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능력'이라는 금수저

김관숙 선거연수원 초빙 교수 2023. 10. 23.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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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가지로 세상읽기]<7>
■김관숙 선거연수원 초빙교수
독서 능력, 지적 자산의 토대
가정문식환경이 우수할수록, 아이 읽기 능력↑
이미지 = 최정문
[서울경제]

새로운 수능 시안이 발표되며 또다시 대한민국은 입시 공화국이다. 심심치 않게 터지는 입시 비리나 과도한 사교육 시장을 보며 많은 이들이 교육의 불평등에 대해 성토하고는 한다. 아이들의 진을 빼는 학생종합기록부, 수행평가며 교육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높다. 마태효과처럼 교육에서도 부익부 빈익빈인 세상이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이제는 더 이상 개천에서 용이 나지 않는다고 한다. 과연 그럴까.

예를 들어 보자. 여기 고학력의 전문직 부모가 있다고 치자. 그들은 너무 바빠 새벽에 나가 밤늦게 들어온다. 일찍 귀가한 날에도 집으로 업무를 가져와 처리하거나 그게 아니라면 지친 몸을 위한 간만의 휴식을 즐긴다. 거실을 서가로 만들고 아이들에게 필요한 책이라면 온갖 전집들을 구비했지만 정작 부모는 아이가 무엇을 읽는지, 제대로 읽는지 확인하지 못한다. 그저 책을 잔뜩 사서는 아이에게 읽으라고 밀어 놓고, 몇 권이나 읽었는지 채근하고 겨우 독후감을 확인하는 부모일 뿐이다.

반면 여기 평범한 부모가 있다. 그 역시 고단한 생활인이나 이 부모는 일상의 피곤함을 뒤로하고 저녁이면 기꺼이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고 느낌을 나누며, 주말엔 종종 서점이며 도서관이며 책 나들이도 즐긴다. 가계부는 빠듯해도 매달 몇 권쯤 중고 책을 사는 이 부모는 아이들이 어떤 책을 읽는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 늘 궁금해한다. 당신은 어느 쪽인가. 과연 어떤 부모가 좋은 부모일까.

‘가정문식성 환경’이라는 것이 있다. 문식성이란 글을 이해하고 사용할 줄 아는 능력으로 이것은 단순히 읽고 쓸 수 있는 것 이상으로 실제 생활에서의 의사소통 능력을 의미한다. 아이들은 누구나 가정과 사회에서 실제적인 언어 사용의 경험을 통해 언어를 배운다. 즉, 언어는 실제 의사소통에서 의미를 구성해 보는 과정을 통해 습득하게 되는데, 이때 아이가 속한 가정과 사회 환경에 따라 경험의 수준과 그 결과가 달라진다. 이러한 것들을 문식성 경험이라 하며, 이것이 결국 아이의 언어 습득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다. 인간임에도 동물의 삶을 산 정글북의 모글리가 좋은 예가 되겠다.

결국 ‘가정문식성 환경’이라 함은 아이들이 책을 읽는데 얼마나 좋은 환경인지를 말하는 것으로, 한때 대한민국을 강타했던 단순히 ‘거실을 서가로’식의 외형적인 독서환경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아이들이 책을 읽는 데 있어 가정환경이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를 보는 척도다. 질문과 대화 등 주변과의 상호작용으로 아이의 언어능력을 촉진하기 위해 적절한 환경을 조성해 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다. 결론적으로 어떤 부모를 만나느냐에 따라 또 어떤 독서 환경이 주어지느냐에 따라 아이들의 읽기 능력은 달라질 수 있다. 이렇듯 독서란 개인의 소득은 물론 부모의 학력 격차까지도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지적 자산의 토대가 된다.

부자가 책을 볼 때 가난한 이는 TV를 본다는 말이 있다. 실제로 선진국들의 상류층은 TV를 보는 시간보다 책을 보는 시간이 훨씬 길다고 한다. 그에 비해 우리네 가정은 집에서 책을 보는 시간이 확실히 부족해 보인다. 그러기엔 우리의 TV는 지나치게 재미있으며 자극적이고 매혹적이다. 능숙한 한국어를 구사하며 여러 TV 프로그램에서 낯익은 독일 청년 다니엘은 실제로 독일의 TV는 너무 재미없다고 살짝 고백하기도 했다. 우리는 너무나 친절한 자막이 난무한 오락프로그램과 대단한 스토리의 드라마들이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편성표를 도배하고 있으니 사실 그 누구라도 그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 재간이 없어 보인다.

예로부터 어떤 사회에서도 읽는 인간은 대접받았으며, 최고의 계급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발판이 주어졌다. 그러고 보면 독서 능력, 즉 읽기 능력이야말로 우리 아이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진정한 금수저가 아닐까. 이것은 결코 누구에게 뺏기지도 없어지지도 않는, 쓰면 쓸수록 화수분처럼 넘치고 넘치는 가장 크고 확실한 재산이다. 금수저가 책을 볼 때 우리는 TV를 본다고 말하면 너무 슬픈 비약일까. 당신은 어떠한가. 우리 아이들은 어떤가. 비록 TV는 아니더라도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책이 아니라 스마트폰이거나 컴퓨터가 아닌지. 한 번쯤 우리집 가정문식성 환경을 돌아보자. 이제 우리 아이들에게도 읽기 능력이라는 금수저를 쥐여주자. 읽어야 산다. 읽어야 잘 산다!

김관숙 선거연수원 초빙 교수 libera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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