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1년 후]①아픔 딛고 일어선 이태원 상권…이태원 유동인구 80% 회복
“상인들은 대출로 연명, 문 닫은 클럽도”
이태원 방문 전 조용히 추모하는 시민도
올해 10월 29일은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지 1주기가 되는 날이다. 159명의 목숨을 앗아간 이 사건으로 인해 사고 방지 대책 미흡, 안전 불감증 등 우리가 그동안 소홀히 여겼던 여러 문제점이 부각됐다. 참사 후 1년이 지난 지금, 무엇이 달라지고 개선됐을까. 조선비즈는 이태원 참사 1주기를 맞아 그 변화를 짚어본다.[편집자 주]
“들어오세요. 밤 10시 넘으면 자리가 없을지도 몰라요.”
지난 20일 오후 9시쯤, 서울 용산구 이태원 해밀톤호텔 뒤편 세계음식문화거리에서 만난 한 칵테일바 직원은 이렇게 말했다. 바 안에서는 수십 명이 술을 마시거나 일어서서 춤을 추고 있었다. 다트와 리듬액션게임 DDR(Dance Dance Revolution)을 즐길 수 있는 공간도 별도로 마련돼 있었다. 한 시민이 다트를 던져 과녁에 맞히자 “오”라는 소리가 주변에서 들려왔다. 칵테일바 직원은 “자리가 부족하면 안쪽에 있는 테이블에 앉거나 돌아다니면서 자유롭게 즐기시면 된다”고 했다.
이태원 상권이 조금씩 회복되고 있다. 상인들은 골목에서 호객 행위를 하고 소셜미디어(SNS) 유명 식당 앞에는 방문객들이 길게 줄을 선다. 이날 밤 유명 술집 입구에도 몇몇 사람들이 입장하기 위해 모여 있었다. 교복을 입은 젊은 남성 직원은 사람들의 신분증을 확인하며 보라색 도장을 손등에 찍어줬다. 그는 “사람들이 몰리는 피크 타임에는 줄이 더 길어진다”며 “주류 등을 30만원 이상 주문하면 테이블 예약도 가능하다”고 했다.
◇이태원 찾는 외국인, 매출 65% 수준 회복
이태원을 찾는 방문자는 작년 참사 전의 80% 수준으로 회복된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 침체로 소비가 감소하며 내국인 방문자는 줄었지만, 한국을 찾는 관광객이 늘며 외국인 방문자는 참사 전보다 많다. 이태원 유동 인구 다섯 명 중 한 명은 외국인일 정도다.
조선비즈는 서울시의 공공 빅데이터와 이동 통신사 데이터를 이용해 일정 시간대에 특정 지역의 인구를 추계한 서울생활인구자료를 통해 작년 1월부터 올해 9월까지 매주 토요일 밤 10시 이태원1동의 유동 인구를 분석했다.
작년 10월 29일 밤 10시 이태원1동 생활 인구는 내국인과 국내에 거주하는 장기 체류 외국인, 관광객 등 단기 체류 외국인을 합해 7만3462명이었다. 일주일 전(3만465명)의 2.4배 수준이었다. 내국인이 5만9398명, 외국인이 1만4064명(19.1%)이었다. 생활 인구는 작년 이태원 참사 직후 급감해 사고 일주일 후인 작년 11월 5일에는 1만2844명으로 집계됐다.
이태원1동 생활 인구는 핼러윈 기간에 대체로 최고점을 찍는다. 작년의 경우 겨울철(1~2월)은 1만명대 수준이고 봄이 되며 늘어나 5월부터 3만명대를 기록했다. 그러나 참사로 사람들이 이태원 방문을 꺼리면서 올해 들어서는 토요일 밤 10시 이태원1동 생활 인구가 한 차례도 3만명을 넘기지 못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이태원을 찾는 사람들은 점점 많아져 회복세에 접어든 추세다. 올해 5월 이태원1동 생활 인구는 2만명대로 작년 같은 기간의 60% 수준이었지만, 9월 23일에는 2만6643명이 찾아 작년 비슷한 시기(9월 24일)의 87% 수준까지 올라왔다.
유동 인구 증가는 외국인 덕분이다. 이태원1동 생활 인구의 21.4%가 외국인이다. 1년 전보다 4.5%포인트 늘었다. 참사가 있었지만 여전히 외국인 관광객은 이태원을 찾는 것으로 해석된다. 9월 23일 이태원 생활 인구는 내국인 2만954명, 장기 체류 외국인 3069명, 단기 체류 외국인 2620명이다. 작년 9월 24일과 비교해 내국인은 18.1% 줄었지만 장기 체류 외국인은 0.1% 감소하는 데 그쳤다. 한편 단기 체류 외국인은 오히려 23.3% 늘었다.
