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전통 ‘룸살롱 원정대’ 왜 생겼나…높으신 분들의 깊은 뜻 있었네 [사-연]
강남에 최초로 등장한 아파트는 영동 공무원아파트였습니다. 1971년 논현동에 12·15평의 소형아파트 12동 360여 가구를 지어 무주택자였던 서울시와 교육위원회, 서울시경 직원들 중 희망자에게 분양했습니다.
논현동 언덕배기에 지어진 5층의 신식 아파트는 인기가 많았을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아파트를 먼저 지어놓고 개발을 시작했기 때문에, 주변은 상점 하나 없이 모래바람만 날리는 황무지였습니다. 그 시대의 사진을 보면, 허허벌판에 아파트 단지만 우뚝 솟아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매일 한강을 건너고 남산을 지나는 고된 출퇴근길에 지친 공무원들은 불편을 못 이겨 아파트를 되팔고 강북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1960년대 들어 서울로 밀려든 상경민들과 도시빈민들의 주거를 위해 대규모로 시민아파트 건설이 시작됩니다. 평수도 좁고 하층민들이 거주한다는 점에서 아파트는 일반 시민들이 선호하지 않는 주거형태였습니다.
1970년 와우아파트가 무너진 사건으로 아파트에 대한 대중의 부정적 인식은 절정에 달했습니다. 하지만 이 인식을 일순간에 뒤바꾼 것이 이듬해 최고급으로 지어진 여의도 시범아파트였습니다. 1970년대 중반을 지나며 아파트는 어느덧 중산층이 거주하는 주택의 상징이 되었고, 모두가 꿈꾸는 주거공간의 표상으로 거듭났습니다. (시범아파트와 관련한 내용은 지난 여의도 편에서 다시 보실 수 있습니다.)
그해 8월 발표된 아파트지구 11개소 중 6곳은 반포·강남·압구정 등 강남에 집중되었습니다. 아파트지구는 영동지구 전체 면적의 약 1/4인 780만㎡(약 236만 평)에 달했습니다. 강남은 대부분이 논밭이었던 만큼 필지가 컸고, 이는 곧 엄청난 규모의 대단지 아파트를 건설할 수 있다는 의미였습니다.
토착 지주들은 울면서 겨자 먹기로 땅을 팔았습니다. 반대로 민간 건설사들은 각종 법적, 제도적 지원을 등에 업고 토지를 염가에 사들이며 부를 축적하게 되었습니다. 건설사가 아니었던 기업들도 이에 뛰어들 정도로 당시 아파트 건설업은 활황을 이뤘습니다.
1970년대 후반 부동산 경기의 과열과 맞물려 논밭이었던 영동지구는 순식간에 고층아파트 단지로 탈바꿈합니다. 그 과정이 채 십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1975년부터 1979년까지 강남에 지어진 아파트는 17,108가구였습니다. 이중 압구정동에 4,760여 가구, 대치동에 6,140여 가구가 건설되었습니다.
1980년부터 1985년 사이에도 압구정, 대치, 개포 등에 총 40,319 가구의 대규모 아파트 단지들이 들어섭니다. 1985년 서울의 주거형태에서 아파트가 차지하는 비율은 26.5%였으나, 강남지역은 72.7%나 되어 ‘아파트 공화국 강남’으로 자리매김합니다.
하지만 이는 중앙부처와 협의되지 않았던 발표였고, 이전 예산 등의 문제와 함께 관계 공무원들의 상당한 반발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결국, 강남으로 이전이 성사된 것은 서소문과 정동 일대에 있던 대법원과 서울중앙지방법원, 검찰청뿐이었습니다. 그마저도 진행이 지지부진해 10년여의 시간이 지난 후에야 이전이 완료되었습니다.
현재의 삼각형 모양 터미널 건물이 완공된 것은 1981년이었습니다. 반포 아파트지구와 터미널에 대해서는 이후 연재에서 조금 더 자세히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는 2개월 후 ‘특정시설제한구역’의 발표로 이어지는데, 이 제도에 따라 종로 및 중구 전역, 용산구·마포구의 기존 시가지, 성북구와 성동구의 일부지역까지 포함한 28㎢(840만여평)에서 백화점이나 도매시장, 공장 등의 신규설치가 일절 불허되었습니다.
큰 타격을 입은 강북의 유흥업소들은 재빠르게 발을 옮겼습니다. 중구 다동·무교동을 중심으로 한 유흥주점과 종로구 공평동·인사동 등을 중심으로 한 접객업소들은 강남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강남은 아무런 규제가 없을 뿐 아니라 취득세 등의 세금까지 감면혜주는 혜택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신사동과 논현동, 역삼동 일대에 엄청나게 많은 접객업소가 입지하게 된 배경입니다.
순식간에 신흥 유흥가로 변한 영동 일대. 밤만 되면 이곳으로 이전한 단골집이나 신흥 업장을 찾는 ‘밤 문화 원정대’들이 강을 건너왔습니다. 이처럼 저녁 제3한강교(한남대교)에 행렬을 이루는 ‘원정 유흥’은 당시의 신흥 풍속도로 떠오를 정도였습니다. 서울시 통계를 살펴보면 지금도 여전히 강남구는 서울 25개 구 중에서 유흥주점이나 단란주점 등 유흥업소의 수가 압도적 1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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