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후쿠다무라’ 감독 “조선인 학살 사실, 확실히 보여줬다” [특파원 리포트]
100년 전 일본 도쿄 등 간토지방에서 발생한 간토대지진. 우리에겐 지진보다는 이후 벌어진 '조선인 학살'로 기억되는 비극적인 사건입니다.
당시에 일본인도 학살을 당한 사건이 있었다는 사실은 많이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일본인이 일본인에 의해 학살 당한 '후쿠다무라 사건'입니다.
후쿠다무라 사건은 간토대지진이 발생하고 닷새가 지난 1923년 9월 6일, 도쿄 인근 지바현 후쿠다무라의 한 신사 앞에서 발생했습니다.
지진으로 인한 혼란 속에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는 등의 유언비어가 퍼졌고, 마을을 지킨다는 명목 하에 간토지방 곳곳에 자경단이 조직됐습니다.
일본 각지를 돌며 거리에서 약을 파는 가가와현 출신의 행상인 15명이 지바현 후쿠다무라를 통과할 때였습니다.
피해자의 증언에 따르면, 자경단 2백 명 정도가 길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 행상인들을 에워싸고 "말이 이상하다", "조선인이 아니냐"라고 다그쳤습니다.
행상인들의 사투리가 심하다는 이유로 '조선인'이라고 몰아붙인 겁니다. 또 행상인들이 조선인인지 확인하기 위해 '주고엔 고주센'(15엔 50전)을 말해보라고 시키기도 했습니다.
그 자리에 있던 경찰이 혼란스러운 상황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문의하기 위해 경찰서에 간 사이, 행상인 9명은 결국 잔혹하게 살해당하고 말았습니다.
피해자 중엔 두 살, 네 살, 여섯 살 아이 세 명이 포함돼 있었고, 임산부도 있었습니다. 임산부의 태아까지 포함해 피해자가 열 명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간토대지진으로부터 정확히 100년이 된 2023년 9월 1일, 일본에서 개봉한 영화 <후쿠다무라 사건>의 모리 다쓰야 감독을 영화사 사무실에서 만났습니다.
영화는 관객 수 16만 명을 넘겨 최근 몇 년 동안 일본에서 개봉한 독립영화 중에서 가장 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영화를 상영하는 일본 전역의 소규모 극장도 다른 독립영화에 비해 세 배 정도 많습니다.
영화 제작을 위한 펀딩 금액도 총 제작비 1억 엔의 36%에 달하는 3천 6백만 엔이 모였습니다.
감독은 영화가 인기를 누리는 이유를 묻자, 조선인 학살을 부정하는 일본 정부의 태도에 문제가 있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방증이라고 말했습니다.
저도 의외였습니다. 일본 정부는 조선인 학살은 없었다, 또는 자료가 발견되지 않는다라는 입장을 줄곧 보여왔습니다. 말도 안됩니다. 그렇게 먼 옛날 일이 아닙니다. 100년 전 사건입니다. 얼마든지 자료가 있고, 공식문서도, 증언도 많습니다. 당시 신문을 찾아보면 조선인 학살 사건의 재판 기록도 많이 남아 있습니다.
역시 많은 사람들이 이런 상황이 이상하다고, 이 나라의 기억하는 방식이 말이죠.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는 걸 실감했습니다.
모리 감독은 일본의 역사 부정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습니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도 트럼프가(Make America Great Again)이라고 하는 것처럼 '과거에는 좋았다'라는 생각이 강한 거겠죠. 동시에 실패라든가 좌절, 누군가에게 상처를 줬다든지, 이런 걸 기억하는 건 괴롭죠. 잊어버리는 게 마음은 편합니다. 그러니까 이 나라는 지금 잊어버리려고 하는 겁니다.
일본에서 다루기 쉽지 않은 주제인데도, 이 같은 영화를 만든 이유가 무엇인지도 물었습니다. 모리 감독은 한국의 사례를 언급하며, 자국의 어두운 역사를 다루는 영화가 일본에서도 필요하다고 답했습니다.
한국에서도 4.3 사건과 5.18민주화운동이 있었습니다. 일본과 다른 점을 말하자면, 5.18민주화운동은 영화로 만들어졌습니다. 영화 <택시운전사>는 큰 인기를 끌었죠. 일본은 그런 영화가 지금까지 없었습니다. 이건 좀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영화계에 있는 사람으로서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후쿠다무라 사건>이 일본에서 개봉하기 전에 왜 조선인 학살을 직접 다루지 않고, 일본인 학살을 다루는지에 대한 비판도 있었습니다.
모리 감독은 이 영화가 일본인 학살을 묘사하지만 사실 조선인 학살을 다뤘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행상단 단장의 대사 한 마디에 그 의미가 담겨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일본인 학살을 묘사하면서도 그 배경에 있는 조선인 학살을 제대로 보여줄 생각이었습니다. 특히, 행상단의 단장의 대사, "조선인이라면 죽여도 좋은 건가?"가 매우 중요한 대사였습니다.
모리 감독은 한국에도 '간토 학살'을 모르는 사람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냈습니다.
희생을 당했던 재일한국인은 일본에서 차별과 박해를 당하고, 조국에서도 버려지고... 괴로운 처지라고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습니다.
일본의 멱살을 잡고 제대로 기억하라고 말할 생각이었는데, 한국에도 말을 해야 되는 상황입니다. 여러분의 동포가 살해당한 사건이라고.
후쿠다무라 사건에는 지금 일본의 언론에 대한 감독의 시각도 담겼습니다.
영화에는 조선인 학살을 직접 목격한 지역신문의 신입기자가 기사화를 막는 상사에게 "왜 사실대로 쓰지 않는 겁니까?" "왜 정부가 말하는대로 쓰는 겁니까?" 라고 항의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감독은 권력을 비판하는 기사를 잘 쓰지 않는 지금의 일본 언론계에 하고 싶은 말을 담았다고 전했습니다.
영화와 현재를 이어주는 다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 넣은 장면입니다. 언론의 역할은 '현장의 공기를 깨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본은 특히 주변에 동조하려는 분위기가 강한 나라잖아요. 지금의 언론도 그렇습니다. (권력이 만드는) 공기를 깨는 용기를 가져달라고 일본의 언론에 말하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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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종익 기자 (jigu@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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