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균이 김승희 가릴 순 없다 [김민아 칼럼]
주말을 앞둔 20일, 두 가지 뉴스가 터져나왔다. 김승희 전 대통령실 의전비서관의 ‘자녀 학교폭력’ 무마 의혹, 그리고 배우 이선균씨의 마약 투약 의혹이다. 이씨 의혹은 전날부터 소문으로 돌았으나, 특정되지 않은 상태였다.
실명이 공개된 것은 김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정감사에서 김 전 비서관 의혹을 폭로한 이후다. ‘보이지 않는 손’ 같은 음모론엔 관심없다. 다만 대중의 시선이 이씨에게 쏠린 사이, 김 전 비서관 의혹이 묻혀선 안 된다고 여긴다.
의혹의 개요는 이렇다. 김 전 비서관의 초등학교 3학년 딸은 지난 7월 2학년 여학생을 폭행해 전치 9주 상해를 입혔다.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학폭위)는 사건 발생 두 달 후에야 열렸다. 피해 아동 학부모가 강제전학을 요구했으나 ‘학급 교체’에 그쳤다. 동급생이 아닌 만큼 의미 없는 조치다. 학폭위 총점 16점부터 강제전학인데 가해 학생은 딱 1점 모자라는 15점을 받았다.
김 전 비서관 부인은 학폭 가해를 ‘사랑의 매’라 불렀다고 한다. 게다가 딸에게 임시 출석정지가 내려진 날,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프사’)을 남편과 윤석열 대통령이 함께 있는 사진으로 바꿨다. 김 전 비서관은 김건희 여사와 고려대 언론대학원 최고위과정 동기다. 카카오톡 친구 중 기혼여성이 많지만, 남편과 남편의 상사가 함께 찍힌 사진을 ‘프사’로 올린 경우는 본 적이 없다.
대통령실은 김 의원 폭로 직후 공직기강 조사에 착수했으나, 김 전 비서관이 사표를 내자 곧바로 수리했다. 별정직 공무원은 감찰 중에도 사표 수리가 가능하다는 게 대통령실 입장이다. 그러나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사표부터 받는 게 온당한가. 21일 시작되는 대통령의 순방 뉴스가 ‘김승희’로 덮이기 전에 꼬리 자르려 했다는 의구심을 지우기 어렵다.
윤 대통령은 지난 18일 “국민은 늘 무조건 옳다. 어떠한 비판에도 변명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김은혜 홍보수석이 엄숙한 톤으로 ‘교시’를 전할 때, 잠시 감동할 뻔했다. 이내 정신차렸다. 김 수석 브리핑에 이어 김대기 비서실장이 신임 헌법재판소장 후보자로 이종석 헌법재판관이 지명됐다고 발표해서다.
이 후보자는 윤 대통령과 서울대 법대 79학번 동기동창이다. 수많은 동기 중 한 명이 아니다. 2006년 당시 윤석열 검사가 청구한 구속영장을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판사이던 이 후보자가 기각하자, 두 사람의 “막역한 사이”(국민일보)가 기사화될 만큼 ‘절친’이다. 당시 이 후보자는 “친구는 친구고 일은 일이다. 기각 후 윤 검사에게 전화로 ‘미안하다’는 마음을 전했다”고 말했다.
이 후보자는 윤 대통령이 검찰총장 재직 중 검사징계법 헌법소원을 청구하자 심리를 회피한 적도 있다. 그럼에도 대통령실에선 “그렇게 가까운 사이도 아닌 것 같고, 동기라고 불이익 받는 것도 그렇”다고 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편이 낫겠다.
“국민은 늘 무조건 옳다”는 윤 대통령 발언은 앞이나 뒤가 생략된 게 분명하다. “(나를 지지하는 30%가량의) 국민은 늘 무조건 옳다”거나 “국민은 늘 무조건 옳다.(하지만 나는 무오류다)”로 해석하는 편이 합리적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절친(문모 변호사)의 절친(이균용 판사)’을 대법원장 후보자로 지명했다가 임명동의안 부결 사태를 겪고도 다시 ‘다이렉트 절친’을 헌재소장에 지명할 수 있나.
입법·행정·사법 3권의 견제와 균형은 민주주의 작동의 기본 원리다. 헌재는 특히 대통령이 헌법이나 법률을 위반해 국회로부터 탄핵소추될 경우, 파면 여부를 심판하는 기관이다.
윤 대통령은 최근 “저와 우리 내각에서 돌이켜보고 반성도 하겠다” “소모적 이념 논쟁을 멈추고 민생에만 집중해야 한다” 등의 발언도 했다. 그런데 육사는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에 이어, 홍범도·김좌진 장군 등을 기리는 ‘독립전쟁 영웅실’ 철거까지 진행 중이라고 한다.
심리학에 ‘인지부조화’ 이론이 있다. “ ‘나는 똑똑하다’고 자신에 대한 태도를 가지고 있는 학생이 형편없는 시험성적을 받으면, 자신의 행동(형편없는 시험성적)과 태도(‘나는 똑똑하다’) 사이에 부조화가 발생한다”(심리학용어사전).
윤 대통령이 비슷한 상황 아닐까. ‘나는 국민으로부터 사랑받아 마땅한 지도자’라 생각하는데, 서울 강서구청장 선거에서 참패했다. 지난 20일 공개된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선 지지율이 30%에 턱걸이했다. 대구·경북을 포함한 전 지역에서 부정평가가 긍정평가보다 높았다. 인지부조화가 발생할 법하다.
사전을 계속 살펴보자. “의사결정이나 개인의 행동이 이미 가지고 있는 태도나 생각, 느낌과 충돌하면 사람들은 심리적 갈등을 줄이고자 태도나 행동을 변화시켜 일관성을 유지하려 한다.” 윤 대통령도 ‘태도나 행동을 변화’시키기로 한 것 같다. “국민은 늘 무조건 옳다” “돌이켜보고 반성” “이념보다 민생” 등의 언명이 그것이다.
인지부조화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를 나쁘다 할 순 없다. 다만 말의 성찬에 그쳐서는 안 된다. 일련의 발언이 진심이라면 할 일이 많다. 당장 할 수 있는 세 가지만 알려드리겠다.
첫째, 김 전 비서관이 딸의 학폭 처리 과정에 ‘권력형 외압’을 가했는지 명명백백히 규명하고 관련자 모두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김영호 의원은 “폭로 전 대통령실에서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한 언론사 기자도 “지난 여름, 김 전 비서관 관련 의혹을 제보받은 적 있다”고 밝혔다. 대통령실은 사전 인지설을 부인하고 있으나 몰랐다고 면책되진 않는다. 알고 쉬쉬했다면 더욱 심각한 문제이지만, 몰랐다 해도 공직기강 관리에 구멍이 난 것이다.
둘째, 절친 헌재소장 후보자 지명을 철회하고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의심받지 않을 헌재소장·대법원장감을 찾아야 한다.
셋째, 독립운동가 폄훼를 중단해야 한다. ‘늘 무조건 옳은’ 국민 뜻을 참고하시라. KBS가 지난달 공개한 여론조사를 보면, 육사의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63.7%, ‘동의한다’는 26.1%였다.
김민아 칼럼니스트 ma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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