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카페] 정자는 뉴턴 운동 법칙도 무시한다
편모 탄성 이용해 에너지 잃지 않아
유체 이동하는 미세로봇 개발에 도움
정자 운동 연구는 불임 해결에도 기여
정자는 뉴턴의 운동 법칙마저 무시하고 난자를 향해 돌진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정자의 운동 능력을 모방하면 유체 속에서 자유롭게 움직이는 초미세 로봇을 설계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일본 교토대 수리과학연구소의 이시모토 켄타(Ishimoto Kenta) 교수 연구진은 지난 11일 미국 물리학회가 발행하는 ‘피지컬 리뷰 엑스(PRX) 생명’에 “인간의 정자와 녹조류 세포는 자신의 몸을 변형해 뉴턴의 운동 3 법칙를 넘어서는 운동을 한다”고 밝혔다.
◇편모의 탄성 이용해 추진력 얻어
뉴턴의 운동 3 법칙은 ‘모든 작용에 대해 크기는 같고 방향이 반대인 반작용이 존재한다’이다. 이를테면 내가 벽을 밀면 벽이 같은 힘으로 나를 밀어낸다는 것이다. 이시모토 교수는 “이번 연구에 따르면 내가 벽을 밀면 벽이 나를 미는 대신 내게서 멀어질 수도 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정자와 녹조류인 클라미도모나스(Chlamydomonas)의 운동을 관찰했다. 둘 다 몸에서 채찍처럼 뻗어 있는 가늘고 긴 편모(鞭毛)를 움직여 이동한다. 정자나 녹조류가 이동할 때 점성이 있는 주변 유체는 장애가 된다. 편모가 유체를 밀면 반작용으로 세포의 에너지를 소모하기 때문이다. 이러면 정자나 녹조류 세포는 아무리 편모를 흔들어도 더는 전진하지 못한다.
연구진에 따르면 정자나 녹조류의 편모는 탄성이 좋아 주변 유체와 반응해 형태를 쉽게 바꿀 수 있다. 덕분에 주변 유체에 에너지를 잃지 않고 뉴턴의 운동 3 법칙을 위배하는 비가역적(non-reciprocal) 방법으로 전진할 수 있다는 것이다. 편모가 유체를 쳐도 유체가 반작용하지 않고 밀려나는 식이다.
교토대 연구진은 이러한 편모의 변형을 ‘홀수 탄성 계수(odd elastic module)’란 수치로 정리했다. 이 수치가 클수록 편모는 주변 유체에 방해받지 않고 더 많이 흔들린다. 민태기 에스엔에이치연구소 소장은 “작은 새가 날개를 더 많이 퍼덕이듯 물속의 생명체도 작을수록 꼬리나 편모의 움직임이 활발하다”며 “이번에 이를 홀수 탄성이란 개념으로 일반화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정자가 뉴턴의 운동 제3 법칙을 거스른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민 박사는 말했다. 그보다 3 법칙을 의도적으로 회피하는 기동을 해서 추진력을 얻는다는 의미란 것이다. 새들이 비행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부채를 아래위로 똑같이 흔들면 날지 못한다. 뉴턴 3 법칙에 따라 아래위로 작용하는 힘이 같기 때문이다. 새는 의도적으로 날개를 부채와 다른 형태로 퍼덕여 날 수 있다.
이시모토 교수는 “이번 연구 결과를 이용하면 정자의 편모처럼 몸통을 부드럽게 만들어 뉴턴의 3 법칙에 구애받지 않고 헤엄치는 초소형 로봇을 설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민태기 박사는 “생체모방 역학이 중요한 것은 자연이 오랜 진화과정에서 갖춘 기능이 인류의 진보에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사이클 선수처럼 협동해 저항 이겨내
정자의 운동에 관한 연구는 남성의 불임 가능성을 진단하고 해결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남녀 모두 결혼 시기가 늦어지면서 정자의 운동 능력에 관한 연구가 활발해지고 있다. 미국에서는 1980년 35~49세 남성이 아빠가 되는 경우가 1000명 중 43명이었지만, 2015년에는 1000명 중 69명으로 급증했다. 2015년 뉴질랜드 연구진이 ‘노화 연구 리뷰’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남성의 나이는 정자의 모양과 움직임에 영향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최근 과학자들은 정자들이 난자에 먼저 도달하기 위해 무한 경쟁을 벌인다는 기존 생각이 잘못됐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보다 서로 밀어주는 사회적 협동을 한다는 것이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농업기술주립대 연구진은 지난해 ‘첨단 세포발생생물학’에 “여성 생식기의 3차원 구조를 모방한 실험을 통해 소의 정자들이 2~4개체가 무리 지어 체액을 거슬러 헤엄치는 것을 확인했다”라고 밝혔다.
노스캐롤라이나 농업기술주립대 연구진은 지금까지 현미경 관찰 방법의 한계 때문에 정자의 운동을 제대로 밝히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물을 묻힌 유리판 사이에 정액을 눌러 붙인 상태로 보면 정자의 3차원 움직임을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이다. 대신 연구진은 실리콘 미세관의 한쪽에 주사기로 여성 생식기에서 분비되는 체액처럼 점도가 높은 액체를 주입하고, 반대편에 사람 정자와 모양과 운동 형태가 비슷한 소의 정자 약 1억 개체를 넣었다.
관찰 결과 정자들은 둘에서 넷 정도 개체가 무리를 지어 마주 흘러오는 끈적끈적한 액체를 거슬러 헤엄쳤다. 연구진은 “정자들의 군집 이동은 사이클 선수들이 공기 저항을 덜 받기 위해 무리를 지어 이동하는 ‘펠로톤(Peloton)’과 비슷하다”며 “무리를 짓지 않으면 어떤 개체도 자궁에 흐르는 체액의 강한 유속을 이겨내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무한 경쟁을 벌이다가 다 실패하기보다 일부만이라도 난자가 있는 나팔관까지 갈 수 있도록 군집 이동을 한다는 것이다.
정자들이 무리를 지어 이동하는 사례는 또 있다. 2002년 영국 셰필드대 연구진은 ‘네이처’에 유럽과 아프리카 북부에 사는 북숲쥐의 정자들이 머리에 달린 고리로 수백, 수천 개체씩 기차처럼 연결돼 이동한다고 발표했다. 2016년 미국 툴레인대 연구진은 주머니쥐의 정자가 비대칭인 머리를 서로 연결하고 쌍으로 헤엄친다고 발표했다. 정자들은 난자 가까이 간 뒤에야 떨어졌다.
참고 자료
PRX Life(2023), DOI:https://doi.org/10.1103/PRXLife.1.023002
Frontiers in Cell and Developmental Biology(2022), DOI: https://doi.org/10.3389/fcell.2022.961623
National vital statistics reports(2017), https://stacks.cdc.gov/view/cdc/43595
Spora: A Journal of Biomathematics(2016), DOI: https://doi.org/10.30707/SPORA2.1Cripe
Ageing Research Reviews(2015), DOI: https://doi.org/10.1016/j.arr.2014.10.007
Nature(2002), DOI: https://doi.org/10.1038/nature0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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