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다룬 다큐 ‘크러시’, 한국서 못 보는 이유는

남지은 2023. 10. 23.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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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파라마운트플러스 미국서 지난 17일 공개
제작사 “미국 외 다른 국가와 공개 논의 아직 안 해”
‘크러시’ 예고편. 유튜브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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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29일 발생한 이태원 참사를 다룬 2부작 다큐멘터리 ‘크러시’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파라마운트플러스 미국에서 지난 17일 공개됐다. 미국 지상파 시비에스(CBS) 관계사인 씨 잇 나우 스튜디오가 제작하고, 2017년 일어난 라스베이거스 총기 난사 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 ‘11분’(2022)을 연출한 제프 짐발리스트가 제작자로 참여했다. 제목 ‘크러시’는 좁은 곳에 잔뜩 몰려든 군중을 뜻하는 ‘크라우드 크러시’에서 가져왔다.

한국에서 일어난 참사를 다루는데 23일 현재 한국에서는 볼 수가 없다. 이는 저작권의 문제로, 제작사가 파라마운트플러스 미국하고만 영상 공급 계약을 맺었기 때문이다. 파라마운트플러스 한국은 지난 21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크러시’는 제작사와 오티티가 기획단계부터 함께 작업하는 오리지널 콘텐츠가 아니라 제작사가 작품을 만든 뒤 파라마운트플러스 미국에 판매한 것”이라며 “현재 기준에서 제작사가 미국 외 다른 국가와 콘텐츠 제공을 논의한 것이 없다”고 했다. 저작권 문제로 한국에서 파라마운트플러스 미국 누리집에 접속하면 예고편도 볼 수 없다. 한국 시청자들은 가상사설망(VPN)으로 우회 접속하는 방법으로 이 다큐를 시청하고 있다.

‘크러시’ 예고편. 유튜브 갈무리

한국 공개를 둘러싸고 논란이 일 만큼 이 다큐는 지난해 10월29일 이태원의 그 날 밤을 신랄하게 담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내레이션 없이 현장에 있던 사람들의 증언과 생존자 휴대전화, 시시티브이(CCTV) 영상, 기자회견을 포함, 280개 출처에서 뽑은 1500시간 분량의 영상을 활용했다. 유튜브에 공개된 3분짜리 예고편과 외신 리뷰를 종합하면, 다큐는 생생하지만 그만큼 또 아프게 다가온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해방감을 맛보던 청년들은 이내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에 빠져 죽음의 공포에 휩싸인다. “살려달라”는 외침이 곳곳에서 들리고, 응급구조대원은 “포기할 사람은 포기하고 살릴 수 있는 사람부터 살려야 한다”고 말한다. 긴박했던 순간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친구를 잃은 한 미국인 생존자는 “그날 이후 사람이 붐비는 곳이 두려운 등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고 했다.

이 다큐가 주목한 지점은 참사 그 이후다. 다큐는 묻는다. 잦은 시위로 군중을 다루는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는 대도시 한가운데에서 어떻게 이런 참사가 일어날 수 있었을까. 신고 전화가 11건이나 왔고, 내용 또한 구체적인데도 경찰과 관련 기관이 왜 움직이지 않았는지. 사고 대처와 이후 정부의 대응을 지적하며 그날의 비극이 한국사회의 세대차이와 정치의 문제에서 비롯됐다고 말한다. 제작자인 짐발리스트는 영국 가디언과의 화상 인터뷰에서 “일반적으로 젊은이들을 위한 재미와 환락의 장소로 인식된 지역에 군중을 통제하려고 많은 양의 자원과 권한을 할당하는 것은 정치와 관련 있다”라며 “대규모 군중을 다루는데 경험이 많은 한국에서 2014년 세월호 참사와 지난해 이태원 참사 때는 왜 예외였는지 물어야 한다. 이 두 가지 대규모 비극은 참석자와 희생자 대다수가 젊은 세대였다는 공통점”이라고 했다. 또 한국 정부가 청년 문화와 젊은 시민을 평가절하한다는 의견을 전하며 이 비극이 세대차이를 드러냈다고도 짚는다. 공동 프로듀서인 조시 게이너는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그들은(희생자 가족) 사랑하는 사람들이 어디에서 언제 죽었는지 답을 들을 자격이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잡지 롤링스톤 인터넷판은 리뷰 기사에서 “이 다큐는 정부의 책임 부족을 현장 보도와 사후 분석으로 상세하게 짚으며, 사회 현상도 자세하게 파헤친다”고 평가했다.

‘크러시’를 한국에서 볼 수 없는 것도 아쉽지만, 이태원 참사 1주년인데 국내 오티티에서 만든 관련 다큐멘터리가 없는 것을 지적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 독립영화 다큐멘터리 감독은 “글로벌 오티티나 티브이 프로그램 등 대중적인 미디어에서 관련 다큐를 만들지 않는 것은 아쉬운 대목”이라고 했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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