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주기 맞춰 초개인화 서비스 … '데이터 강국' 핀란드의 비결

김상준 기자(kim.sangjun@mk.co.kr) 2023. 10. 23.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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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 정부 생애주기 포털
아이가 크면 유치원 자동 배정
퇴직하면 실업급여 안내 발송
클릭 한 번으로 세금 납부 끝
정부·기업 '신뢰'가 자산
국민 500만명 유전자 정보
데이터화해 헬스케어 활용도

#핀란드 북부 라플란드에 거주하고 있는 A씨는 만성적인 허리 통증에 시달린다. 일상생활을 하다가 허리가 아파오면 휴대폰 애플리케이션(앱)으로 진단서를 발급받고, 약국에 가서 수년째 복용하고 있는 약을 구입한다. 이 같은 'E-진단서' 서비스는 핀란드 전역에서 매달 200만명이 이용 중이다.

#핀란드 수도 헬싱키에 사는 B씨는 아이를 어느 유치원에 보내야 하는지 고민하던 중 시청으로부터 문자 한 통을 받았다. '자녀는 자택 인근에 있는 ○○유치원에 입학할 수 있다'는 안내였다. 문자에는 유치원 교사의 수, 정원, 강점 등이 적혀 있었고 B씨가 동의하면 유치원에 즉시 배정된다는 내용도 있었다.

핀란드 정부가 시민들에게 제공하는 '공공 데이터 서비스' 사례다. 'IT 강국' 대한민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핀란드는 유럽의 명실상부한 디지털 강자다. 유럽연합(EU)은 매년 회원 국가들의 디지털 전환 수준을 나타내는 '디지털경제사회지수(DESI)'를 발표하는데, 핀란드는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2위 밖으로 밀려난 적이 없다. 2019년, 2020년, 지난해 모두 1위를 차지했고 EU 국가 평균 대비 최대 20점 이상 높은 점수를 받는다.

특히 정부가 제공하는 데이터 서비스의 질이 높다. 핀란드인들은 클릭 한 번으로 세금 업무를 끝낸다. 핀란드 정부가 운영하는 대국민 서비스 포털 '수오미.fi'가 세금을 납부할 때가 되면 개인, 기업에 메일을 보낸다. 정부가 징수 내역을 제시하고, '사실과 맞는지 확인하셨나요. 납부하시겠습니까' 묻는 게 전부다.

수오미.fi는 '생애주기 서비스'로도 유명하다. 국민 개개인이 처한 '삶의 단계'에 따라 국민이 필요하다고 인지하기도 전에 먼저 서비스를 제공한다. 핀란드인 C씨의 소득이 줄고, 퇴직한 사실이 확인됐다면 수오미.fi가 "실업급여를 신청하시겠습니까"라고 묻는다. 수오미.fi가 제공하는 서비스 분야는 가정, 교육, 의료, 주거, 재테크, 법률 자문 등 크게 9개로 나뉜다. 세세한 서비스까지 다 합치면 50가지가 넘는다.

이 같은 초개인화 디지털 서비스는 국민이 개인정보를 정부에 충분히 제공하기에 가능하다. 지난달 25일(현지시간) 헬싱키에 위치한 디지털&인구데이터 서비스청에서 만난 미코 매티넨 디지털&인구데이터 서비스청 책임자는 "핀란드 사회를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가치가 바로 '신뢰'"라며 "기관와 기업에 대한 신뢰도가 높기 때문에 디지털 전환의 핵심 연료인 개인정보를 다른 국가들보다 더 많이 더 깊게 확보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정부에 대한 신뢰는 청렴도에서 나온다. 핀란드에서 복지 정책을 담당하는 사회보험 기관인 켈라의 리타 틸비스 매니저는 "공공 디지털 서비스와 같은 복지 분야에 대해선 의회에서 갈등이 없다. 정부도 오랜 시간 예산을 허투루 쓰는 등의 부패를 범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국제투명성기구(TI)가 발표한 지난해 국가별 부패인식지수를 보면, 핀란드는 평가 대상국 180개국 가운데 2위를 차지했다.

핀란드인들의 정부와 기업에 대한 신뢰는 상상을 초월한다. 핀란드 정부는 2017년 '핀젠 프로젝트(FinnGen Project)'를 시작했다. 핀란드의 대학, 병원, 글로벌 제약사들이 손잡고 핀란드 바이오뱅크에 저장된 핀란드 국민 약 500만명의 유전자 정보를 데이터화해 헬스 케어에 활용하는 프로젝트다. 2019년에는 '의료·건강 데이터의 2차 이용에 관한 법률'이 통과돼 국민 50만명의 혈액 샘플이 수집됐다. 유전자·혈액 정보는 대학에서 연구 목적으로, 기업에서 상업 목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헬싱키 김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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