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자유정부'에 말한다] 자유 외치고는 官治 유혹에 휘둘려 … 시장우위 무너졌다

2023. 10. 23.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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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별기고 ◆

지난해 5월 10일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제20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선서를 하고 있다. 매경DB

최근 여당은 구청장 보궐선거에서 대패했다. 국민의힘 패배라기보다 이 선거를 주도한 윤석열 대통령의 큰 실패다. 그보다 더 근본적인 정권의 위기 증후가 계속되고 있다. 집권 2개월부터 20~40%의 압도적 부정적 평가 우위가 반전 기미 없이 지속되고 있어 어떤 선거를 치르든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취임하면서부터 자유를 핵심 가치로 들고 나왔다. 길지 않은 취임사에서 자유라는 단어를 35번이나 언급해서 자유주의자들을 설레게 했다.

"이 나라를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를 기반으로 국민이 진정한 주인인 나라로 재건"하는 것을 목적으로 집권했다고 이번 정부의 지향점을 분명히 했다. "번영과 풍요, 경제적 성장은 바로 자유의 확대"에서 이루어졌고, 시대적 난제를 해결하는 수단이 '자유'라는 인식을 밝혔다. "자유로운 정치적 권리, 자유로운 시장이 숨 쉬고 있던 곳은 언제나 번영과 풍요가 꽃피었습니다"라고 정리하면서 자유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구현하겠다는 약속을 국민들에게 강조했다. 과거 전통을 따른다면 이번 정부는 '자유정부'라고 명명했어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다.

첫 방미 때 미 의회 연설에서 윤 대통령은 "자유에 대한 확신"을 강조하며 한국의 자유를 위한 미국의 희생과 미국이 주도한 자유무역과 시장경제가 한국 번영의 토대임을 강조했다. 자신의 가치관 형성에 가장 중요한 '인생의 책'이 밀턴 프리드먼과 로즈 프리드먼 부부의 '선택할 자유'라고 밝혀왔다. 대통령의 확고한 자유주의적 가치관은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를 추구하는 지식인들에게는 이승만 대통령 뒤를 잇는 두 번째 자유주의 대통령으로 역사의 바른 편에 선 지도자라는 기대를 불러왔다.

그런데 왜 이처럼 윤 대통령의 지지율은 임기 초부터 과거 임기 말 대통령들의 지지율과 다름없는 국민 지지의 파탄 상황이 지속되고 이번 선거에서 대패를 하게 되었을까.

가장 큰 첫 이유는 윤 대통령의 추상적 자유주의 선언에 걸맞은 실천적 정책이 전무하다는 데 있다.

윤 정부는 획일화된 교육에서 학생에겐 선택의 자유, 획일화된 국가 의료보험제도에서는 개인의 의료와 보험을 선택할 자유, 노동 시장에서 고용의 자유, 규제 혁신으로 투자의 자유, 대출과 부동산 투자와 개발의 자유, 농지의 자유로운 거래 등 경제적 거래의 자유를 확대한 눈에 띄는 정책이 전무하다.

선택의 자유를 대표하는 공약 중 52시간 노동규제 개혁, 대형 유통점 강제 휴무제 철폐도 이해집단의 반발을 넘지 못하고 유야무야됐다. 프리드먼의 책은 시장이 자율적인 가격에 의해 움직이기 때문에 정부 개입을 피해야 한다고 하는데, 경제가 어려워지자 통신과 은행을 공공재라며 가격 인하의 압력을 가했다. 집권 초기마다 벌어지는 재벌 총수들을 불러 투자 계획을 발표시키는 관치 경제의 모습도 그대로였다. 저출산·고령화와 맞물려 복지와 연금 개혁은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그런데 복지, 교육, 노동, 연금 개혁을 하겠다고 하면서 그 어느 것도 구체적 청사진은 제시되지 않고 있다.

