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이코노미스트] '기후대응기금'을 위한 변명
탄소중립 내세운 첫 공적재원
부실경영·성과 비판 쏟아지고
동시에 R&D 예산삭감 악재도
배출권 판매 자체수입 태부족
뭇매보단 응원하고 지켜볼때
기획재정부가 관리하는 기금 중 '기후대응기금'이 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이 기금은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보다 구체적으로는 온실가스 순배출량 제로를 의미하는 '탄소중립'으로의 전환과 녹색성장을 촉진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2022년 신설됐다. 기후대응기금은 우수한 성적과는 거리가 먼 1년 차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기후변화에 대응하라고 만들어놓은 기금이 설악 열차를 늘리고 에어컨이나 가동시키는 등 원래 취지와 다르게 쓰였다거나, 부실 경영이 드러났다거나, 아까운 세수만 축내고 있다거나, 기업만 퍼주는 기금이라거나, 이게 다 성과 평가 체계가 부실했기 때문이라는 등 다양한 비판이 기후대응기금에 가해졌다.
그러다 최근에는 기후대응기금의 탄소중립 R&D 예산이 삭감되며 빠른 속도로 '저탄소·녹색 상품'시장이 되어가고 있는 글로벌 시장에서 우리 경제나 수출이 곧 받게 될 타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기후대응기금은 자체 재원을 배출권 매각 수입으로 한 공적 기금이다. 배출권 매각 수입은 '탄소 배출 행위에 비용을 내게 해서 얻은 정부 수입'으로 재정 정책의 대상이 된다. 200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이 추가 수입을 이용해 소득세나 법인세를 감면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알려져 있었다. 오염물질에 가격을 매겨 배출량을 줄이면서 노동과 기업활동에 부과되던 세금을 줄여 경제를 활성화할 수 있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최근에는 좀 다른 논리가 우세하다. 2019년 세계은행 보고서는 탄소 배출에 가격을 매겨 얻은 수입의 일부를 이용해 목적이 분명한 기금을 만들고 이 기금을 이용해 기업의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한 핵심적인 기술을 개발하고 상용화해 글로벌 시장에서 자국의 산업경쟁력을 높이는 데 사용하자는 방안이 힘을 받고 있다. 이와 맥락을 같이하는 기금의 예가 EU의 혁신기금, 우리의 기후대응기금, 2023년 일본이 신설한 녹색혁신기금이다.
EU의 혁신기금은 EU 배출권 가격이 상승하며 연간 30억유로에 달하는 재원을 조달해 굵직한 프로젝트를 지원하고 있다. 우리의 기후대응기금은 운용 기간도 짧지만 배출권 가격이 폭락하며 배출권 매각 수입이 급감하자 다른 예산에서 돈을 빌려다 쓰느라 편하지 않은 상황이다. 다시 기후대응기금을 살펴보자. 기후대응기금은 탄소중립을 전면에 내세운 최초의 공적 재원이다. 자체 수입은 배출권 판매 수입뿐이며 나머지는 각 부처가 사용하고 있던 기금과 특별회계로부터 전입금을 받아 만들어졌다. 재원만 오는 것이 아니라 해당 재원에 묶여 있던 사업도 따라왔다. 이들 빈티지 사업 중에는 기후변화와 관계없는 사업도 있고 그간의 재정평가 결과 생명줄이 간당거리던 사업도 포함돼 있다. 이들 빈티지 사업을 일찍 일몰시키고 취지에 맞는 사업으로 새판을 짜고 싶지만 자체 재원은 예상보다 줄어만 간다. 이것이 기후대응기금이 가진, 모두가 다 아는 출생의 비밀이며 현황이다. 기후대응기금의 문제는 무엇보다 자체 수입, 즉 배출권 판매수입이 적다는 데 있고 이 문제가 해결돼야 기후대응기금이 제 기능을 할 수 있다.
글을 쓰는 지금도 이 기금이 지난 1년간 낸 성과가 크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불평보다 앞서는 생각은 이제 막 태어나 곤궁한 시절을 보내고 있는 기후대응기금이 뭇매를 맞고 혹 사그러들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다. 이 기금이 잘 자라 일궈낼 성과에 엄청난 기대를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서 이제 막 태어났음을, 태어난 것 자체가 훌륭한 기금임을 강조하고 싶다. 큰 그루터기를 안겨주는 뿌리 깊은 나무가 될 때까지 응원하고 지켜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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