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 칼럼] 대한민국 두 동강 낸 이재명 영장 심사
“이재명을 구속하라!”
“이 대표님, 힘내세요!”
지난 6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앞. 중장년 40~50명의 고성이 맞부딪혀 집회 현장이 따로 없었다. 법원 입구를 기준으로 왼쪽에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강성 지지층 개딸들이 열성적인 응원 메시지를 보냈다. 오른쪽에서는 이 대표가 유죄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구속하라”며 고함을 쳤다. 양측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출동한 경찰들이 몸으로, 목소리로 사람들을 진정시키려 안간힘을 썼다. 둘로 쩍 갈라진 대한민국의 축소판을 보는 듯 했다.
지난달 27일 이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된 후 한국 사회는 갈등을 넘어 분열로 가고 있다. 자신과 정치 성향이 다른 상대방을 향한 분노와 적대감은 측정되지 않을 뿐 임계점을 넘어섰다. 유창훈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의 700자 분량 영장 기각 사유는 각 진영이 자기 입맛에 맞는 주장을 강화하는 근거로 쓰이고 있다. 여당은 ‘위증교사 혐의는 소명된다’, ‘백현동 특혜는 피의자 관여가 있었다고 볼 만한 상당한 의심이 든다’에 주목한다. 야당은 영장이 기각 됐다는 결과 자체와 “직접 증거가 부족하다” 등의 사유에 집착하면서 마치 무죄 판결이 나온 것처럼 행동한다.
유 부장판사의 결정은 전례에 비춰 이례적이란 점에서 더욱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1987년 현행 헌법 이후 13대 국회(1988년)부터 이 대표 직전까지 국회에 제출된 의원 체포동의안은 57건. 이중 가결된 것은 10건 뿐이다. 8건에 대해 법원에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국회의 문턱을 넘기는 힘들지만, 가결되면 법원에서 영장을 발부한 비율이 높았다. 국회의원들이 가까이에서 지켜본 동료 의원의 강제구인 여부를 각종 공적 자료와 증언, 보도 등을 토대로 신중하게 검토한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같은 당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은 더욱 그렇다. 영장이 기각됐을 때 여론의 역풍까지 계산에 넣어 투표를 하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영장 심사 결과에 따라 한국이 둘로 쪼개지는 상황은 앞으로도 반복될 수 있다. 판사 1명이 법과 양심에 따라 영장 발부 여부를 결정하는 한국식 제도의 한계 때문이다. 우리 형사소송법 제70조에선 법원은 피고인이 죄를 범하였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다는 점과 피의자가 일정한 주거가 없거나,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거나, 피고인이 도망하거나 도망할 염려가 있는 때 구속할 수 있다. 이외에 범죄의 중대성, 재범의 위험성, 피해자 및 중요 참고인 등에 대한 위해 우려 등도 고려할 수 있다.
그러나 검찰은 불구속 기준이 모호하고 판사마다 다른 결정을 한다고 주장한다.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어떤 건 증거가 부족하다고 영장을 기각하고, 어떤 건 반대로 증거가 모두 수집돼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다는 이유로 영장을 기각한다”며 “이 대표에 대한 영장도 만약 다른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담당했어도 같은 결론이 나왔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은 17일 서울중앙지검 국정감사에서 “구속영장 기준을 고무줄처럼 운영하고 있는 것 같다”며 “땅볼조차 스트라이크로 인정하는게 아닌가 싶다”고 지적했다.
법조계에선 영장항고제를 도입하거나 최소한 구속심사기준표를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한다. 영장항고제란 영장전담판사가 구속영장을 기각할 경우 검사가 2심 또는 3심 등 상급 법원에서 영장을 다시 심사받는 제도다. 미국, 독일 등이 법원의 구속 여부 결정에 대해 불복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것을 참고하자는 것이다. 검찰이 영장 재청구를 할 수 있지만 추가 범죄 수사로 절차가 지나치게 지연 될 수 있다. 피의자의 방어권 제한, 영장심사 장기화가 우려된다면 공개 가능한 구속심사기준표를 만드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정치인과 국민들의 성향을 바꾸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보다 사법부 시스템을 바꾸는 것이 더 쉽다. 어떤 방식으로든 사법부가 사회 분열에 일조하는 지금의 악순환은 끊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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