결국 윤 정부는 공허한 자유주의 선언을 정책으로 실천하지 못했고, 어젠다도 주도하지 못하면서 왜 정권을 잡았는지를 국민에게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대통령의 추상적 자유주의 선언이 진지한 역사적 고뇌의 소산이고 그것이 정부 정책의 방향을 결정하는 강령이거나 자유에 기반한 정책을 추진할 리더십이나 의지인지를 의심받고 있다. 그 결과 일상을 관리할 뿐 시대적 소명과 난제들은 외면하는 무위(無爲)의 정부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는 윤 대통령의 통치 스타일이 자유주의와 너무나 배치되는 권위적 반자유주의적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취임사에서 "자유는 승자 독식이 아니다"고 주장한 윤 대통령은 자신과 다른 의견을 갖는 여당 내 정치인들을 숙청하고, 여당을 정당이기보다는 '용산 출장소'로 장악해 간 모습은 권력의 승자 독식 그 자체다.

청와대를 버리고 무리하면서까지 용산으로 대통령실을 옮긴 윤 대통령이 국민 속에서 민심을 듣고 있었다면 이번 강서구청장 선거와 같은 무리하고 무모한 선거가 진행됐을 리 없다. 집권 초엔 도어스테핑과 외국 방문 중의 실언을 반복하더니 이제는 과거 권위적 대통령들처럼 기자회견마저 하지 않고 있다.

정치적 곤경에 몰리니까 가짜 뉴스로 언론에 대한 비판으로 기울고 있다. 가짜 뉴스는 경계할 일이지만 가짜 뉴스를 권력이 판단하려는 순간 그것은 권위주의 독재의 모습이다. 민간의 사단법인이나 단체들을 정부에 등록하게 하여 사실상 허가제로 운영하고 있고, 민간 협회와 거래소 같은 주식회사도 정부가 사실상 경영자를 임명하고 공기업처럼 운영하고 있다. KT 경영권에 대한 정권의 집요한 집권남용적 관치의 개입은 "시장을 정부보다 우위에 두겠다"던 대통령의 말이 깃털처럼 가벼운 것임을 보여주었다.

세 번째는 윤 대통령의 자유가 이념 대결과 정쟁의 수단으로 전락하는 수구적 양상으로 기울고 있다는 점이다. 윤 대통령은 "공산전체주의와 기회주의적 추종 세력"에 의해 "지금 우리 자유는 끊임없이 위협받고 있다"는 경고를 반복하고 있다. 이문열 작가와 같은 일부 보수 지식인은 "반국가 세력을 겨냥한 윤 대통령의 이념 전쟁, 용기 있고 위로된다"며 지지하고 나섰다.

자유와 인권, 안보보다는 친북적이고 민족을 앞세우고 국수주의적 반일 몰이를 하며 우방과 대결적 관계를 만들었던 과거 진보 진영의 정치적 공세에 이념적 가치 중심 없이 흔들렸던 과거 무능한 보수 정권들에 실망했던 국민들에게는 '사이다'와 같은 카타르시스를 제공하며 통쾌한 복수로 역사 바로 세우기의 모습일 수도 있다.

하지만 현재 대한민국의 자유에 대한 위협이 과연 "공산전체주의와 그 추종세력"에 의해 국가를 전복의 위험에 빠뜨리고 있는 것인지와 대통령의 '이념 공세'가 정치적으로 현명한 것인지는 냉정하게 따져보아야 한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자 프랜시스 후쿠야먀는 '역사의 종언'을 통해 공산주의의 몰락을 알렸다. 지금 공산주의를 공식적으로 고집하고 있는 나라는 중국, 쿠바, 라오스, 북한, 베트남 단 5개국에 불과하고, 이 중 경제력을 갖고 있는 중국과 베트남은 경제적으로는 공산주의를 오래전에 포기했다.

