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 증상 빠르게 찾고 노화세포만 골라 없앤다...인류난제 도전한 그랜드 챌린지 사업 중간 성과 살펴보니
실패 가능성 높아도 혁신적인 연구 과제 도전
자폐 스펙트럼 장애(ASD) 환자는 매년 늘어나는 추세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8년만 해도 2만6703명이었던 국내 자폐 환자는 작년에 3만7603명으로 늘었다. 불과 4년 만에 70%가 늘었다. 아직도 자폐를 숨기는 사회 분위기상 실제 환자는 이보다 더 많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추측이다.
사람들이 자폐를 숨기고 터부시하는 이유 중 하나는 이렇다 할 치료법이 없기 때문이다. 자폐는 사회 기술이나 언어, 의사소통 발달이 지연되거나 비정상적인 기능을 보이는 발달 장애인데, 아직까지 자폐가 왜 발생하는지 명확하게 밝혀지지도 않았다. 워낙 발병 원인이 다양한 탓에 치료제나 치료법도 확실하지 않다.
자폐 치료라는 불가능한 미션에 도전하는 과학자들이 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세계 최초·세계 최고를 목표로 혁신적인 주제를 발굴하도록 한 그랜드 챌린지(GC) 사업에 참여하는 연구자들이다. 윤석진 KIST 원장은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실패 가능성은 높아도 개척해야만 하는 미지의 영역에 대한 세계 최고 수준의 초고난도 연구”라고 GC 사업을 소개했다.
23일 서울 성북구 KIST 본원에서는 그랜드 챌린지 사업에 뛰어든 KIST 연구자들과 세계적인 석학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2023 글로벌 리서치 서밋’ 행사가 열렸다. 가장 큰 관심을 받은 건 자폐와 노화에 대한 연구였다. 자폐 분야에서는 구핑 펭 미국 메사추세츠공대(MIT) 교수가, 노화 분야에서는 브라이언 케네디 싱가포르 국립대 석좌교수가 참석해 KIST 연구진의 연구 결과를 듣고 코멘트를 남겼다.
KIST 뇌질환극복연구단은 자폐를 조기에 찾아낼 수 있는 방법과 치료제 개발 계획을 공개했다. 초소형 렌즈리스 형광 현미경을 개발해 자폐증 환자에게만 나오는 특정 뇌파를 조기에 진단하는 기술이다. 연구를 주도하고 있는 김정진 KIST 선임연구원은 “자폐증을 일찍 진단만 하면 행동치료나 적절한 관리를 통해 유아기 이후 사회적응이 쉬워진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며 “문제는 자폐증은 의심이 되더라도 병원에서 다른 질환이나 장애로 진단을 내리는 경우가 많아서 조기에 진단이 어렵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선임연구원은 자폐증을 조기에 진단해 적절한 치료를 제공할 수 있는 시기를 ‘크리티컬 윈도우’라고 불렀다. KIST 연구진은 이 크리티컬 윈도우를 찾기 위한 방법을 연구하고 있는 셈이다. 김 선임연구원은 “자폐의 시기별·증상별 뇌활성-뇌파와의 상관성을 규명해 영아기 자폐 진단 기술을 개발하고 더 나아가 자폐 치료 후보물질을 찾으려고 한다”며 “1단계 연구를 통해 특이한 뇌활성을 찾았고 치료제 후보도 찾은 상태”라고 설명했다.
KIST 연구진은 마우스 실험을 통해 확인한 연구 성과를 사람에게 적용할 수 있는 2단계 연구를 준비하고 있다. 김 선임연구원은 “프리클리닉 수준까지 가는 것이 우리의 목표인데 확실하게 말은 못하지만 10년 안에는 뚜렷한 결과물을 내는 것이 목표”라며 “이 기술을 이용하면 자폐뿐 아니라 치매를 비롯해 다양한 뇌질환의 원인과 치료법을 찾아내는 것도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화도 KIST가 도전하는 과제다. KIST 화학생명융합연구센터는 면역시스템을 이용해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노화세포를 제거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생체 내 노화 지방세포와 면역세포 간 상호작용을 찾아낸 뒤, 노화세포만 선택적으로 제어하는 항노화 기술을 확보하는 게 목표다.
김세훈 KIST 책임연구원은 “노화를 제어하기 위해 항노화나 역노화 방식을 많이 연구하다가 최근에 주목받는 분야가 노화세포 자체를 제거하는 기술”이라며 “기존에는 약을 이용해 노화세포를 제거하는 방식을 많이 연구했는데 이렇게 되면 부작용이 생기기 때문에 우리는 노화세포를 안전하게 제거할 방법을 찾기 위해 연구를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KIST 연구진이 주목한 건 내장지방이다. 내장지방은 나이가 들면서 계속 증가하고 노화세포가 가장 많이 발견되는 곳이기도 하다. 내장지방은 여러 병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김 책임연구원은 “내장지방의 노화세포를 제어하면 전신의 노화를 지연시킬 수 있다는 가설을 세우고 연구를 시작했다”며 “지난 2년 동안 지방조직 내 노화세포와 면역세포 간 상호작용을 찾았고, 실제로 노화세포를 사멸하는 것도 확인했다”고 말했다.
KIST 연구진은 2단계 연구를 통해 이런 상호작용을 바탕으로 실제로 지방조직 내 노화세포를 성공적으로 제거할 구체적인 방법을 연구할 계획이다. 김 책임연구원은 “나노의학을 동원해 국소적으로 노화세포를 제거할 방법을 연구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KIST 그랜드 챌린지 사업에는 인공 광수용체를 도입해 망막이 손상된 환자의 시각능력을 복원하는 기술과 효율이 30%가 넘는 초고출력 용액공정 태양전지 기술, 셀룰로오스 나노 소재 기술 등이 있다.
김복철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 이사장은 “실패 없는 안정적 연구에서 벗어나 고위험, 도전적인 연구 문화를 조성한 KIST의 새로운 도전은 모범적인 사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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