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붙이기 참 힘든 나라"…기대감 안고 이민 갔다가 '실망' [위기의 독일경제⑥]

"정착하기 참 어렵네요"
독일, 어쩌다 취업 기피국됐나

이 기사는 국내 최대 해외 투자정보 플랫폼 한경 글로벌마켓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위기의 독일경제 ⑥-'시한 폭탄'된 인력난

지난 9일(현지시간) 독일 바이에른주 최대 도시 뮌헨의 BMW 본사에서 만난 공장 투어 가이드 율리아 프롬은 “BMW는 메르세데스-벤츠, 폭스바겐 등과 함께 독일에서 급여 수준이 비교적 높고 근무 환경이 가장 좋은 기업 중 한 곳에 속한다”면서도 “글로벌 환경 변화로 인해 최근 숙련된 인력을 구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로봇 등을 활용해 보다 유연한 근무 환경을 만드는 데 힘쓰고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 이날 BMW 공장 곳곳에선 ‘KUKA(쿠카)’라는 로고가 적힌 노란색 로봇들이 쉴 새 없이 팔을 움직이며 장비를 나르고 있었다. 쿠카는 40년 넘게 BMW의 전 세계 생산 현장에 산업용 자동화 로봇을 공급해 온 업체다.

독일 경제 성장의 엔진이 돼 온 주력 산업계가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다. 독일자동차산업협회(VDA)의 안드레아스 라데 매니징 디렉터는 도이체벨레(DW)에 “최근 자동차 공급업체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응답 기업 중 4분의 3 이상이 심각한 인력난을 겪고 있다고 답했다”며 “고숙련 인력의 부족이 독일 차 업계의 핵심 도전 과제로 떠올랐다”고 말했다. 독일 수출의 핵심 축을 담당해 온 기계공업 부문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독일기계공업협회(VDMA)의 임원인 틸로 브로트만은 “협회 소속 기업 중 인력난을 호소하는 비율은 70% 이상에 달한다”며 “2021년부터 상황은 계속해서 악화해 왔고, 이는 곧 경제 성장 둔화로 직결될 것”이라고 말했다.

독일이 비교적 부진하다는 평가를 받아 온 반도체 업계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독일 전자전기산업협회(ZVEI)의 사브리나 파이퍼는 “앞으로 몇 년간 지속될 베이비부머들의 은퇴로 ‘인재 전쟁’이 촉발됐고, 반도체 산업이 특히 큰 타격을 입었다”며 “이 분야 기업들의 40% 이상이 구인 활동에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고 전했다. 독일경제연구소(IW)와 컨설팅 업체 PwC에 따르면 독일 반도체 업계에는 이미 6만2000명의 숙련공이 부족한 상황인데, 인텔, TSMC 등 독일에서 신설‧확장되고 있는 새 공장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선 근로자 35만명이 추가로 필요하게 될 전망이다.

인구 문제 해결을 위해 독일 정부가 이민 정책에 사활을 걸었지만,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독일은 점점 더 매력적이지 않은 나라가 돼 가고 있다. 뿌리 깊은 관료주의와 독일어를 고수하는 문화, 고율의 세금 등으로 정착에 어려움을 느낀다는 이유에서다. 프랑크푸르트에 거주 중인 박모씨도 “독일에서 한 번이라도 집을 구하거나 계좌를 터 본 사람이라면 이곳에 정을 붙이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3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독일의 인적자원 경쟁력 순위는 2019년 12위에서 2023년 15위로 4년 만에 3계단 하락했다.

뮌헨=장서우 기자 suwu@hankyung.com

▶ 클래식과 미술의 모든 것 '아르떼'에서 확인하세요
▶ 한국경제·모바일한경·WSJ 구독신청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