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직 변호사의 디지털 창세기]〈39〉디지털 시대, 대법원장의 자격
사법부가 위기다. 대법원장 후보가 대통령 임명권과 국회 동의권이 충돌하며 끝내 낙마했다. 대법원장 공백이 장기화되면 신규 대법관 제청 등 법원 행정만이 아니라 전원합의체 사건 등 재판 업무가 영향을 받는다. 증가 추세에 있는 분쟁을 고려하면 재판 지연과 졸속 판결도 우려된다.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이 감당해야 한다. 대한민국에 '정의'가 비어있는 것과 같다. 여기에 그치면 다행이다. 사법부의 위상과 신뢰 훼손으로 이어지면 큰일이다. 판사를 믿지 못하고, 재판 과정을 수긍하지 못하며, 판결에 승복하지 않게 된다. 인공지능(AI)이 재판하면 좋겠다는 사람도 있다. 누가 법원에 억울함을 호소하겠는가. 영화처럼 사적 복수를 찾는다면 국민은 끝없는 분쟁에 휩쓸린다.
옛날, 이승만 정부는 집권 초기에 사법부가 독립을 유지하고 독재를 견제하는 아이러니를 제공했다. 김병로 초대 대법원장 임명이다. 법무장관 등 국무위원이 추천하고 국민의 신망을 받는 그 외엔 대안이 없었다. 대통령은 행정부와 국회를 매섭게 대했지만 대법원엔 그러지 못했다. 불편했지만 존중했다. 그래도 정치적으로 불쾌한 판결이 나오면 속내를 숨기지 않았다. 사법권 독립을 빌미로 판사들이 거들먹거리며 직책과 본분을 잊고 있다고 힐난했다. 대법원장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판사가 내리는 판결은 나도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으니 항소해 다투라며 맞받았다. 판사가 정의의 대변인이 되고 청렴할 것을 주문했고 몸소 실천했다. 타임머신을 타고 그가 온다면 다시 훌륭한 대법원장이 될 수 있을까.
사법부 독립을 위협하는 공격과 회유는 항상 있어 왔다. 사법부를 존중하는 권력이 나오기를 기도에 의존할 수는 없다. 외부 공격을 견디고 사법부를 지킬 맷집을 가진 우두머리 판사가 나와야 한다. 그런 사람이 없다는 것이 현재 사법부 위기의 본질이다.
디지털시대는 온라인, 모바일 등 생활 영역 확대와 끊임없는 접속이 있다. 이해관계 대립과 법적 분쟁이 매일 증가한다. 권리의식 확대와 법률정보 대중화는 재판과정과 판결의 사소한 흠집도 놓치지 않을 만큼 국민을 법률전문가로 만들었다.
디지털시대 대법원장의 자격은 어떠해야 할까. 정부와 국회를 대할 때 여우처럼 교활하고 사자처럼 용맹해야 한다. 발톱을 숨기고 선량한 눈을 보이지만 원칙엔 타협이 없어야 한다. 국민이 원하는 그런 사람을 국회 청문회가 낙마시킬 수 있을까. 국회가 문을 닫을 일이다. 임명 되면 자신을 추천하고 동의한 권력에 무심하게 등을 돌려야 한다. 정치세력에 편향되지 않아야 한다. 붕대로 눈을 감은 법의 여신처럼 사적 이해관계에 초연하고 공정함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 사법부의 위상은 판사가 똑똑하다고 얻은 자리가 아니다. 공정한 재판을 국민과 헌법에 다짐했기에 얻은 명예다. 국민을 가르치겠다는 엘리트의식을 버리고 진심을 보여야 한다. 패소 당사자에게 억울함이 없는지 살펴야 한다. 학력, 인맥이 아니라 법과 양심에 따라 재판해야 한다. 신속하게 재판해 국민이 분쟁에서 빨리 벗어나게 해야 한다. 일선 판사의 재판에 영향을 주지 않으려면 그들을 우대하고 말과 행동에 신중해야 한다. 국민의 신망을 얻으면 누가 사법부를 자기 입맛대로 조정하려 꿈이라도 꾸겠는가.
대법원장은 디지털 미래를 고민해야 한다. 헌법은 우리 영토를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라고 한다. 정말 그럴까. 국민의 활동영역은 K콘텐츠를 필두로 온라인, 모바일, 가상공간으로 넘어간다. 그곳엔 경계도 없다. 아이디어와 기술이 있으면 우리 땅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디지털 영토에 아바타, AI 휴머노이드, 로봇이 등장해 우리를 위해 일하고 있다. 국민의 확장이다. 디지털 약자에 귀 기울이고 사이버 주권까지 고민해야 한다. 디지털시대 사법부의 위상과 권위는 대한민국의 품격을 넘어 국가 생존을 위한 필수재임을 잊지 말자.
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혁신과 공존의 신세계 디지털'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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