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늘어도 상급병원 쏠림·과잉진료 불가피...줄이려면 ‘주치의 제도’ 필요해

이정아 기자 2023. 10. 23.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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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의사 만나는 빈도·과잉진료율 OECD 최고 수준
의사와 만나는 시간 가장 짧아
주치의 한 사람 또는 한 팀이 백신 접종부터 급성질환, 만성질환 예방·관리까지
환자의 과거 병력, 현 상태 알 수 있으니 과잉진료, 불필요한 검사 줄어들 것
국내 전문가들은 상급병원 쏠림 현상과 과잉 진료 등을 줄이고 사회적 비용을 절감하려면 국내에도 주치의 제도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진은 서울 종로구에 있는 서울대병원 입구./뉴스1

윤석열 정부가 의대 정원을 확대하기로 결정한 가운데 의사가 많아져도 여전히 수도권 대형 병원으로 의사와 환자가 몰리고 지방엔 부족할 것이라는 우려가 일고 있다. 일각에서는 지금까지 국내에 없었던 주치의 제도 도입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저출산 초고령 사회에서 고령 환자가 지금보다 의료진을 쉽게 만날 수 있도록 현재의 일차의료 형태가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주치의 제도란 의사, 병원이 지역민 명부를 가지고 자발적으로 건강 관리를 하는 지도를 말한다. 이 노동에 대해서 정부 또는 건강보험이 보상을 해준다. 개인 또는 가족이 주치의가 있는 일차의료 기관에 등록을 하면 여기서 포괄적인 건강 관리를 받을 수 있다. 건강에 문제가 있을 때 주치의와 상담을 하고 정기적으로 건강 검진을 받거나 만성질환을 관리한다. 주치의는 대개 일반의나 가정의학과 전문의, 내과 전문의다.

현재 주치의 제도가 있는 국가는 이스라엘과 스위스, 아일랜드, 독일, 스웨덴, 네덜란드, 영국, 노르웨이 등 대부분 유럽이다. 미국과 호주, 일본은 주치의 제도가 없다. 하지만 미국 국민의 80%, 호주 국민의 80~90%, 일본 국민의 50~60%가 주치의를 갖고 있다. 호주의 경우 이달부터 주치의 제도를 시작하고 모든 국민에게 등록하도록 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입원 환자에 대해서만 주치의가 퇴원 때까지 환자를 관리한다. 주치의를 보유한 사람은 거의 없고, 어디 불편한 데가 있으면 개인이 알아서 병원 과와 의사를 정해 찾아간다.

◇국내에도 주치의 제도 생긴다면... 수도권 상급병원 쏠림 현상, 과잉 진료 줄 것

사진은 진료실 앞 대기석의 모습./세브란스병원

지난 8월 대한가정의학회, 대한가정의학과의사회, 대한내과의사회, 소아청소년과의사회가 연 일차의료포럼에서는 저출산 고령화시대가 가속화할수록 한국에도 주치의 제도가 필요하다는 논의가 나왔다. 전문가들은 일차의료의 기능을 바꿔 환자 중심으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건강을 관리하는 것은 물론 의사 1인이 아닌, 팀 단위로 일차의료를 운영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국내는 상급병원으로 경증 환자가 몰리는 현상을 줄이기 위해 일차의료가 생겼다. 하지만 환자 중심이 아닌 의사 중심으로 형성돼 오히려 환자에게는 불편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의료정책연구소에서도 해외 사례를 고려해 국내에서도 일차의료 기관이 변화해야 한다는 내용의 보고서가 나왔다. 연구진은 지난 2월 ‘초고령 사회 대비 일차의료 중심의 의료돌봄 통합체계’ 연구 보고서를 통해 국내 고령자의 약 99.4%는 고혈압, 당뇨, 대사증후군 등 만성질환을 하나 이상 갖고 있지만 일차의료가 주로 복지 중심으로 이뤄지며 의료 서비스에는 한계가 있다고 분석했다.

연구진은 “‘환자 중심’의 일차의료가 이뤄져야 한다”며 “시군구 또는 국민건강보험공단 지사 내에 지역 단위로 일차의료 센터를 구축하고 지역민, 특히 고령자나 만성질환을 하나 이상 가진 환자를 돌볼 수 있는 서비스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국내 일차의료 체계를 선진국형으로 바꾸는 일만으로도 수도권 상급병원으로 의사, 환자가 몰리는 현상을 막고 복합 만성질환을 가진 고령자를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쓸데 없는 검사나 중복되는 검사를 하지 않아 과잉 진료를 막고 비용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이재호 일차의료연구회장(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가정의학과 교수)은 “주치의 없이 상급병원 의사를 쉽게 자주 만날 수 있는 국내 상황은 어찌 보면 의료 참사와 마찬가지”라고 비판했다. 이 부소장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를 보면 한국 국민은 의사를 가장 자주 만나는 반면, 의사와 상담하는 시간이 1~5분으로 매우 짧다”며 “저소득 국가들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한국인이 건강에 대해 관심이 많고 병원 인프라가 잘 돼 있어 의사를 만나기가 수월하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상은 효율적인 의료 시스템이 제대로 구축되어 있지 않은 셈이다.

