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줄이 문닫는 미국 대형 약국 매장들…저소득층에 의료 불평등 가중

노정연 기자 2023. 10. 23. 16:3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수십 년간 확장을 거듭해 온 미국 거대 약국 체인들이 최근 수익성 악화로 수백 개 매장을 폐쇄하고 있다. 이미 의료 사각지대에 놓인 저소득층과 취약 지역에 건강 불평등 현상이 심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대형 약국들 1500개 이상 매장 폐쇄 발표
18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에 위치한 라이트 에이드 매장에서 한 여성이 빈 선반에 남아있는 의약품들을 살펴보고 있다. 이 매장은 미국 대형 약국 체인인 라이트 에이드의 파산 신청과 구조 조정의 여파로 다음주 문을 닫을 예정이다. AFP

22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는 미 대형 약국 체인인 라이트에이드를 비롯해 CVS, 월그린스가 1500개 이상 매장을 폐쇄할 계획이라며 이로 인한 ‘약국 사막화’가 이미 진행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 3대 드럭스토어 중 하나인 라이트에이드는 지난 15일 뉴저지 파산 법원에 파산보호를 신청하며 실적이 부진한 매장 154개를 1차 폐쇄하겠다고 발표했다. 경비 절감을 위해 앞으로 최대 500개 매장을 폐쇄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라이트에이드는 코로나 팬데믹 이후 백신 접종 급감과 사업 부진으로 누적 적자가 쌓인데다 최근 오피오이드 등 마약성진통제 남용과 관련한 대규모 소송까지 더해지며 파산에 몰렸다. 올들어 3억670만 달러(약 4155억원) 적자를 기록 중이다.

CVS도 구조조정을 진행 중이다. 지난 2021년 향후 3년간 900개 매장을 폐쇄하겠다고 발표 한 후 현재까지 244개 매장이 문을 닫았다. 월그린스는 미국 내 150개 매장 폐쇄를 발표하는 등 3대 약국 체인 모두 몸집 줄이기에 나서고 있다.

미국 대형 약국 체인들은 1990년대 이후 처방전 제조와 각종 생활용품 소매점으로서 편의성 모델까지 갖추며 급속도로 성장했다. CVS와 월그린스는 현재 미 전역에 각각 9000개와 8700개 이상의 매장을 보유하고 있으며 지난해 총 매출은 4552억 달러(616조)에 달한다.

그러나 아마존, 월마트 등 온·오프라인 소매점들과의 경쟁이 심화하며 이들의 전성기도 저물게 됐다. 고객들의 소비 패턴 변화, 소매 범죄 증가, 인력 부족 등 문제가 대두되면서 인력 감축과 대규모 매장 폐쇄를 피할 수 없게 된것이다.

취약계층 약국 접근성 악화…직접적 영향 미쳐
실적 부진으로 파산 위기에 몰린 미국 대형 약국 체인 라이트 에이드는 최근 실적이 부진한 매장 154개를 1차 폐쇄하겠다고 밝혔다. APF

문제는 약국 매장 감소가 미국 취약 계층에게 의료 서비스 공백으로 이어지며 심각한 건강 불평등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공중 보건 전문가들은 약국이 가장 먼저 사라지는 지역이 주로 흑인과 라틴계 및 저소득층 주거 지역임을 지적하며 이미 해당 지역들에서 약국 접근성 악화가 발생하고 있다고 우려한다.

약국 접근성과 건강 형평성을 연구하는 디마 카토 서던캘리포니아 대학 교수는 “현재 미 전역에 걸쳐 4개 지역 중 1개 지역은 약국 공백을 겪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며 이같은 공백이 “약국과 약사의 의료서비스가 가장 필요한 지역 사회에 불균형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연구에 따르면 약국이 적은 지역일수록 환자가 의사가 정한 약물 요법을 준수할 확률이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노인들의 경우 이러한 경향이 두드러졌다.

WP는 “약국은 농촌이나 저소득 지역, 건강하고 저렴한 식품에 대한 접근이 제한적인 지역에서 ‘생명선’과 같은 역할을 한다”며 “이러한 지역에선 약사가 가장 접근하기 쉬운 의료 전문가인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수익성을 우선시 한 약국 기업들이 매장 수를 저소득층과 흑인 및 라틴계 지역에서 백인과 중산층 및 고소득층 지역 중심으로 확대시켜 온 것도 이러한 문제를 가중시키는 원인으로 지목됐다.

버클리 캘리포니아 대학의 공중 보건 조교수인 제니 과다무즈는 “약국 매장의 차별적 재분배로 인해 의료 분야에서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인종적, 경제적 격차가 더욱 악화될 수 있다”며 이는 해당 지역 주민들의 “치료를 포함한 의학적 조언, 백신, 식품, 필수품에 대한 모든 접근을 방해한다”고 지적했다.

노정연 기자 dana_fm@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