다만 신용카드 매출액은 아직 참사 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했다. 서울시가 신한카드와 상품권 매출을 분석한 결과, 이태원1동에서 발생한 올해 8월 전체 매출액은 38억원이었다. 참사가 발생한 작년 10월(58억원)의 65% 수준이다. 내국인 방문객이 회복되지 못한 영향으로 보인다.
◇추모와 관광 공존하는 이태원 거리
이태원에 있는 점포들은 과거 핼러윈 데이가 다가오면 핼러윈을 상징하는 소품으로 매장을 꾸며 장식하곤 했다. 이날은 핼러윈 데이가 가까워졌지만 어디에서도 핼러윈 느낌은 나지 않았다.
반면 가게마다 적극적으로 손님을 끄는 행위는 과거와 별로 달라진 게 없었다. 이태원의 다른 바 입구에서는 야구점퍼를 입은 직원이 빨간색 야광봉을 흔들며 손님을 끌어 모았다. 한 클럽 직원은 지나가는 시민을 붙잡고 “혼자세요? 혼자도 입장 가능하세요. 여기로 오세요”라고 했다. 기본 안주로 어묵탕을 주는 주점 직원은 입구에서 난로를 튼 채 검정색 패딩 점퍼를 입고 가게로 들어오라는 손짓을 했다.
포장마차 식당에서는 50여 명의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식사를 하고 있었다. 가게 내부의 빔프로젝터에서 아이돌 그룹 노래가 흘러 나왔다. 닭볶음탕으로 유명한 식당에도 30여 명의 사람들이 앉아 연거푸 소주잔을 부딪쳤다. 일부 일식당, 한식당 등에서만 손님이 없어 조용한 분위기였다.
시민들은 각자의 이유로 이태원을 찾았다. 서울 은평구에 거주하는 류승은(28)씨는 “저녁을 먹으려 친구를 기다리고 있다”며 “작년 참사가 발생했기 때문에 경각심을 가져야 할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올해는 일정 구역에 사람들이 몰리지 않도록 (지자체에서) 밀집도를 관리한다고 하니 무사히 핼러윈 기간이 지나가면 좋겠다”고 했다. 이태원역 인근에서 만난 직장인 홍성민(25)씨는 “의정부에서 방문했다”며 “참사는 안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상권이 회복되는 것은 (상인을 위해) 다행인 것 같다”고 했다.
이태원을 즐기기 전 추모 먼저 하는 이들도 있었다. 참사가 일어난 골목에 조성된 추모 공간에서 만난 정모(20)씨는 “군대 휴가라 동기와 이태원을 방문했다”며 “참사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스페인에서 온 유학생 알바(22)씨는 “이태원에서 발생한 사고 소식을 들어 알고 있다”고 했다. 한 중년 남성은 “너무 착잡하고 힘들다”며 추모 공간을 한참 들여다본 뒤 발걸음을 옮겼다. 추모 공간에는 ‘잊지 않을게요, 편히 쉬세요’ 등의 문구가 적힌 포스트잇이 붙어 있었다.
◇”주말 유동 인구는 조금씩 돌아와, 평일은 아직도 어려워”
상인들은 올해 핼러윈이 사고 없이 지나가길 바라고 있다. 이태원관광특구연합회 관계자는 “금토일은 조금씩 유동 인구가 회복되고 있는데 평일은 전혀 받쳐주지 않고 있다”며 “대출로 연명하는 상인도 있고 문 닫은 클럽도 있는 등 여전히 어렵다”고 했다. 그러면서 “핼러윈 기간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오는 것을 막을 수는 없기에 안전을 위해 유관기관과 협조하고 있다”고 했다.
이태원관광특구연합회는 지난 4월부터 ‘헤이, 이태원’ 프로젝트로 예술 작품을 전시하고 플리마켓이나 각종 할인 행사 등을 진행하고 있다. 용산구는 이태원 안정화 대상 권역(이태원1동, 이태원2동, 한남동, 보광동, 용산2가동, 서빙고동)을 설정하고 연말까지 소상공인 회복, 이태원 마케팅, 관광객 유치, 일상 회복 심리 지원 등 4개 분야 28개 사업에 175억여 원을 투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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