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장들에 지휘봉 휘두르는 27살 천재, 클라우스 메켈레는 누구인가
2027년부터 RCO 수석지휘자
지휘자 클라우스 메켈레는 1996년 1월17일 핀란드 헬싱키에서 태어났다. 그의 이름엔 ‘천재’라는 수식어도 부족한 느낌이 든다. 스물일곱 살에 세계적 명문 오케스트라 세 곳의 수장 자리를 차지했다. 오는 28일 경기 고양아람누리 아람음악당, 30일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에서 오슬로 필하모닉을 지휘한다. 메켈레는 첫 내한 공연을 앞둔 23일 e메일 인터뷰에서 “지휘자는 단원에게 진실한 모습을 보이며 서로 존중해야 하고, 무엇보다 언제나 음악적으로 준비돼야 한다”고 말했다.
노장들을 이끄는 20대 지휘자
이렇게 젊은 나이에 출세한 지휘자는 드물다. 메켈레는 24세인 2020년부터 오슬로필, 25세인 2021년부터 파리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상임지휘자)을 맡아왔다. 31세가 되는 2027년부터는 세계 최정상 교향악단인 로열콘세르트헤바우(RCO)의 수석지휘자가 된다. 단원들을 조율하고 훈련시키는 리더십에, 악단의 방향을 결정하는 행정 감각도 갖춰야 하는 직책이다. 20대 지휘자가 어떻게 머리가 희끗한 노장 단원들을 이끌어가는 것일까. “지휘자로서 준비된 모습이 어떤 것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리허설에서 만드는 모든 해석과 움직임에 근거가 있어야 하죠. 그리고 제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표현하고 보여주려고 합니다.”
메켈레는 음악가 집안의 아들이다. 아버지는 첼리스트, 어머니는 피아니스트이다. 연주자로 경력을 쌓은 뒤 지휘자의 길을 걷는 경우가 많지만 메켈레는 소년 시절부터 바로 지휘봉을 잡았다. 메켈레는 일곱 살 때 오페라 <카르멘>의 어린이합창단에 참여한 경험을 떠올렸다. “제 눈에는 지휘자만 보였어요. 물론 아주 어린 나이였지만 그때부터 지휘의 꿈을 꾸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12세 때 전설적 지휘자 요르마 파눌라와 공부할 수 있는 행운이 찾아왔어요. 점점 더 지휘가 자연스러운 일로 느껴졌죠.”
파눌라는 1973~1994년 시벨리우스 음악원에서 지휘를 가르치며 핀란드 지휘 명장들을 길러냈다. KBS교향악단의 음악감독 피에타리 잉키넨과 서울시립교향악단의 전 음악감독 오스모 벤스케, 에사 페카 살로넨, 미코 프랑크, 사카리 오라모, 한누 린투 등이 모두 파눌라의 제자들이다. “파눌라의 존재는 핀란드가 음악 역사에서 강력한 국가가 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였습니다. 파눌라는 우리에게 ‘이렇게 저렇게 지휘하라’고 직접 가르쳐주지 않았어요. 대신 음악에서 무엇을 찾아내고 구현하기 위해 음악에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에 집중했죠. 이 모든 기억이 여전히 도움이 됩니다.”
이번 공연은 지휘자(메켈레), 작곡가(시벨리우스) 모두 핀란드 출신이다. 시벨리우스 본인이 1921년 오슬로필을 직접 지휘한 역사가 있다. 메켈레는 오슬로필을 ‘강한 오케스트라’라고 요약했다. “현악과 관악, 악기에 상관없이 모두 깊고 강한 소리를 갖고 있습니다. 마리스 얀손스(2019년 사망한 전임 음악감독)가 오슬로필을 20년 넘게 이끌며 쌓아온 세심한 접근 방식도 남아 있죠. 오슬로필은 그들만의 아주 풍성하고 깊은 고유의 소리가 있습니다. 공연장에 오면 바로 느끼실 것이라고 자신합니다.”
