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동맹 70주년 기념 특별전 ‘동행’ 관람기

2023. 10. 23.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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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올해는 한미동맹 70주년을 맞는 해다. ‘동맹’의 뜻을 사전에서 찾아봤다. 동맹은 두 나라 혹은 여러 나라가 하나의 목적을 위해 조약을 맺고 같이 행동하자고 약속하는 국제 협정을 일컫는 용어다. ‘한미동맹’은 한국과 미국 양국이 약속을 맺은 지 올해로 70주년을 맞이했다는 뜻이다. 1953년 10월 1일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면서 한미동맹의 관계가 시작되었으니 2023년 올해로 70주년이다. 한미 양국은 안보를 비롯해 경제, 문화, 과학, 기술 영역으로까지 동맹 협력의 범위와 수준을 지속해서 확대하고 있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오는 12월 31일까지 한미동맹 7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전 ‘동행’이 열리고 있다.

70년이라는 기나긴 세월 동안 한결같은 동맹 관계를 유지하는 게 쉽지 않다. 특히 자본과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국제관계에선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 뭉쳤다 흩어졌다를 반복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미국과의 동맹 관계는 특별한 것 같다. 올해 한미동맹 70주년을 기념하는 여러 행사가 열리고 있다. 지난 9월 21일 한미동맹 70주년 기념 특별전 ‘동행’이 개막했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12월 31일까지 열린다.

한미동맹 70주년의 역사를 특별전에 다 담아내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이번 특별전 ‘동행’은 1부 조약 체결의 배경, 2부 조약 체결까지, 3부 체결 그 이후를 담고 있다. 여기서 조약은 ‘한미상호방위조약’을 가리킨다. 6.25전쟁을 겪은 후 대한민국의 안전 보장을 위해 체결되었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의 핵심은 상대국이 군사적 공격을 당했을 때 공동 대처하는 것이다. 물론 한미상호방위조약을 키워드로 해서 특별전을 관람해도 좋다. 하지만 특별전을 관람한 내가 주목해야 할 3가지 요소를 꼽아봤다. 인물, 단체, 조약이 있다. 

초대 주미대사를 지냈던 박정양이 쓴 ‘미속습유’에 19세기 미국의 지리와 역사, 각종 근대적 제도와 문물을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한미동맹 70주년 역사의 단면을 놓고 보면 수많은 인물들이 있다. 그중 대표적인 인물로 공공외교 분야의 박정양, 민간외교 분야의 헐버트가 있다. 초대 주미공사로 임명된 박정양은 1887~1888년 미국에 파견되었고, 당시 조선을 속국으로 두려는 청의 강한 압박 속에서도 자주외교의 길을 걸으려 했다. 

박정양이 펴낸 문집으로 ‘죽천고(竹泉稿)’가 있다. 죽천고에는 19세기 미국의 지리와 역사, 각종 근대적 제도와 문물을 상세히 소개한 ‘미속습유(美俗拾遺)’가 포함되어 있다. 책의 앞부분, ‘해제’에 고종의 말이 실려 있다. “반드시 견문을 넓히되 우리나라 사정에 관계되는 일이 있으면 즉시 보고를 올리도록 하라. 아울러 우리나라 상민 가운데 그 나라에 가서 체류하는 자를 보호해주며…”라는 구절이다. 

외세의 침탈 속에서도 고종은 박정양에게 외교사절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것을 요구하고 있었다. 이 책은 1895년 유길준이 쓴 ‘서유견문(西遊見聞)’보다 1년 정도 앞서는 점에서 역사적 가치가 크다. ‘서유견문’은 유길준이 미국 유학 중에 보고 배운 것을 국한문혼용체로 쓴 책이다. 

헐버트는 한글로 쓰인 최초의 지리 교과서 ‘사민필지’를 저술했고, 한글의 우수성과 과학성을 널리 알렸다.