지금 우리 안보를 위협하는 것은 러시아, 중국, 그리고 북한의 군사적 협력체제다. 이들이 공산주의의 우월성을 믿고 전 세계를 공산화하겠다는 망상을 갖고 있는 나라라기보다는, 공산주의는 국내적으로 독재 권력을 지속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를 내세우고는 있는 것이 이 정치 체제를 다른 나라에 강요할 망상을 갖고 있지 않다는 증거다. 새로운 강대국 패권 국가의 자신에게 유리한 국제 질서를 추구할 뿐이다. 중·러는 패권 경쟁의 필요성에 의해 북한을 지원하고, 북한은 김일성 봉건왕조의 영속을 위해 일당독재 체제의 공산주의를 활용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 사회의 청년 세대가 이념 논쟁에 무관심한 것은 이런 역사적 진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지 안보 의식이 결여돼서가 아니다. 공산주의는 이미 시대의 이슈가 아니다. 지금 진보적 가치를 지지하는 국민들에게 공산주의의 위험을 강조하는 것은 '정치적 이념 공세'의 수구적 형태로 간주될 공산이 크다.

그의 취임사에서 자유주의의 근본은 개인주의다. 개인의 이성적 판단을 믿는 것이다. 개인들이 가짜 뉴스에 따라 선동되는 판단력이 결핍된 존재이고, 정부가 개인보다 경제·사회적 위험을 더 잘 판단하고 막을 수 있다는 관료주의와 국가주의는 이미 자유주의적 관점이 아니다.

'자유(Liberty)'에 대한 옥스퍼드사전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한 사회 속에서 개인이 억압적인 권위가 개인의 삶의 방식, 행동 또는 정치적 견해에 가해지는 제약들로부터 자유로운 상태"다. 여기에서 말하는 억압적인 권위의 가장 대표적인 것이 권력(정부)이다. 우리나라 사농공상의 봉건적 가치관에 따른 큰 정부주의, 오래된 관료주의는 관치경제로 다른 나라에 비해 경제적 자유를 크게 제약해서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 자유주의자들이 윤 대통령의 자유주의적 취임사에 열광했던 이유는 개인의 자유를 확대하고 시장을 믿어서 관치의 구습을 끊어줄 것으로, 개혁과 혁신의 세상이 될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이다. 개인의 자유와 관료주의와 관치경제를 걷어내고 시장의 활력을 키운 "선택의 자유" 확대는 자유론에서 진영 대결의 구실로 변질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을 불러오고 있다.

한·미·일 공조와 서방과의 연대를 강조하는 국가의 안보 울타리를 견고하게 하는 노력을 했지만 나라 울타리 내부의 자유를 크게 늘린 획기적인 정책이나 행보를 보인 적이 없다.

동기부여에 관한 이론으로 명성을 날린 심리학자인 프레더릭 허즈버그는 조직원들이 성과를 내게 만드는 요인은 동기와 위생 요인으로 나뉜다는 이론을 제시하고 있다. 정부가 안보와 외교를 튼튼히 해서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는 것은 자유의 필수조건 즉 위생 요소이고, 선택의 자유를 확대하고 개인이 창의성을 발휘하여 번영과 행복의 길로 가는 것은 동기 요인이자 자유의 충분조건이다. 사회 구성원들은 위생 요인(필수조건)은 조직과 리더십이 당연히 제공해야 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반면에 동기 요인(충분조건)들이 충족될 때 신이 나고 조직과 리더십을 긍정적으로 판단한다. 왜 이념 전쟁이 정치적으로 현명하지 못한 것인지에 대한 이유다. 위생 요건은 동기 요인을 가름하지 못한다.

국민의 준엄한 경고는 내려졌다. 경고를 진정한 변화의 계기로 삼느냐는 정권과 국민의 행과 불행을 좌우할 것이다. 국민의 지지와 신뢰를 회복하려면 취임사와 미 의회 연설문, '선택할 자유'에서 말한 자유 확대의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 추상적 선언은 반드시 실천적 정책 프로그램으로 채워져야 한다. 그리고 본인이 권위주의자가 아닌 국민을 믿는 자유주의자의 모습으로 투영되어야 한다. 말만 앞서고 실천하지 않고, 권위적인 권력자를 좋아할 국민은 많지 않다.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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