28일 공연에선 바이올린 협주곡과 교향곡 2번을 무대에 올린다. 30일 공연에선 교향시 ‘투오넬라의 백조’, 바이올린 협주곡, 교향곡 5번을 선보인다. 메켈레는 “시벨리우스는 제 고향인 핀란드에서 가장 유명한 작곡가”라며 “저희를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음악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특히 교향곡은 오슬로필과 여러 번 투어를 했고 제가 전곡을 녹음하기도 했죠. 이들은 시벨리우스를 어떻게 연주해야 하는지 몸으로 알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교향곡 2번과 5번은 시벨리우스가 가진 각각 다른 면을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로맨틱한 면과 어두운 면 모두요.”
바이올린 협주곡은 네덜란드 출신 세계적 바이올리니스트 재닌 얀센이 협연한다. 힘이 넘치면서도 유연한 활놀림에서 나오는 풍부한 표현력 때문에 ‘활의 마법사’라는 별명을 가졌다. “재닌과는 방금 전에도 리허설을 했는데요, 이전에도 여러 차례 협연한 적이 있죠. 재닌은 언제나 가득한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다양한 시도를 할 준비가 된 연주자입니다.”
‘직업적 정상’ vs ‘향후 증명 필요’
천재 지휘자의 야심만만한 행보는 이제 시작 단계라고 할 수 있다. 독일의 음악평론가 프레데릭 한센은 메켈레의 인터뷰 기사에 ‘두려움을 모르는 남자’라는 제목을 붙였다. 메켈레가 지난 4월 ‘세계 최고 오케스트라’ 베를린 필하모닉을 처음 지휘하면서 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 ‘비창’을 선택한 장면은 그의 비범한 배짱을 보여준다. ‘비창’은 키릴 페트렌코가 베를린필 상임지휘자로 지명받은 이후 임기 시작 전 객원지휘하면서 처음으로 연주했던 곳이다. 천재는 거장과의 비교에 부담을 느끼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음악계는 엄청난 재능을 가진 청년을 믿지 못하며 여전히 눈을 비비고 있지만, 메켈레 자신은 이미 직업적 정상에 도달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는 것 같다. 베를린필을 처음 지휘할 때 동료(페트렌코)의 기존 녹음에 주눅이 들었다면 메켈레는 메켈레가 아니었을 것이다. 실제로 그는 자신의 해석이 페트렌코와 비교되는 것에 대해 여유로운 태도를 보였다.”
메켈레는 소통과 존중을 중시하는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지닌 지휘자로 알려졌다. 노승림 음악평론가는 “메켈레의 지휘는 정확하고 간결해 이해하기 쉽기 때문에 어떤 오케스트라에도 환영을 받는다. 여기에 수려한 외모까지 갖췄다”고 평했다. “메켈레는 자신의 해석이나 음악을 고집하기보다 저마다 다른 오케스트라의 상황을 고려해 유연하게 대처합니다. 요르마 파눌라를 사사한 지휘자들의 공통적인 특징이에요. 북유럽식 민주주의가 지휘 전통에도 반영됐다고 볼 수 있겠죠.”
명성과 인기에 걸맞은 실력이 아직 확인되지 않은 지휘자라는 평가도 나온다. 허명현 음악평론가는 “메켈레가 지금까지 이룬 업적보다는 앞으로 자신의 실력을 증명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며 “이제 거장의 수준에 오르기 위한 시험을 거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RCO는 메켈레의 미래에 과감히 투자하는 모험을 한 거죠. 메켈레가 좋은 악단들을 맡았던 이유가 오로지 실력 때문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굉장히 젊은 나이로 신선한 자극을 줘서 인기를 얻고 화제가 커진 영향이 크다고 봐요.”
메켈레는 2021년 오슬로필, 2022년 파리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내한하려 했지만 코로나19 팬데믹 때문에 공연이 취소됐다. 메켈레와 한국 팬들은 오랜 기다림 끝에 서로 만날 수 있게 됐다. “두 차례나 한국에 가지 못해 진심으로 아쉬웠고 죄송했어요. 하지만 그때의 아쉬움 덕분에 내한 공연에 대한 기대감이 더 커졌습니다. 공연장에서 뵙기를 진심으로 기대합니다!”
허진무 기자 imagi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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