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인에 연민 표하면 테러 지지?···美서 이·팔 갈등 폭발
이스라엘 정권 비판하자 채용·행사 취소도
"논쟁적인 문제일수록 대화로 차이 이해해야"
美 기업들은 '팔 지지 입장 내라' 압박 직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간 전쟁을 둘러싼 미국 사회의 갈등이 폭증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습에 대한 인간적 연민을 표한 사람들이 '테러 지지자' 명단에 등재되는 한편, 이스라엘에 비판적인 입장을 드러낸 이들은 채용 및 행사 참여 취소 통보를 받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팔 분쟁을 둘러싼 흑백논리식 접근이 확산할수록 자유로운 의견 표명과 소통이 어려워지고, 그 결과 갈등이 더 심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워싱턴포스트(WP)는 22일(현지시간) 최근 온라인상에 팔레스타인을 지지한 이들의 명단을 정리한 웹사이트가 개설됐다고 보도했다. 웹사이트 '반이스라엘 직원'에는 특정인이 작성한 팔레스타인 지지 SNS 게시물과 함께 그의 이름, 소속이 올라와 있다. 명단에는 아마존, 딜로이트, 마이크로소프트, 마스터카드 등 미국 주요 기업과 대학, 외국 스타트업 직원들이 포함됐다.
해당 웹사이트는 가자지구의 인도적 위기에 대해 단순히 연민을 표현한 이들에게도 '테러 지지 가능성이 있다'는 평가를 내렸다. 한 구글 직원은 링크드인에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사망한 팔레스타인인 동료를 추모하는 게시글을 올렸다가 해당 명단에 올랐다. 이 직원은 웹사이트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WP에 전했다. 그의 게시글에는 "너의 테러리즘 지지는 감시되고 있다. 미래에 새 직장을 찾는 데 행운을 빈다"는 댓글도 달렸다.
팔레스타인 지지 목소리를 압박하는 움직임은 대학가에서도 나타났다. 앞서 하버드대 학생모임 '하버드 팔레스타인 연대 그룹'은 전쟁 발발 직후인 7일 이스라엘 정권의 책임론을 제기하는 성명을 발표했다가 온라인에 신상이 유출됐다. 보수단체 '어큐러시 인 미디어'는 이들의 이름과 사진이 담긴 전광판을 실은 광고 트럭을 제작해 보스턴 시내를 운행했다. 리나 워크먼 뉴욕대 로스쿨 학생회장 역시 이스라엘에 책임이 있다는 주장을 했다가 최근 합격한 로펌에서 채용 취소 통보를 받았다.
이번 분쟁과 관련한 논란 소지가 있는 행사들도 잇따라 영향을 받고 있다. 퓰리처상 수상자인 베트남계 미국 작가 비엣 타인 응우옌은 20일 뉴욕 92번가Y문화센터(92NY)에서 간담회를 할 예정이었지만 당일 행사가 연기됐다는 통보를 받았다. 응우옌이 이스라엘 비판 공개서한에 서명했기 때문이라는 비판이 일자 92NY는 "(응우옌의 행보는 유대인) 공동체를 완전히 파괴하는 것"이라는 입장을 냈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텍사스주 휴스턴 힐튼 호텔에서 이달 말 열릴 예정이었던 '팔레스타인 인권을 위한 미국 캠페인'의 연례 회의도 취소됐다. 이 단체의 아흐마드 아부즈나이드 전무이사는 "우리는 SNS에서 사람들이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하며 (행사를) 취소하라고 촉구하는 것을 봤다"고 비판했다.
NYT는 “일각에서는 전쟁과 비극의 순간에 (행사) 취소 행렬이 이어지면서 대화와 이해를 촉진할 기회가 제한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고 전했다. 미국의 비영리단체인 개인 권리 및 표현 재단(FIRE) 소속 애론 테르 활동가는 NYT에 "(이·팔 분쟁은) 분명히 매우 민감한 문제"라면서도 "우리는 논쟁적인 문제일수록 표현을 많이 하고, 대화와 비판을 거쳐 서로의 차이점을 이해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스라엘 공개 지지 성명을 낸 기업들은 팔레스타인 지지 입장 표명을 하라는 압박에 직면했다. 대표적으로 구글의 직원 500여 명은 익명 청원을 통해 "순다르 피차이 최고경영자(CEO)와 경영진은 이스라엘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면서도 팔레스타인인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아마존 역시 앤디 재시 아마존 CEO가 이스라엘 희생자를 추모하는 성명을 내자 일부 직원들이 편향된 처사라며 반발하고 있다.
제프리 소넌펠드 예일대 최고경영자리더십연구소(CELI) 소속 교수는 현재까지 130여개 기업이 하마스와 반유대주의를 규탄하거나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입장을 밝혔다며 "이들 기업은 가자지구에서는 한 푼도 벌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많은 기업들이 이스라엘에서 사업을 하는 만큼 이스라엘 지지에 대한 압박을 더 크게 느낄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김태영 기자 youngkim@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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