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1차로만 정속 주행" 불만…전남에 한국형 아우토반, 가능할까?

박세용 기자 2023. 10. 23.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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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아우토반, 어디에 추진되나?


최근 전남 목포에서 제104회 전국체전 개회식이 열렸습니다.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개회식 전날 윤석열 대통령은 김영록 전남지사와 만찬을 가졌습니다. 이 자리에서 김 지사는 "광주-영암 아우토반이 목포를 연결하는 고속도로 역할을 한다"면서 "2025년 국가계획에 반영해 달라"고 윤 대통령에게 건의했다고 합니다. 한국형 아우토반은 윤 대통령의 광주 지역 공약이기도 합니다. 전라남도가 구상하고 있는 한국형 아우토반은 광주 승촌IC에서 서영암IC까지 47km 구간, 건설비용은 2조 6천억 원에 달합니다.

고속주행시 브레이크 밟는 속도는?


"전남 장의사, 상조업체 대박", "폭주족 놀이터 될라". 전남 아우토반 건설 소식이 전해지자, 기사에 달린 댓글 가운데 하나입니다. 아우토반을 과속하면서 아무래도 사망사고가 많아질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습니다. 그래서 고속주행시 안전 문제를 연구한 국내 논문을 찾아봤습니다. 2017년 서울시립대 교통공학과에서 나온 "고속주행상황의 운전자 인지-반응시간에 관한 연구"라는 논문이 있었습니다. 실제로 고속주행을 하면서 반응시간을 연구하면 위험하므로 시뮬레이션을 통해 나온 논문입니다.

차량이 시속 100, 120, 140km로 달릴 때 돌발 상황을 인식하고, 실제로 브레이크 밟는 시간을 측정했습니다. 연구는 앞 차량이 급제동하거나, 도로에 돌이 떨어지는 돌발 상황을 가정하고 있었습니다. 연구 결과는 상식과 다소 어긋나는 것 같았습니다. 갑작스러운 상황이 생기면 브레이크 밟는 속도가 미세하게 빨라지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시속 100km로 달리다가 140km/h로 속도가 올라가면, 브레이크 밟는 속도가 0.1초 안팎으로 빨라진다는 것입니다. 아무래도 고속주행시 운전자가 좀 더 긴장해서 브레이크 반응 속도가 빨라지는 것으로 보입니다.

독일 무제한 아우토반, 사망사고 데이터는?


앞서 국내 논문은 속도를 140km/h까지만 가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독일 아우토반에서는 훨씬 더 빠른 속도의 차량이 많습니다. 시속 300km를 훌쩍 넘어, 최고 시속 400km로 질주하는 슈퍼카 영상도 유튜브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물론 아우토반 중에서도 직선으로 쭉 뻗은 구간을 선택하고, 도로에 차량이 많지 않은 시간대를 골라 촬영했다고 하지만, 보는 사람이 긴장될 정도의 엄청난 스피드입니다. 마치 레이싱 게임 화면을 보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이런 상태에서 브레이크 밟는 시간이 0.1초 안팎으로 빨라진다는 것이 큰 의미를 가질 것 같지는 않습니다.

실제로 사망 교통사고 데이터는 누적되고 있습니다. 독일 아우토반은 전체 구간 25,800km 가운데 약 70% 정도에 최고속도 제한이 없습니다. 나머지 30% 구간은 속도제한이 있는 구간입니다. 독일은 이렇게 속도제한이 없는 무제한 구간과 속도제한이 있는 구간으로 나뉘어 있기 때문에, 사망사고 데이터를 비교하는 것이 가능한 환경입니다. 독일 아우토반의 모든 구간에 속도제한이 없었다면 내부 비교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우선 독일 교통안전협회(DVR)의 2018년 보고서를 살펴봤습니다. 해당 보고서는 도로 1,000km당 속도제한이 없는 구간과, 있는 구간의 사망자 수를 비교하고 있습니다. 아래 그래픽을 보시면 한눈에 들어옵니다. 2011년부터 2016년까지, 아우토반 1,000km당 사망자 숫자입니다. 빨간색이 속도제한 없는 구간, 하늘색이 속도제한이 있는 구간의 사망자입니다. 2015년 한 해를 제외하고, 모두 빨간색 그래프가 높게 형성되어 있습니다. 속도제한이 없으면 사망자 숫자가 더 많다는 뜻입니다. 2013년에는 1,000km당 최대 5.7명이 많았고, 2016년에는 1.2명으로 사망자 수의 차이가 줄었습니다. 2016년 기준, 아우토반의 속도제한이 없는 곳에선 283명, 속도제한이 있는 곳에선 110명의 사망자가 발생했습니다.

한번 사고 나면 '훅' 간다


2015년 유럽교통안전청(ETSC) 보고서도 살펴봤습니다. 해당 보고서는 2013년 데이터를 분석하고 있습니다. "2013년 독일 고속도로의 1km당 사망자 수는 속도제한이 있는 구간이, 제한이 없는 구간보다 30% 더 낮다"고 되어 있었습니다. 브레이크 밟는 속도는 상식과 데이터가 다소 엇갈렸지만, 사망자 숫자는 일치하는 것 같습니다. 속도제한 없이 마구 달리면 사망자가 더 많이 발생한다는 것이 데이터로 뒷받침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독일 정부가 2020년 14세 이상 독일 국민 2,115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아우토반에서 130km/h 속도 제한에 찬성하는 응답자는 전체의 64%로 나타났습니다. 나머지 36%의 응답자는 속도 제한에 반대했습니다. 아우토반의 속도 제한은 독일 내에서도 꽤 오래 된 논쟁거리입니다. 속도 제한에 찬성하는 측은 주로 '안전'을 내세우고, 속도 제한에 반대하는 측은 주로 '경제성'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무제한 속도, 가능할까?


한국형 아우토반 건설에는 이런 안전 문제 말고도 부정적 의견이 꽤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1차로를 정속으로 달리는 일부 운전자들의 운전 습관입니다. 고속도로에서 1차로는 추월 차로인데 마치 주행 차로처럼 뒷 차량에 비켜주지 않고 무조건 직진, 정속으로만 주행한다는 불만입니다. 운전자들의 민원도 많아서, 경찰이 1차로 주행 차량들을 집중 단속한 적도 있습니다.
반면, 독일 아우토반에서 촬영된 영상을 보면 대부분 2차로 혹은 3차로로 주행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간혹 1차로로 달리는 차량도 있지만, 뒤에서 달려오는 차가 보이면 바로 2차로로 피해줍니다. 덕분에 아우토반에선 고속 차량이 지그재그 운전할 필요가 없습니다. 운전자들의 차로 변경이 많아지면 그만큼 사고 확률이 높아질 수 있기 때문에, 운전 습관에 대한 우려는 안전에 대한 걱정과 맞닿아 있는 셈입니다.

박세용 기자 psy05@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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