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춘추] 규제 공화국
요즈음 국제 학술행사에 가면 우리나라의 위상이 부쩍 높아진 것을 느낀다. 우리와 공동연구를 타진하는 외국 연구자들이 많은데,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가 규제 환경에 관한 것이다. 한국의 규제 환경이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기준과 비교하여 어떠하냐는 것인데, 그냥 상호 방문이나 학생 교환 정도로 형식치레의 공동연구가 주를 이룰 때에는 이런 질문이 없었다. 하지만 본격적인 공동연구에 관심을 두다 보니 자연히 공동연구에서 걸림돌이 될 규제가 있는지 궁금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우리의 규제 환경은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이 조사해 63개국 중 48위로 평가된 결과가 시사하듯이 그리 선진적이지 않다.
최근 우연히 아는 이를 만났는데 무릎 때문에 일본에 가서 줄기세포 치료를 받고 왔다고 하였다. 우리나라에서 줄기세포를 채취해 배양했는데, 막상 체내 주입은 일본에 가서 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그냥 시술하면 안 되냐고 물었더니 우리나라에서는 불법이라는 답이었다. 채취하고 배양까지 했는데 주사를 맞으러 일본까지 간다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일본은 법적으로 허용하고 있으며 미국에서도 수많은 줄기세포 치료가 시행된다. 그런데 이렇게 이해 안 가는 규제가 우리 주위에 너무 많다.
우리나라는 전 국민 의료보험제도를 실시하고 있어 어느 나라보다도 잘 정리된 의료데이터를 확보하고 있다. 인공지능 응용 분야를 말할 때 빠지지 않은 것이 의료 분야다. 의료 빅데이터를 분석해 치료의 효과성을 예측하거나 새로운 치료 방법을 고안해낼 수 있다. 쓸데없는 치료를 지양해 의료비를 절감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우리나라에서는 의료데이터를 그렇게 활용할 수가 없다. 명목은 개인정보 보호라지만 의료정보에서 개인 식별이 불가능하도록 만든 데이터조차도 사용이 극히 제한적이다.
이러한 규제들의 근거는 생명 윤리라든지 개인정보 보호와 같이 다분히 철학적이며 원론적으로는 타당한 이유들이다. 아예 못하게 하는 것이 혹시라도 있을 침해 사례를 100% 차단하는 길인 것은 틀림없다. 하지만 악용을 막기 위해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이들을 제한적으로 허용함으로써 생길 과학적·경제적 이득을 고려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침해 가능성을 최소화하는 선에서 활용을 허용하도록 규제를 설계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이러한 고려가 없다. 개인정보 보호의 경우도 비슷하다.
며칠 전 주일본 한국대사관 차량이 경찰에 적발되었다는 뉴스를 보았다. 차량 창문 선팅을 너무 짙게 해서 법규를 위반했다는 것이었다. 우리나라 차량들은 운전석 창문에도 짙은 선팅을 해 운전자가 타고 있는지조차 구분이 안 가는 경우가 많다. 당연히 안전에 문제가 있고 범죄에 이용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개인 프라이버시 보호 차원인지 전혀 단속을 하지 않는다. 우리처럼 짙은 선팅이 허용(?)된 국가는 중국 이외에는 본 적이 없다.
규제는 여러 측면을 합리적으로 고려해야 하는데, 우리는 한 가지 명분에만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합리성이 결여된 규제 환경 안에서 본격적인 국제 협업이 가능할지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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