펄펄나는 워니, 올시즌도 전희철의 남자?
‘KBL은 외국인선수 싸움이다’는 말처럼 역대로 좋은 성적을 내거나 임팩트를 남긴 감독들에게는 하나같이 본인과 호흡이 잘맞는 외국인선수가 함께했다. 최명룡(71‧184cm)은 프로 원년 유력한 꼴찌 후보로 평가절하되던 원주 나래블루버드를 준우승으로 이끌며 주변을 깜짝 놀라게했다.
여기에는 잘 뽑은 외국인듀오 칼레이 해리스(53‧183㎝)와 제이슨 윌리포드(50‧194.4cm)의 덕이 컸다. 특히 윌리포드같은 경우 ‘아들 같았다’고 표현할 정도로 농구 외적으로도 관계가 무척 돈독했다. 빼어난 운동능력을 바탕으로 폭발적 득점력을 자랑하던 듀얼가드 해리스같은 경우 미리 점찍어둔 외인이었다. 반면 윌리포드같은 경우 누구를 뽑아야 되나 고민하다가 현장에서 추천을 받고 ‘모 아니면 도’식으로 영입했다.
결과는 대박이었다. 지명전 최 전감독을 솔깃하게 만든 ‘스마트한 선수다’는 평가처럼 윌리포드는 내외곽을 넘나들며 전천후로 활약했고 KBL 초대 외국인 선수 MVP까지 등극한다. 윌리포드는 최 전감독을 아버지처럼 따랐다. 윌리포드의 어머니마저 전화로 ‘말을 안들으면 때려서라도 제대로 교육시켜 달라’고 당부했을 정도로 서로간 신뢰가 깊었다.
때문에 본인의 의지와 별개로 윌리포드를 떠나보내야 할 때 최 전감독은 상실감이 매우 컸다고 한다. 나래시절 모범생 이미지였던 윌리포드는 기아로 간뒤 악동으로 변했다. 심판판정에 예민하게 반응했고 수시로 분노를 표출했다. 자신이 버림받았다는 생각에 이른바 삐뚤어진 것이다.
프로 초창기 현대(현 KCC) 왕조를 세우며 최고의 명장으로 각광받았던 신선우(67‧188cm)하면 조니 맥도웰(52‧194cm)과 찰스 민랜드(50‧195cm)가 떠오른다. 둘 다 남다른 활약으로 챔피언결정전 우승의 주역으로 활약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순수하게 실력만 놓고 따진다면 자유계약시절 특급 외인들에게도 밀리지 않던 민랜드가 우위에 있을 수도 있겠으나 임팩트만 놓고 보면 맥도웰 쪽이 더 강했다. 현대 왕조의 시작을 만들어낸 일등공신이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최 전감독과 윌리포드가 그랬듯 신 전감독과 맥도웰의 만남도 운명적(?)이었다. 1997년 외국인선수 드래프트 당시 신감독은 1라운드에서 제이 웹을 뽑은데 이어 2라운드에서는 득점력에 강점이 있던 버나드 블런트를 지명해 주포로 활용할 예정이었다. 현장 상황도 블런트의 현대행이 사실상 확정된 분위기였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 이충희 전 LG 감독이 덜컥 블런트를 지명해버렸고 다급해진 신 전감독은 남아있던 선수중 힘이 좋아보였던 맥도웰을 부랴부랴 선택한다. 익히 잘 알려진대로 결과는 대박이었다. 블런트도 잘했지만 맥도웰은 더 잘했다. 언더사이즈 빅맨으로서 타팀 골밑을 박살내며 2시즌 연속 챔피언결정전 우승, 3시즌 연속 정규리그 1위, 3시즌 연속 최우수 외국인선수상을 수상하기에 이른다.
역대 백인 외국인선수를 언급할 때 빠지지않고 등장하는 에릭 이버츠(49‧198cm)같은 경우는 황유하, 이상윤, 김태환 등 함께한 감독들과 다 잘 맞았다. 운동능력 등에서는 흑인선수들에게 미치지 못했지만 BQ와 정교한 슈팅능력을 앞세운 플레이를 통해 늘 기본 이상을 해줬다. 성격도 유순하고 무난했던지라 코트 안팎으로 사고도 없었다. 다만 포스트 지배력이 부족했던 관계로 더 나은 외국인선수를 찾아 본의 아니게 재계약이 되지않거나 트레이드를 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래도 이버츠가 잘했지’라는 말을 듣기 일쑤였다.
김진(62‧186cm)하면 고 마르커스 힉스(올해 5월 사망, 향년 45세)를 떠올리는 이들이 많다. 맥도웰류의 덩치 크고 힘 좋은 언더사이즈 빅맨이 맹위를 떨치던 시절 잘 달리고 잘 뛰는 날렵한 포워드 힉스는 동양에 첫 우승을 안겨주며 리그 트랜드를 바꿔놓았다. 신인 시절 김승현과의 콤비 플레이는 지금까지도 회자될 정도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김 전감독 본인은 기자와의 인터뷰 당시 크리스 메시(45‧199.5cm)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고 답한 바 있다.
