더 해야 승리를 얻을 수 있을지 생각하게 된 계기였다. 실제로 오타니는 2012년 여름 고시엔 대회 지역예선에서 일본 아마추어 야구 역사상 최초로 시속 160㎞의 공을 던져 화제가 됐지만 지역 예선 결승에서 패해 본선 대회 출전은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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