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에 병원 기부한 세브란스, 건강한 자본가 롤모델"
스탠더드오일 창립한 대부호
한번도 와본 적 없는 한국에
근대 의학교·병원 첫 건립
국내도 존경받는 부자 늘어야
세브란스 창립 의사 에이비슨
이승만에 자유주의 사상 전파
석유왕 존 록펠러와 함께 스탠더드 석유 회사를 설립하고, 막대한 자산으로 자선 사업을 펼친 대부호가 있다. 뜻있는 사업에 자산을 사용할 방법을 고민하던 그는 한 의료 선교사의 연설에 감동을 받아 한 번도 가본 적 없던 동양의 작은 나라에 최초의 근대 의학교육기관과 현대식 종합병원을 지어준다.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현재 연세대 의과대학)와 세브란스 병원(연세대 의대 부속병원)을 세운 루이스 헨리 세브란스의 이야기다.
1985년부터 40여 년간 세브란스의 삶과 업적을 연구해온 김학은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가 세브란스 연구서 '루이스 헨리 세브란스' 증보판을 지난 9월 펴냈다.
세브란스는 잊힌 인물이다. 연세대의 '세'가 세브란스에서 따왔다는 것, 세브란스 병원의 '세브란스'가 설립자 이름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가 한국의 의학과 의학교육 발전에 기여한 업적이 충분히 현창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건강한 자본주의'의 발전을 위해 세브란스의 삶과 정신을 기리고 알려야 한다고 밝혔다. 모두가 부자가 되려고 하지만 축적한 부를 의미 있게 사용하는 사람은 드문 한국에 세브란스의 사례가 귀감이 될 수 있어서다. 김 교수는 "한국이 선진국이 된 만큼 이제는 존경받는 자산가가 많아져야 한다"며 "세브란스의 업적은 훌륭한 자선의 전범으로서 한국 사회에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석유 사업으로 거부가 된 세브란스는 자선·선교 사업의 세계적 선구자였다. 1900년 뉴욕 에큐메니컬 선교대회, 1910년 에든버러 세계선교대회 등에 부회장으로 참여하며 글로벌 선교 운동을 이끌었고 미국 링컨대·우스터대·오벌린대 등에 장학금과 건물을 기부했다. 예술 후원에도 적극적으로 나서 세브란스 가문은 클리블랜드의 메디치 가문으로 불리기도 했다.
세브란스가 낯선 나라인 한국에 대규모 자선을 결심한 것은 1900년 4월 30일 뉴욕 카네기홀에서 열린 선교대회의 의료분과 회의에서 의료 선교사 올리버 R 에이비슨의 강연을 들은 것이 계기가 됐다. 1893년부터 한국에서 의료 봉사를 해온 의사 에이비슨은 강연에서 한국에 현대식 병원을 설립할 필요성을 역설했다. "한국의 병원들은 건물, 장비, 사람, 소득에서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각 선교단체가 제대로 병원 일을 하려면 많은 자금이 들기 때문입니다."
모친의 권유와 4년 전 결핵으로 죽은 막내딸의 영향으로 병원 건립을 생각 중이던 세브란스는 한국에 병원을 설립하기로 결정한다. 1900년 2만5000달러의 현대식 종합병원 건물(1904년 준공)을 시작으로 많은 건물과 의료진을 제공했고, 자신의 주치의였던 외과 전문의 앨프리드 어빙 러들로와 제시 왓슨 허스트도 보냈다. 김 교수는 "세브란스 의학교와 병원 덕분에 한국의 현대 의학 교육이 일본을 통하지 않고 미국에서 직접 도입될 수 있었다"며 "에이비슨과 러들로, 허스트는 스스로 의료 봉사에 헌신하는 것을 넘어 수많은 한국인 에이비슨, 러들로, 허스트를 키워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세브란스를 비롯한 의료 선교사들이 대한민국 발전의 근간이 된 자유주의를 전파하는 데도 기여했다고 밝혔다. 자신의 상투를 잘라준 에이비슨에게 젊은 시절부터 영어와 미국 정치 사상을 배운 이승만은 프린스턴대에 유학해 국가 간 자유로운 통상을 주장하는 국제통상이론으로 박사 논문을 썼다. 국제통상이론에 따르면 식민지가 아닌 독립 국가가 많을수록 자유 통상의 상호 이익은 커진다. 자유주의로 조국 독립을 모색하고 이를 새로운 나라의 건국 이념으로 준비해온 것이다. 김 교수는 "이승만은 자유민주주의를 건국 이념으로 삼아 조국 발전의 초석을 쌓았고, 그 근간에 에이비슨과 세브란스의 기여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승만은 대통령이 된 뒤 에이비슨에게 건국공로훈장을 수여하며 회고했다. "에이비슨 박사는 자유주의 사상의 상징으로서 본 대통령의 청년 시기에 기독교적인 민주주의의 새 사상을 호흡하게 했다."
김 교수는 세브란스의 유산이 여전히 한국에 선한 영향력을 주고 있다고 강조했다. 미국 장로교단의 '세브란스 존 엘 기금'은 지금도 매년 세브란스 병원에 이자를 송금하고 있다. 세브란스 가문은 아들 존 롱 세브란스의 작고 이후 대가 끊겼지만 기부가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김 교수는 "세브란스의 친구이자 동업자였던 록펠러의 가문은 자손이 번창하며 미국 사회에서 활약하고 있지만 록펠러가 중국에 기부했던 병원은 마오쩌둥이 중국을 장악하며 사라졌다"며 "세브란스의 생물학적 자손은 사라졌지만 정신적 자손인 연세대 의대와 세브란스 병원은 자선의 전범이자 자유주의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고 말했다.
[김형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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