유재학(60‧180cm)같은 경우 워낙 외국인선수 복이 좋았던 지도자인지라 한둘을 좁혀서 말하기 힘든게 사실이다. 그래도 이런저런 의미까지 따진다면 크리스 윌리엄스(2017년 사망, 향년 36세)를 가장 먼저 오버랩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모비스 왕조의 스타트를 끊게 만든 최고의 테크니션이었기 때문이다.
윌리엄스는 포지션은 스몰포워드로 분류됐지만 사실상 장신 포인트가드에 가까웠다. 넓은 시야와 번뜩이는 패싱센스 거기에 다양한 기술을 앞세워 타 외국인선수를 압도했다. 그가 있었기에 초창기 슈팅가드에 가까웠던 양동근이 포인트가드로 적응해가며 성장할 수 있었다는 평가다. 유일한 약점이라면 짧은 슈팅 거리였지만 그가 슛까지 갖췄다면 국내리그서 뛰는 것을 보지 못했을 수도 있다. 이제는 하늘의 별이 됐지만 역대 최고 외국인선수를 꼽을 때 빠지지 않고 이름이 언급되는 인물이다.
이제는 레전드로 확실하게 인정받고 있는 에런 헤인즈(42‧199cm)이지만 커리어 초중반까지만해도 ‘잘하기는 하지만 계속 함께하기에는 2% 아쉽다’는 혹평에 시달리고는했다. 깡마른 체구와 그로 인한 파워에서의 열세, 스윙맨 스타일이면서 3점슛이 약한 부분 등을 들어 평가절하 당하기 일쑤였다. 물론 앞서 언급한 이버츠가 그랬듯 꼭 떠나고 나면 ‘그래도 헤인즈가 잘했는데…’라는 후회를 불러일으키는 경우도 많았다.
헤인즈를 가장 잘 쓴 감독으로는 문경은(52‧190cm)이 있다. 문경은이 오기전 SK는 끊임없는 전력보강에도 불구하고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을 내며 팬들의 원성을 샀다. 하지만 문경은 체제로 바뀐 이후 큰 경기에 강한 면모를 보이며 신흥강호로 발돋움한다. 거기에는 헤인즈의 힘이 컸다.
사이즈가 나쁘지 않은 돌격형 가드 김선형에 더해 다수의 장신 포워드와 헤인즈는 서로가 맞는 핏이었다. 빠르고 다이나믹한 공격이야 말할 것도 없고 정통 빅맨이 없음으로 해서 생길 수 있는 수비에서의 어려움은 3-2 드롭존 지역방어로 커버했다. 높이와 기동성이 좋은 헤인즈는 거기에서 중심을 맡았다. 당시 워낙 헤인즈 효과가 컸던 관계로 문 전감독을 가리켜 ‘문에런’이라는 부르는 팬들까지 적지 않았을 정도다.
SK가 되는 집안이라는 것은 헤인즈의 전성기가 서서히 저물 때 쯤 새로운 특급 외국인선수가 등장했다는 사실이다. 다름 아닌 자밀 워니(29‧199cm)다. 발굴한 것은 문 전감독이다. 국내 입성 첫 시즌부터 최우수 외국인선수상을 수상하며 위용을 과시했으나 다음 시즌을 완전히 망쳐버리며 구단의 속을 썩힌다.
체중조절에 실패하며 비대해진 몸으로 나타나 전 시즌의 위력을 전혀 보여주지 못한 것을 비롯 코트 안팎에서 안하무인으로 행동하며 악동으로 낙인찍힌다. 문 전감독이 10년을 이어왔던 사령탑을 내려놓게 된 배경에는 워니의 지분도 적지 않았다. 때문에 새로이 감독직에 오른 전희철의 팀구성 플랜에 대해 관심이 쏠렸는데 예상 밖으로 그의 선택은 워니와의 동행이었다.
멘탈 등의 문제가 없지는 않았지만 기량은 확실한 만큼 동기부여만 주어진다면 그만한 외국인선수도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전감독의 인내는 달콤한 수확이 되어 돌아왔다. 몸과 마음을 재정비한 워니는 다시금 좋았을 때의 모습으로 돌아왔고 지지난시즌 통합우승을 이끌며 가치를 증명한다.
지난시즌에는 아쉽게 준우승에 그쳤지만 애당초 안영준, 최준용 등 기존 주전이 둘이나 뛰지 못하던 상황에서 챔피언결정전까지 올라간 자체가 대단했다. 거기에는 회춘한 김선형과 더불어 쌍포를 이룬 워니의 활약이 절대적이었다. 올시즌 또한 워니는 여전히 리그 최강의 외국인선수로서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2경기를 치른 현재 평균 36득점, 3어시스트, 12리바운드, 2스틸로 펄펄 날고 있다. 알고도 못막는 언터처블 플레이어 워니가 올시즌도 SK를 챔피언결정전에 올려놓을지 기대된다.
#글_김종수 칼럼니스트
#사진_유용우 기자, 농구카툰 크블매니아(최감자 그림/케이비리포트 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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