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말은 하되 관계는 지키자…‘비폭력 대화법’이란 삶의 기술
따돌림·학폭 시작하는 5학년 상대로 말하기 훈련
진실한 바람·단호한 부탁 화법…“회복 탄력성 중요”
“자, 지금도 학원을 몇개 다니고 있는데 엄마가 학원을 하나 더 다니라고 해요. 그러면 여러분 기분이 어떨까요?”
“너무 힘들어요!” “너무 우울하고 슬퍼져요.”
“그럼 엄마에게 어떻게 말을 하게 될까요?”
“왜 나만 학원 더 다니라고 해! 열 받아!” “엄마가 다니세요! 저는 집을 나가겠어요.”
“그럼 엄마는 어떻게 반응이 나올까요?”
“집을 나가라고 하겠지요! 하하하.”
“이럴 때 어떻게 대화를 해야 우리의 감정도 솔직히 표현하면서 내가 원하는 것도 얻을 수 있을지 배워봅시다!”
지난 11일 경기도 일산의 원흥초등학교 5학년 교실에서는 ‘대화법’에 대한 수업이 한창이었다. 이날 수업을 진행하는 이보경 수석교사가 아이들에게 가르쳐주고자 한 대화법은 ‘비폭력 대화’였다.
미국의 심리학자 먀살 로젠버그가 창시한 비폭력 대화란, 나와 상대의 마음속 깊은 느낌과 욕구를 파악해 갈등을 건설적으로 해결하는 대화법이다. 인간사는 갈등의 연속인데, 내 뜻만 관철시키면 관계가 불편해지고, 상대 뜻대로만 하면 내 마음이 불편해진다. 내 마음도 지키면서 관계도 해치지 않는 대화법이 ‘비폭력 대화’로 관찰-느낌-욕구-부탁이라는 4가지 단계로 이뤄진다. 이보경 수석교사는 이날 학생들이 이 4단계 단계를 몸에 익히는 데 주력했다.
첫번째 단계는 ‘관찰’이다. 이는 상대를 편견이나 선입견으로 평가하는 대신 있는 그대로 상대를 이해하고 수용하는 단계다. 위의 예에선 ‘엄마는 왜 또 학원 문제로 나를 괴롭히지?’라고 판단하는 대신 ‘엄마가 나에게 학원을 하나 더 다니라고 말씀하시는구나’라고 상대의 제안 내용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것이다.
두번째 단계인 ‘느낌’에선 내 느낌이 무엇인지 살펴보는 것이다. ‘답답하다’ ‘화가 난다’ ‘불안하다’ 등으로 내 감정을 정확하게 진단하는 단계다. 보통 감정은 두루뭉술하게 얽혀 있어서 정확히 파악하지 않으면, 나 자신도 이 감정이 ‘분노’인지 ‘불안’인지 잘 알지 못한다. 감정을 파악해야 내가 원하는 바도 알 수 있다.
세번째 단계인 ‘욕구’는 내가 원하는 바를 파악하는 단계다. ‘나는 지금 다니고 있는 학원을 충실히 다니고 싶고 새로운 학원을 더 추가하고 싶지는 않다’ 등으로 욕구를 정리할 수 있다.
마지막 단계인 ‘부탁’은 상대에게 화를 내거나 소리지르는 방식이 아닌 정중한 부탁의 말투로 자신의 느낌과 욕구를 전달하는 것이다. 이때 부드럽되 단호한 태도가 중요하다. 그래야 상대가 마음이 상하지 않으면서도 경청하게 된다.
이보경 교사는 아이들이 이해하기 쉽게 이 대화법을 ‘기린의 대화’라고 불렀다. 반대로 상대를 공격하거나 나 자신을 무시하는 대화를 ‘자칼의 대화’라고 불렀다.
이날 수업에서 학생들은 여러가지 방법을 통해서 ‘기린의 대화법’을 익혔다. 먼저 선생님과 질의응답을 통해 배운 뒤 실전에 들어갔다. 3∼4명씩 조를 짜서 조원 한명이 자신이 학교나 집에서 겪은 사연을 말하면 다른 친구들이 그 조원이 어떤 느낌과 어떤 욕구를 가졌을지를 대신 파악해주고 공감해주는 시간을 가졌다. 이 활동을 통해 아이들은 “상대가 내 느낌과 욕구를 알아주니 기분이 좋았다”고 입을 모았다.
