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3개의 전선에서 동시에 싸울 수 있나? [정의길 칼럼]

정의길 2023. 10. 2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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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길 칼럼][이스라엘-하마스 전쟁]

23일(현지시각)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남부 칸유니스에서 주민들이 이스라엘군 공습으로 무너진 건물 앞에 모여 있다. 칸유니스/로이터 연합뉴스

“우리는 걸으면서 껌을 씹을 수 있다, 이스라엘·우크라이나 지원과 대만 방위라는 세가지 모두를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글로벌 강대국이다.” 미국이 그런 능력을 가졌는지 모르겠으나, 그보다는 이런 상황을 초래하게 된 오류가 무엇인지를 먼저 숙고해야 하는 것 아닌가?

정의길 ㅣ국제부 선임기자

미국의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자인 스티븐 월트 하버드대 교수는 지난 6월 포린폴리시에 ‘사우디아라비아-이스라엘 평화협정은 가치 없다’는 기고에서, 그 협상은 심각한 전략적 오류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이스라엘은 역내의 어떤 나라도 공격을 꿈꿀 수 없는 강대국이고, 사우디가 이스라엘과 손잡고 이란 견제에 나서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라고 지적했다. 또 이스라엘과 사우디는 미국의 우방 포트폴리오를 가장 망치는 나라들인데, 조 바이든 행정부는 이들의 안보를 챙겨주려고 외교·군사 자산을 낭비한다고 그는 비판했다. 미국은 두 나라가 수교하면 이들에 대한 미국의 안전보장을 약속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건설 합의를 무력화하는데도, 미국은 이스라엘을 무조건 지지해서 ‘이스라엘의 변호사’라는 오명을 쓰고 있다. 사우디도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서방과 러시아·중국 사이의 등거리 외교로 러시아에 대한 서방의 제재를 무력화하고, 중동에서 러시아·중국의 영향력을 증대시키고 있다.

스팀슨센터의 에마 애시퍼드 선임연구원도 세계정치평론(WPR)에 ‘사우디-이스라엘 관계 정상화 협상은 미국에 득이 안 된다’는 기고에서 “이 협상의 가장 가능한 시나리오는 미국이 사우디 안보를 책임지고, 중국은 그 왕국의 가장 중요한 경제 파트너로 남는 것”이라며 “이는 형편없는 거래”라고 지적했다. 무엇보다도 월트는 “이스라엘과 사우디의 관계 정상화를 밀어붙임으로써, 바이든과 블링컨은 이스라엘의 아파르트헤이트(팔레스타인 봉쇄와 고립)를 공고화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고 비판했다.

지난 7일 이스라엘을 공격한 하마스의 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야는 “당신들이 서명한 모든 관계 정상화 합의는 (팔레스타인) 갈등을 해소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사우디-이스라엘 수교 협상에 따른 팔레스타인의 소외와 분노, 팔레스타인 분쟁을 모르는 척하던 미국의 전략적 오류가 다시 중동 전체에 분쟁으로 번지고 있다.

이라크 전쟁 이후 미국의 중동 정책은 길을 잃었다. 2001년 9·11 테러가 나자, 미국의 네오콘들은 9·11 테러와는 상관이 없던 이라크를 찍어서 침공했다. 이스라엘의 주적인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정권이 타도되면 친미민주주의 도미노 효과가 중동에 퍼진다는 백일몽을 꿨다. 그러나 후세인 정권이 제거되자, 거대한 세력 공백이 생겨서 이슬람주의 세력이 이슬람국가(IS)로 발전했다. 이란의 영향력도 커졌다. 이란의 동맹인 시리아의 아사드 정권을 타도하려던 시리아 내전은 오히려 러시아의 진출을 불렀다. 도널드 트럼프 전 행정부는 이란과의 국제핵협정을 파기하고는, 이스라엘과 사우디 등 수니파 아랍 국가들의 수교인 아브라함협정 프로젝트를 추진했고, 바이든 행정부는 이를 승계·발전시켰다.

지금 중동을 보자. 팔레스타인 분쟁은 가자에서 벗어나 주변으로 넘쳐흐른다. 이스라엘이 가자 지상군 침공을 감행하면, 헤즈볼라 등 반이스라엘 세력은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이스라엘은 2005년 가자에서 일방적으로 철수해 봉쇄하고는, 2006년 레바논을 침공했다. 팔레스타인 봉쇄 강화를 위해서였으나, 이스라엘은 군사적·전략적으로 패배했다. 헤즈볼라는 가자의 하마스를 순망치한 관계로 생각하게 됐고, 이스라엘의 가자 침공에 개입할 것이다.

하마스의 공격으로 재점화된 중동 역내의 분노에 놀란 사우디는 이스라엘과 수교 협상을 중단하고, 방문한 바이든 대통령을 냉대했다. 대신에 이란과 대화하며, 분쟁 확산을 막으려는 독자적인 외교를 펼치고 있다.

중·러는 중동에서 영향력을 키우고, 미국의 발목을 잡으려고 한다. 중·러는 그동안 이스라엘과 관계를 개선시켜왔는데, 이번 사태가 발발하자 ‘친팔레스타인 중립’으로 돌아섰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이은 중동 전쟁은 유럽에는 특히 악몽이다. 에너지와 난민이라는 사활적 문제를 더욱 악화시킨다.

이라크 전쟁 이후 미국 대외정책의 큰 줄기는 중동 탈출과 아시아태평양에서 중국 대결이다. 지금, 우크라이나 전쟁에 이어 중동 전운이 몰려온다. 미국 전략가 중 하나인 이보 달더 전 나토 대사는 월스트리트저널에 이스라엘·우크라이나 지원과 대만 방위에 대해 “우리는 걸으면서 껌을 씹을 수 있다”며 “세가지 모두를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글로벌 강대국이다”라고 자신했다. 미국의 그런 능력에 대한 자신보다는 이런 상황을 초래한 이유를 먼저 숙고해야 하는 것 아닌가?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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