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숙 칼럼] 포니의 이 대리
현대차 기적 가능했을까
과학두뇌 국가 책임져야
이제 시작인 학과의 환경은 열악했다. 연구에 쓸 자동차라고는 어디선가 기증받은 지게차 1대가 전부였다. 참고할 만한 변변한 서적도 없었다. 이충구는 청계천 중고책방을 돌며 미군의 차량정비 매뉴얼들을 구해다 사전을 뒤적이며 읽었다. 군대에서도 자동차 학습은 이어진다. 군이 보유한 자동차 기술은 민간보다 한 수 위였다. 그가 굉장한 이야기를 듣게 된 것도 그 무렵이다. 바로 현대의 자동차 진출 소식이었다.
당시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한창이던 때다. 자동차의 완전 국산화 구상도 거기에 들어있었다. 국산화 계획을 제출하지 못하는 회사엔 불이익을 주겠다는 발표에도 부품 조립 말고 해본 게 없던 업계는 꿈쩍 않고 있었다. 그때 "그거 내가 해보겠다"고 손 든 이가 다름 아닌 정주영 현대그룹 선대 회장이다.
정 회장은 미국 워싱턴에 출장 중이던 정세영 현대건설 상무를 급히 호출한다. 1967년 4월이었다. "포드가 한국 진출을 모색 중이니 접촉해 보라." 정 회장 지시에 정 상무는 디트로이트의 포드 본사를 급히 찾아갔다.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국내 자동차 수요뿐만 아니라 장차 우리나라 경제를 선도하는 수출 전략산업으로 키우겠다." 정 회장이 정부에 제출한 자동차사업 계획서에 들어있는 내용이다. 그해 12월 정부는 현대의 자동차 사업을 전격 승인했다.
이충구는 1969년 현대차 신입사원이 된다. 해안가 습지를 메워 급하게 조성한 울산 부지는 허름한 창고 한 동이 전부였으나 일터엔 약동하는 기운이 넘쳤다. 그가 맡은 첫 업무는 포드 코티나를 조립하는 작업자가 프로세스 시트대로 작업을 하는지 확인하는 일이었다. 포드사 기술진에겐 검사보고서를 제출했다. 한국 자동차 압축성장의 비밀이 담긴 '이충구 노트'도 여기서 시작된다.
고유모델 없이는 회사 미래도 없다고 생각한 정 회장은 호랑이 굴로 들어가고 있었다. 백방으로 수소문한 끝에 찾아낸 굴지의 디자이너 36세 조르제도 주지아로를 신차 스타일링 파트너로 삼았다. 고유모델 개발진에 이충구가 합류했다. 진용은 꾸려졌지만 무슨 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대한민국 첫 국산차 포니 프로젝트를 반드시 완수해야 한다는 것만 분명했다. 그를 포함한 5인의 드림팀은 주지아로의 '이탈디자인'이 있는 이탈리아 토리노로 그렇게 떠난다. 1974년 2월이었다.
포니는 그로부터 8개월 후 세상에 나왔다. 본격 생산은 이듬해이다. 기적이었다. 드림팀은 피 말리는 시간을 보냈다. 이충구와 그들은 밤마다 머리를 맞댄 채 낮에 들은 이탈디자인 직원들의 암호 같은 설명들을 퍼즐 맞추듯 정리해 갔다. 제도판의 이쪽저쪽에서 산발적으로 출발한 차체 도면은 3개월이 지나면서 자동차 꼴을 갖추게 된다. 이충구는 이 과정 전체를 사진 찍듯 세밀하게 기록했다. 이것이 신차 개발의 지침서로 불리는 전설의 '이대리 노트'다. 지난 2002년 최고기술경영자(CTO)에서 물러나 후학을 양성해온 이충구 전 사장이 최근 출간한 '포니 오디세이'가 이 노트를 집대성한 책이다.
포니의 성공 후 정 회장은 독자 엔진, 국산 부품, 기술 독립을 밀어붙였다. 수백 번의 좌절, 수만 번의 환희가 반복됐다. 그 결과가 세계 3위 현대차의 오늘이다. 여기에 수많은 이 대리의 도전과 열정이 없었다면 단언컨대 현대차의 지금도 없었을 것이다. 포니 신화는 의대 블랙홀 시대에 기술인재의 소중함을 일깨워준다. 미래 한국을 짊어질 인재들이 미용, 성형 도구를 잡기보다 실험실 불을 밝히게 하는 것이 국가가 할 일이다. 더 많은 이 대리가 나와야 희망이 있다.
jins@fnnews.com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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