다음으로는 평소 하고 싶은 말이 있었던 친구를 ‘평화의 테이블’로 불리는 탁자 앞으로 불러내 기린의 대화법으로 자신의 느낌과 욕구를 전달하는 시간을 가졌다. 아이들은 ‘학급 회의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해줬으면 좋겠다’ ‘조별 활동 때 장난을 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를 놀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등의 의견을 4단계에 맞춤해서 전달했다. 이때 이보경 교사는 중간중간 끼어들어 ‘이 대목에선 너의 느낌을 좀더 솔직하게 말하는 게 좋겠다’ ‘이 부분에선 좀더 구체적으로 부탁을 하는 게 좋겠다’ 등의 지도를 했다.
28년차 교사인 이보경 교사가 비폭력대화에 관심을 가진 것은 15년 전이다. ‘천직’이라 생각하는 교사의 꿈을 이뤘지만 초임 교사 시절 뜻대로 잘 되지 않는 아이들과의 관계를 개선하고자 상담교육으로 석·박사 과정을 밟았다. 그 과정에서 보호관찰소에서 4년간 비행 청소년을 상담하기도 했다. 그렇게 오랜 시간 이론과 실천을 학습했지만, 일상의 대화 속에도 평온한 태도를 실천하는 게 멀게 느껴졌다. 그때 접하게 된 것이 ‘비폭력대화’였다.
“세상에서 가장 먼 길이 머리에서 가슴, 가슴에서 손발이라고 하잖아요. 상담실이라는 세팅 장면에서의 상담기법이 아니라 일상적 대화에서도 배운 것을 자연스럽게 실천하면 좋은 교사, 좋은 부모, 좋은 아내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비폭력대화를 공부하게 됐습니다.”
11년 전 수석교사가 되면서 동료 교사의 수업 컨설팅과 학생들의 도덕교육을 담당하게 됐다. 2016년부터 학년마다 다른 주제의 인성수업을 기획·설계해 교육해오고 있는데, 5학년을 상대로는 정서지능과 비폭력대화를 중심으로 10∼12차시에 걸친 인성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보통 초등 5학년 때부터 따돌림과 학교폭력이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학교폭력은 서로에 대한 오해와 이해부족, 사람을 평가적으로 대하는 태도 등에서 비롯되는데, 평가가 아닌 관찰, 판단이 아닌 감정존중, 진실한 바람과 단호한 부탁 등으로 이뤄진 비폭력대화를 배운다면 인생의 무기가 될 수 있을 거 같아서 가르치기 시작했어요.”
비폭력대화를 배운 아이들은 ‘차갑게 엉켜 있는 마음의 실타래를 따뜻하게 풀어내는 대화’ ‘화를 내지 않고도 나의 마음을 충분히 전달할 수 있는 평화로운 방법’이라고 평가한다.
그는 “물론 10∼12차시를 배웠다고 바로 아이들이 비폭력 대화를 하게 되는 건 아니지만 아이들의 마음에 씨앗을 뿌려놓으면 싹이 나고 뿌리를 내리리라고 믿으며 가르치고 있다”며 “실제로 큰 갈등을 겪고 있는 학생들에게 이 대화법으로 대화를 하도록 도와서 문제가 해결됐을 때 아이들도 스스로 놀라고 나도 뿌듯함을 느꼈다”고 전했다.
특히 요즘 학부모들에게 엿보이는 ‘심리적 결벽증’이 아이들의 마음을 더 위태롭게 만들고 있다고 그는 진단했다. 즉 ‘우리 아이는 어떤 불편한 감정도 느껴서도 안 되고 어떤 갈등 상황에 놓여서도 안 된다’는 결벽증이다. 이는 인간으로 살아가는 데 불가능한 상황인데다 갈수록 더 복잡하고 불안도가 높아지는 미래사회에서는 더더욱 불가능하다. 그는 “메타버스 세계가 확대되면서 아이들은 더 많은 갈등과 상처를 겪을 수 있는 상황에 놓이게 될 터이기에 이것을 피하는 게 아니라 원만하게 해결하고 심리적 불편감을 조금씩 느끼면서 마음이 강인해지는 회복탄력성을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그 원만한 해결의 도구로 ‘비폭력 대화’는 굉장히 유용해 보였다.
글·사진 김아리 객원기자 a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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