미국 출신의 헐버트는 죽어서 한국 땅에 묻히기를 바랐던 인물로 누구보다 한국을 사랑했다. 그는 1886년 조선에 입국해 최초의 근대식 교육기관인 육영공원에서 영어를 가르쳤다. 1889년 한글로 쓰인 최초의 지리 교과서 ‘사민필지’를 저술해 교재로 사용하였다. 한글의 우수성과 과학성에 매료돼 미국 언론과 영문 잡지에 기고를 통해 한글을 홍보했으며, ‘사민필지’ 서문에는 당시 지배층이 한글 대신 어려운 한자 사용을 고수하는 관행을 지적하였다.

또한, 구전으로 내려오던 ‘아리랑’을 서양식 음계로 처음 채보해 알렸다. 1896년 서재필, 주시경 등과 함께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 신문인 ‘독립신문’을 발간하였고, 당시 주시경과 함께 국문연구소를 설립하고 한글을 연구하며 띄어쓰기를 도입하였다. 그는 조선 말기 국권회복운동과 일제강점기 한국의 독립운동에 이바지하였다. 

미평화봉사단원들은 국내에서 주로 영어교육, 보건, 농촌지역개발 프로그램을 진행하였다.

한미동맹 70주년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단체로 미평화봉사단이 있다. 개발도상국의 교육·농업·무역·기술의 향상, 위생 상태의 개선 등을 목적으로, 미국 정부가 자국 내에서 모집한 청년 중심의 봉사자를 훈련·파견하는 단체이다. 1961년 존 F. 케네디(John F. kennedy) 대통령의 뉴프런티어 정책의 일환으로서 제정된 평화봉사단법에 따라 창설되었다. 

1961년 16개국에 1000명의 자원봉사자를 파견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1966년에 52개국에서 1만여 명이 활동하는 전성기를 맞았다. 1966년 9월 미평화봉사단이 한국에 파견되었으며, 총 1700여 명이 봉사단원으로 활동했다. 이들은 주로 영어교육, 보건, 농촌지역개발 프로그램을 진행하였으며, 이에 대한 보답으로 한국국제교류재단은 매년 평화봉사단원을 초청하여 교류를 해왔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의 핵심은 상대국이 군사적 공격을 당했을 때 공동 대처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조약이다. 1953년 10월 1일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면서 한미동맹이 이어졌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은 방위를 목적으로 한 조약이다. 따라서 한미상호방위조약의 핵심은 상대국이 군사적 공격을 당했을 때 공동 대처하는 것이다. 6.25전쟁을 겪었던 한국이 외부로부터 무력 공격의 위협을 받을 때만 미국이 원조한다는 것으로써, 북한의 공격을 용인하지 않으며 나아가 이를 감시 내지 견제하는 역할을 함축하고 있다. 

한미동맹 70주년 특별전 ‘동행’을 관람하러 온 외국인들도 많았다.

문화체육관광부와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한미동맹 70주년을 맞이해 지난 4월 개막한 특별전 ‘같이 갑시다(We Go Together)’를 시작으로 외교·안보, 문화예술, 민간교류 등 양국 관계의 역사를 여러모로 조망하는 특별전을 선보이고 있다. 이번 특별전 ‘동행’은 그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다.

한미동맹의 구체적인 실체로 주한미군, 한미안보협의회, 한미연합사령부 등이 있다.

한미동맹의 구체적인 실체로 주한미군, 한미안보협의회, 한미연합사령부 등이 있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특별전을 관람했다면 한미동맹의 실체가 머물렀던 장소를 방문해 보면 어떨까? 용산공원, 용산가족공원, 용산어린이정원 등 한미동맹의 실체와 연관된 장소다. 

용산 지역은 물류와 교통의 중심지로 지난 1904년 한일의정서 체결 후에는 일본군이 주둔했고, 해방 이후부터 지금까지 미군기지로 활용함에 따라 120년 동안 일반인의 접근이 불가능한 금단의 땅으로 남아 있었다. 금단의 장소였던 용산 지역이 점차 개방되고 있다.