이 부소장은 “예를 들어 감기 환자는 이비인후과에서 항생제를 받고, 호흡기내과에서 가래약을 받고, 내과에서 해열제를 받을 수 있다”며 “이런 식으로 진료를 받을 수 있으니 다약제 약물 복용 빈도가 OECD 최고 수준”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갑상선암 진단율 1위라는 오명에 대해서도 생각해봐야 한다”하며 “이런 과잉진료, 과잉진단을 줄이기 위해서도 우리 국민에게는 주치의 제도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형 주치의’는 예방접종부터 건강검진, 만성질환 관리까지 가능토록 양성해야

현재 주치의 제도가 있는 국가는 이스라엘과 스위스, 아일랜드, 독일, 스웨덴, 네덜란드, 영국, 노르웨이 등 대부분 유럽이다. 미국과 호주는 주치의 제도는 없지만 각각 전체 국민의 80%, 80~90%에게 주치의가 있다. 반면 한국은 주치의를 보유한 사람은 거의 없고, 어디 불편한 데가 있으면 개인이 알아서 병원 과와 의사를 정해 찾아간다./Medecinsadomicile

국내에도 주치의 제도가 생긴다면 예방 접종부터 건강 검진, 급성 질환관 만성질환 관리, 심지어는 정신과적 관리까지 포괄적으로 가능하도록 전문 인력을 양성해야 한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김영식 서울아산병원 명예교수(가정의학과 전문의)는 서울아산병원 내 평생건강클리닉을 찾은 환자 745명을 30년 간 추적 관찰해 이 같은 결과를 지난 8월 ‘대한가정의학회지’에 발표했다. 국내에서 주치의 제도와 관련해 전무후무한 최초의 연구 결과다. 서울아산병원 평생건강클리닉에서는 환자-주치의를 연결해 정기적 건강 검진, 만성질환 관리, 정신 건강 관리 등을 24시간 전화 상담으로 운영하고 있다. 일종의 주치의 제도처럼 환자를 관리해주는 시스템이다.

연구진은 “국내에서는 환자가 스스로 판단하므로 진료과목이나 전문의에 대한 선택이 올바르지 않아 환자가 불필요한 검사를 받을 가능성이 높아진다”며 “그만큼 환자 개인의 의료비와 사회적 비용이 증가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이 평생 동안 겪을 육체적, 정신적 질환을 조기에 발견해 치료하고 예방하기 위해서는 “(환자의 과거 병력과 현재 상태, 이전 검진 결과 등을) 포괄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주치의 제도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물론 이런 포괄적인 관리가 가능한 전문인력을 양성하려면 정책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연구 결과 주치의를 주로 찾은 환자들은 급성 질환의 경우 상기도 감염(62.1%)이 가장 많았다. 복통(42.6%)과 어지럼증(38.4%), 두통(31.0%), 요통(26.0%) 흉통(24.6%), 어깨·팔꿈치·손목 통증(17.3%) 순이었다. 만성질환은 이상지질혈증(고지혈증·69.7%)이 가장 많았고 고혈압(61.2%), 골관절염(36.5%), 골다공증(34.9%), 당뇨병(34.4%) 순이었다. 미국이나 독일 등 주치의 제도가 있는 국가에서도 고혈압, 상기도감염, 요통, 관절염, 피부염, 급성 중이염, 당뇨병, 기침, 요로감염 순으로 국내와 비슷한 상황이다.

다만 정신건강 관련해서는 한국이 주치의 제도가 있는 국가보다 심각한 상황인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평생건강클리닉을 찾은 환자 중 45%가 정신건강 상담을 받았으며 주치의 제도가 있는 나라, 미국(5%)이나 네덜란드(4%), 몰타(4%) 등에 비해 9~10배 가량 더 많다는 점에 주목했다. 국내 환자들이 평소 정신건강의학과를 잘 찾지 못하는 원인은 사회적 편견과 함께, 환자 스스로는 자기가 어떤 질환이 의심되는지 알기 힘든 탓이다.

정신건강 상담을 받은 이들 중 상당수가 불안장애(27.9%)와 불면증(22.6%). 우울증(20.4%) 진료로 이어질 만큼 고위험군이었다. 특히 우울증 환자는 자신이 우울증을 앓는다는 사실을 전혀 모른채, 여러 전문과를 전전하다가 평생건강클리닉에서 처음 발견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여성일수록, 고령일수록 정신과적인 상담이 더 많았다. 연구진은 정신건강 관리에 있어서 주치의 제도가 효율적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남성 환자의 경우 비만이나 음주, 흡연에 대한 상담이 많았다. 연구진은 고혈압이나 당뇨병 같은 만성질환은 생활습관 개선으로도 효과적으로 예방할 수 있는 만큼, 주치의 제도가 있으면 사회적으로 만성질환자를 줄이는 데도 일조할 수 있음을 강조했다.

연구진은 “주치의가 자기 환자를 수십년간 지속적으로 진료하면 급성 질환에 대해 꼭 필요한 검사만 할 수 있어 개인적, 사회적 비용을 절감할 수 있고 만성 질환도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만큼 의료 시스템에서 필수적이기 때문에 현재의 일차의료를 주치의 제도처럼 강화할 수 있는 정책 변화를 촉구했다.

참고자료

의료정책연구원(2023) https://rihp.re.kr/bbs/board.php?bo_table=research_report&wr_id=345

Korean Journal of Family Medicine(2023) DOI: https://doi.org/10.4082/kjfm.23.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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