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전 가능성’에 셈법 복잡해진 이란·이스라엘···‘두 개의 전선’ 딜레마
이스라엘에 ‘가자 공격 중단’ 경고했지만
직접 개입에는 부담···헤즈볼라 힘 실어줘
중동 내 패권·국내 정치적 리스크 놓고 저울질
‘지상군 투입 연기’ 국제사회 압박 속
이스라엘도 ‘두 개의 전쟁’ 부담감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지상군 투입이 초읽기에 들어가면서 이란의 개입 등 확전 가능성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연일 ‘하마스 소탕’을 공언해온 이스라엘과 이스라엘에 ‘선제 조치’를 경고한 이란 모두 ‘두 개의 전선’에 대한 부담감으로 딜레마에 빠진 분위기다.
22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은 복수의 이란 관리들을 인용해 이란 정부가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 어디까지 개입할지를 두고 군사, 외교, 국내적 우선순위를 저울질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란 최고위 지도자들은 전쟁에 깊숙이 개입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국내 정치적 리스크와 이란 정부가 그간 추진해온 중동지역 내 패권 전략을 두고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란은 그간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이슬라믹 지하드 뿐만 아니라 레바논의 헤즈볼라, 예멘 내 후티 반군, 시리아 바샤르 아사드 정권 등을 지원하면서 사우디아라비아 등 수니파 국가들과 역내 패권을 다퉈왔다.
예멘의 한 소식통은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하마스와 이슬라믹 지하드의 팔레스타인 내 권력 기반이 파괴되다면, 이란이 중동 전역에 걸쳐 무장단체를 ‘대리 세력’으로 내세워 구축한 네트워크가 손상될 가능성도 커진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이란이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을 방관한다면, 이슬람 시아파의 ‘맹주’로서 이란이 40년 넘게 구축해온 지역 패권에 균열이 생길 수 있다. 이란이 키워온 ‘대리 세력’들이 이를 이란의 약점으로 인식하게 되고, 동시에 팔레스타인을 오랫 동안 옹호해온 이란의 입지에도 타격이 불가피해진다.
그렇지만 직접 개입에 나서기에는 이란이 직면한 국내외적 상황도 녹록지 않다. 이란 경제는 2018년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이란 핵협정 파기 후 대규모 경제 재제를 부활시키며 위기에 빠졌다. 여기에 더해 지난해 ‘히잡 시위’를 비롯한 반정부 시위가 최근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섣불리 전쟁에 개입했다가 이스라엘과 미국의 반격으로 막대한 군사적 피해을 입을 경우 국민적 분노에 직면할 수 있다. 이란의 한 고위 외교관은 로이터통신에 “이란 최고 지도자인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에게 최우선 순위는 이슬람공화국의 생존”이라며 “이것이 이란 당국이 이스라엘을 강력한 수사로 비판하면서도 직접적인 군사 개입은 자제해온 이유”라고 말했다.
이란의 미묘한 태도 변화도 감지된다. 지난 15일 이란 외무장관은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공격을 계속할 경우 헤즈볼라 등 ‘저항 세력’이 “선제 조치”에 나설 수 있다고 경고했지만, 몇시간 후 주유엔 이란 대표부는 “이스라엘이 이란의 이익이나 시민을 공격하지 않는 한 분쟁에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 발 물러선 태도를 보였다.
딜레마 상황에 놓인 것은 연일 지상전 엄포를 놓고 있는 이스라엘도 마찬가지다. 이스라엘이 국제사회의 우려에도 지상 작전을 강행해 수많은 민간인 희생자가 나온다면, 이란이 지원하는 헤즈볼라의 참전으로 ‘두 개의 전선’이 생길 가능성이 높다.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에서 하마스와 전투를 벌이는 동시에 북부에서 헤즈볼라를 방어해야 하는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
그렇다고 수 차례 공언해온 지상전을 늦추기에는 하마스와 헤즈볼라에게 시간만 벌어주면서 전쟁이 장기화될 것이라는 이스라엘 내 반론도 만만치 않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보도에 따르면 정부 내 일부 강경파 인사들은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 지상전 계획을 잠시 보류하고 헤즈볼라를 선제 공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레바논과 국경을 접한 이스라엘 북부의 긴장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레바논 국영 내셔널뉴스통신에 따르면, 23일 새벽 이스라엘 전투기가 헤즈볼라 부대 두 곳을 공습해 헤즈볼라 대원 1명이 숨졌다. 사태가 악화할 경우 이란이 헤즈볼라의 교전에 힘을 실어주는 방식으로 개입할 수도 있다. 이스라엘 국방부는 22일 레바논 국경과 인접한 14곳 마을 주민을 대상으로 추가 대피령을 내렸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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