미군 장교 숙소였던 용산공원은 미국 주택가에 온 듯한 이국적인 풍경으로 청년들이 즐겨 찾고 있다.

용산공원(https://www.park.go.kr/front/index.do)은 서빙고역 1번 출구로 나오면 있다. 과거 장교 숙소로 사용되었던 곳이다. 빨간 벽돌로 만든 2층 주택이 듬성듬성 있고, 그사이에 파릇한 잔디가 조성되어 있다. 마치 영화나 드라마에서 본 미국의 주택가에 온 듯한 이국적인 풍경이다. 놀이터, 전시관 등을 조성해서 실내외를 오가면서 구경할 수 있다. 

용산공원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개방하고, 오후 5시부터 입장을 마감한다. 매주 일요일과 월요일 휴관이다. 매주 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개방하되 내부 시설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외부 시설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입장할 수 있다. 이용 요금은 없고 예약 없이 입장할 수 있다. 

주한미군사령부의 골프장이었던 용산가족공원은 무장애 산책로가 잘 조성되어서 누구든 편하게 이용할 수 있다.

용산가족공원(https://parks.seoul.go.kr/template/sub/yongsan.do)은 8.15광복 이후 주한미군사령부의 골프장으로 쓰이던 부지를 1992년 서울특별시에서 공원으로 조성하여 문을 연 시민공원이다. 골프장의 잔디와 숲, 연못 등을 그대로 둔 채 4.6km의 산책로와 조깅 코스, 원두막을 갖춘 자연학습장, 태극기공원, 잔디광장 등을 새로 마련하였다. 

용산가족공원 내 놀이터에서 어린이들이 흙장난을 하면서 놀고 있다.

1년 내내 24시간 무료로 문을 열고 있다. 서빙고역이나 이촌역에서 내려 10분 정도 걸으면 된다. 평일 오후에 용산가족공원을 방문했다. 놀이터를 중심으로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었다. 그런 아이들을 바라보는 부모들까지 평화로워 보였다. 그렇다. 한미동맹이 존속하는 바는 우리의 자유민주주의와 평화를 영구히 지켜내기 위해서다.  

용산공원 반환부지의 일부였던 용산어린이정원은 탁 트인 녹지대와 편의시설이 많아서 아이를 데리고 온 부모들이 즐겨 찾고 있다.

용산어린이정원(https://yongsanparkstory.kr/)은 주한미군으로부터 반환받은 용산공원 반환부지의 일부를 ‘용산어린이정원’으로 조성해 국민에 개방했다. 용산어린이정원은 사전 예약을 거쳐야만 입장할 수 있다. 용산어린이정원 누리집을 통해 예약할 수 있다. 내국인은 방문 5일 전, 외국인은 방문 10일 전까지 예약이 필요하다. 과거의 방문 기록이 있다면 현장 접수 후 즉시 입장할 수 있다.

용산어린이정원 개방 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이며 오후 5시부터 입장을 마감한다. 휴관일은 1월 1일, 설·추석 당일 및 매주 월요일이다. 신용산역 1번 출구 인근에 있는 주 출입구 또는 국립중앙박물관과 연결되는 부 출입구를 통해 입장할 수 있다. 별도의 주차 공간(장애인 차량 제외)이 없으므로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한다.

높다란 담벼락을 따라 철조망이 쳐져 있던 용산 미군기지가 점차 국민의 품으로 돌아오고 있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특별전 ‘동행’을 관람한 뒤 한미동맹의 실체와 연관된 미군기지가 주둔했던 용산에서 용산공원, 용산가족공원, 용산어린이정원을 방문해 보는 것은 어떨까? 아직 높다란 담벼락의 철조망이 걷히진 않았지만, 지금 우리가 누리는 평화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는 시간이 될 것이다.   

정책기자단|윤혜숙geowins1@naver.com
시와 에세이를 쓰는 작가의 따듯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면서 저만의 감성으로 다양한 현장의 소식을 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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