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지구 지상전 늦출 수 있을까…병원 한계·대피 불가 ‘최악의 날’

김서영 기자 2023. 10. 23.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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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현지시각)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가자지구에서 연기가 치솟고 있다. AP연합뉴스

이스라엘이 인질 석방 협상을 위해 가자지구 침공을 늦추라는 미국과 서방 국가들의 압박도 무시한 채 지상작전을 강행하려 하고 있다.

가자지구를 향한 공세는 한층 거세져 개전 이래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았다. 병원들은 이스라엘로부터 공습 위협을 받고, 가자지구 북부 주민들은 남쪽으로 이동하지 않으면 “테러범으로 간주하겠다”는 경고를 받고 있다.

그러나 전쟁통에 차량 이동 비용이 천정부지로 치솟아 주민들은 대피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부모들은 폭격으로 죽을 경우에 대비해 신원을 확인할 수 있도록 자녀의 다리와 배에 이름을 적고 있다.

지상전까지 시간 벌려는 미국…이스라엘은 “휴전 없다”

22일(현지시간) CNN에 따르면,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이스라엘 정부에 가자지구 침공을 연기하라고 압박을 가했다. 미국을 비롯해 영국, 프랑스 등 6개국 정상도 이날 공동성명을 발표해 이스라엘에 국제법을 준수하고 민간인을 보호하라고 촉구했다. 인질 구출 필요성과 가자지구에 대한 인도적 지원의 시급성 등을 고려할 때 지상작전을 재고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질의 가족들도 이날 오후 이츠하크 헤르조그 이스라엘 대통령과 만나 인질 구출을 우선으로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그러나 이는 공허한 외침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이스라엘 고위 관계자는 미국의 지상작전 연기 요청을 “인지하지 못했다”고 선을 그었다. 이 관계자는 “우리도 모든 인질이 가능한 한 빨리 석방되기를 원하지만, 인도주의적 노력이 ‘하마스 파괴’란 임무에 영향을 미쳐선 안 된다”고 밝혔다. 그는 가자지구에 인도적 지원을 해야 한다는 미국의 요청이 “이스라엘에서는 인기가 없다”고 덧붙였다.

다니엘 하가리 이스라엘군 대변인도 호주 A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하마스가 우리 인질 212명을 모두 돌려주고 무조건 항복을 한다고 해야만 전쟁은 끝난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가자지구에 진입해 (목표를) 달성 해내야 한다”고 답했다.

가자지구 남부 칸유니스에서 22일(현지시간)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유엔이 운영하는 학교에 대피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그동안 이스라엘이 섣불리 가자지구로 진입하지 못한 가장 큰 걸림돌은 하마스가 확보한 인질이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최근 인질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는 쪽으로 분위기가 돌아선 것으로 전해진다. 이스라엘 정보 관료 출신 아비 멜라메드는 이스라엘이 “인질이 없는 것처럼 전쟁 계획을 추진하리라 본다”고 가디언에 말했다.

병원 수용 능력 한계로 내모는 폭격…“가장 피비린내 나는 날”
가자지구 알아크사 병원에서 22일(현지시간)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친척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다. AP연합뉴스

국제사회의 만류에도 이스라엘이 공세를 강화함에 따라, 가자지구는 22일 개전 이래 ‘가장 피비린내 나는 날’을 겪었다. 팔레스타인 국영 WAFA통신은 “지난 24시간 동안 가자지구 전역에 이스라엘의 공습이 최소 25차례 이어져 400명 이상이 숨졌다”며 “지난 7일 전쟁이 시작된 이후 가장 큰 폭격”이라고 보도했다.

가자지구 중부에 있는 알아크사 병원 관계자는 “부상자 300명 이상이 입원한 상태에서 조금 전 166번째 시신이 들어왔다”면서 “전 세계 어떤 병원과 어떤 의료진도 이 정도의 부상자를 돌보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CNN에 말했다. 밤사이 이 병원으로 후송된 사상자의 65%는 아동이었다.

특히 이스라엘이 대피 명령을 내린 가자지구 북부의 병원들은 절망적인 상황이다. 인도네시아 병원 인근도 공습으로 심각한 피해를 본 것으로 알려졌으며, 알쿠드스 병원은 이스라엘로부터 “(대피하지 않으면) 언제든 공습할 수 있다”는 경고를 받았다고 전했다.

그러나 대피는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계속해서 위중한 환자가 이송돼 오고 있는데다, 생명유지장치를 달고 있는 환자는 이동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알시파 병원의 모하마드 아부 살미야 원장은 “앞으로 48시간 내 연료가 고갈될 것으로 보인다”면서 “‘진짜 재앙’ 직전에 처했다”고 알자지라에 밝혔다.

죽어서 신원이라도 밝히도록…아이 다리에 이름 적는 부모들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부상을 당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19일(현지시간) 가자지구 알시파 병원으로 들어오고 있다. AP연합뉴스

이스라엘은 전날 가자지구 북부 주민들에게도 “남부로 대피하지 않으면 테러범으로 간주하겠다”는 경고 전단을 뿌렸지만, 주민들 역시 현실적으로 대피가 불가능하다고 호소했다.

한 주민은 “이스라엘의 공습 탓에 도로가 파괴되고 이동 비용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전쟁 전에는 남부로 가는 차비가 인당 3달러였지만, 지금은 200~300달러”라면서 “먹을 것을 구할 돈도 없는데 그 돈을 어디서 구하나”라고 말했다. 게다가 이스라엘의 공습이 북부부터 남부까지 가리지 않고 이어지고 있어서, 북부지역 주민들은 이도 저도 못하는 상황이다.

프란체스카 알바네세 유엔 팔레스타인 인권특별보고관은 “도망칠 의지가 없거나 도망칠 수 없는 민간인 수십만명을 테러 공범으로 지정하는 것은 집단 처벌이며 인종 청소에 해당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참상 속에서 가자지구 일부 부모들이 자녀의 다리와 배에 이름을 적고 있다고 CNN은 전했다. 폭격으로 죽게 될 경우 자녀의 신원이라도 확인할 수 있도록 하려는 차원이다. 알아크사 병원 영안실에 안치된 영아 1명과 유아 3명은 종아리에 아랍어로 이름이 적혀 있었다. 언제 변을 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 이러한 관행이 최근 등장했다고 CNN은 보도했다. 가자지구 보건부에 따르면 지난 7일 이후 23일까지 가자지구의 누적 사망자수는 5000명을 넘어섰다.

김서영 기자 westzer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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