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진단] R&D 예산조정을 시스템개혁 기회로
우리 경제는 지난해 고물가 고금리에 글로벌 경기 침체의 대외 여건까지 악화되어 경기가 더욱 침체되었다. 수출이 위축되고 경제 성장률이 낮아지더니, 4분기에는 드디어 마이너스 성장을 찍었다. 경기 하방으로 올해 세수도 59조여 원이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4년간 어려운 경제 여건 속에서도 국가 연구개발(R&D) 예산은 10조원이 가파르게 증가하였다. 이 과정에서 R&D 예산의 비효율 문제는 현재 우리가 풀어야 할 숙제다.
그동안 R&D 예산은 부처 간 나눠먹기, 도전과 혁신성 부족, 과도한 규제 등 여러 문제를 안고 있었다. 일본의 수출 금지 등 단기 현안 대응을 이유로 증액하였다가 이를 삭감하지 않고 유지되는 예산, 나눠주기식 사업, 관리 체계의 취약성도 문제로 지적되었다.
이슈 선점을 통한 조직·인사·예산 등의 부처 영향력 확대 경쟁과 이기주의 때문에 R&D 추진 부처 간 중복과 사업 분절화가 심화된 경우도 있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R&D 주무부처인 과기부가 중심이 되어 국가 R&D 사업을 조율하고 관리했으나, 현재는 과기부 외에 37개의 R&D 부처가 '우리나라의 과학과 유망 산업이 어떤 모습으로 나아가야 할지 미래 비전'도 없이 18조원에 이르는 막대한 예산을 부처·기관 간 나눠먹기식으로 받는 실정이다.
2021년도의 R&D 사업을 살펴보면 1185개의 사업과 7만4745개의 과제가 지원되었다. R&D 사업이 단기화·소형화돼 지난 10년 동안 3년 미만의 단기 과제가 늘고, 소규모 과제 중심으로 바뀌었다. 획일적이고 경직된 R&D 관리는 실패가 두려워 도전적인 과제를 피하고, 성공률이 100%에 육박하는 손쉬운 연구에 매달리기 일쑤다. 한 예로 한국산업기술기획평가원의 지난 5년간 과제 성공률은 99.1% 수준에 이른다.
국내 중심의 고립된 R&D 시스템 운영으로 국제 공동연구나 국제 협력도 축소되었다. 인공지능(AI) 시대에는 어느 한 연구자의 경쟁력보다 같은 목표를 추구하는 연구그룹의 글로벌 경쟁력이 중요함을, 이번 팬데믹의 mRNA 백신 개발에서 보여주었다. 한 분야 연구진의 경쟁력보다 '글로벌연구협의체'의 경쟁력이 더 중요한 시대가 된 것이다. 우리 R&D 시스템도 각각의 연구 분야에서는 수월성으로 경쟁하지만 글로벌연구협의체를 구성하여 협력하는 글로벌 파트너십으로 재정비되어야 한다.
그동안 누적되어 온 비효율을 개선하여 우리 R&D가 선도형 R&D로 거듭나도록 시스템 혁신을 이루어야 한다. 급등한 R&D 예산을 글로벌 수준의 과학 인재 양성에 지원하고 수월성 중심으로 전환하여 연구역량 강화를 통해 세계 최초이자 최고의 연구를 지향하는 R&D 사업으로 개편해야 한다. 국내 연구진의 역량을 통합하고 세계 유수 연구자들과 협력하여 혁신적 성과를 창출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이번 R&D 예산 삭감은 R&D 시스템의 구조적 문제를 개선함으로써 새로운 도약과 선도형 R&D로 탈바꿈하는 기회가 되어야 한다. 정부는 R&D의 비중과 순서를 정해 과학과 산업을 고도화하는 주도력을 보여주되, 내부 경쟁과 협력은 국가 주도에서 벗어나 연구계가 중심이 되어 조정해야 한다. 우리가 처한 엄중한 처지를 약진의 발판으로 삼고 모든 역량을 하나로 모아 과학기술 선진국으로 한 단계 도약해야 한다.
[강태진 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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