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가 급등" 하소연에도… 정부는 압박만

최상현 2023. 10. 23.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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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물가 안정을 명목으로 업계에 가격 인상을 자제하라는 압박 행보를 하고 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17일 민생·물가안정 관계장관 회의에서 "업계는 원가 절감과 생산성 향상 등을 통해 가격 인상 요인을 최대한 자체 흡수해달라"고 포문을 열자, 각 부처가 차관들을 중심으로 '가격 인상 억제'를 위한 각개전투에 나선 모양새다.

한 식품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10월부터 물가가 안정될 거라고 공언한 만큼, 당분간 가격 인상은 생각하지 말라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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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자 물가지수 7.8% 상승
축산물·낙농품 등 일제 올라
정부, CJ제일제당 등 업계에
"기업이 물가안정 앞장" 반복
11일 서울 한 대형마트의 소금·설탕 매대. [연합뉴스]

정부가 물가 안정을 명목으로 업계에 가격 인상을 자제하라는 압박 행보를 하고 있다. 하지만 이미 제품 생산 비용이 높은 폭으로 상승한 업계도 많아 '물가 책임을 기업에 전가하는 게 아니냐'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기업은 어떤 식으로든 가격 인상 요인을 해소하게 돼 있다"며 "정말 국민에게 도움이 되는 정책인지 다시 생각해봐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23일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지난 8월 농산물 생산자 물가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7.8% 상승했다. 앞서 7월에는 전년 대비 1.4% 감소했으나, 8월 들어 큰 폭으로 뛴 것이다. 생산자 물가지수는 국내 생산자가 국내 시장에 출하하는 상품의 가격 변동을 측정하는 지수로, 생산자 물가가 올랐다는 것은 기업이 물건을 생산하는 데 드는 비용이 증가했다는 의미다.

같은 달 축산물 물가는 5.9% 하락했지만 낙농품(유제품)은 5.3% 상승했다. 의복제품은 전년 대비 6.7% 올랐고, 전기 장비(5.0%)와 기타제조업제품(5.1%)도 비교적 높은 상승률을 나타냈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관련 업계에 '원자재 가격이 올랐다고 해서 가격을 올려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17일 민생·물가안정 관계장관 회의에서 "업계는 원가 절감과 생산성 향상 등을 통해 가격 인상 요인을 최대한 자체 흡수해달라"고 포문을 열자, 각 부처가 차관들을 중심으로 '가격 인상 억제'를 위한 각개전투에 나선 모양새다.

한훈 농림축산식품부 차관은 지난 19일 '농식품 수급상황 확대 점검회의'를 열고 도매시장법인, 한국식품산업협회, 육류유통수출협회, 대형마트 3사 등에 "가격 인상 요인을 최소화하는 등 농식품 물가 안정을 위해 적극 협조해달라"고 당부했다.

이어 20일 한 차관은 CJ제일제당과 빙그레, LG생활건강 등 식품회사 16곳을 불러 모았다. 지난달 7일 추석을 앞두고 식품기업 12곳과 간담회를 한 이후 한달여만에 다시 업계 대표들을 부른 것이다.

한 차관은 "일부 원재료 가격 인상에 편승한 과도한 가격 인상을 자제해달라는 부탁을 식품업계에 했고, (업계에서도) 최대한 협조하겠다는 말씀을 해주셨다"고 말했다.

산업부도 20일 장영진 1차관 주재로 '민생 물가 안정을 위한 공산품 가격 점검회의'를 열고 전자, 자동차, 타이어, 패션, 편의점, 프랜차이즈 등 실생활과 밀접한 업계의 관계 관계자들에게 물가안정 노력에 동참해달라고 요청했다.

물가 안정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하는 기재부는 정기적으로 관계부처와 물가 관련 비공개 회의를 이어갈 방침이라는 점에서 정부의 가격 인상 억제 행보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업계에서는 정부의 이러한 행보를 '사실상 원자재 가격 상승을 감내하라는 얘기'라고 지적한다. 한 식품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10월부터 물가가 안정될 거라고 공언한 만큼, 당분간 가격 인상은 생각하지 말라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대한제당협회는 지난 19일 입장문을 내고 "국내 제당업계는 4개월가량 생산이 가능한 원재료를 확보한 상태지만 지속 상승하고 있는 원당 가격으로 인해 원가 부담이 크게 늘었다"면서도 "내년 초까지는 설탕 가격 인상을 최대한 자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영애 인천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정부의 가격 압박에 기업들은 당분간 따를 수 밖에 없을 것"이라면서도 "표면적인 가격을 인상하지 않는 대신, 제품의 품질이나 서비스 등을 떨어뜨리는 방식으로 인상 요인을 해소할 가능성이 높아 소비자 피해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최상현기자 hyun@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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