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성 작가 “AI는 창작의 도구가 아닌 동반자”

박제성 서울대 조소과 교수
내달 25일까지 갤러리508서
기술과 교감한 작품들 펼쳐

인공지능(AI)이 단순한 도구가 아닌 창작의 동반자로 격상될 수 있을까?

증강현실(VR)과 로봇, AI 등 첨단 기술을 활용하며 설치, 조각 등 다양한 매체의 미디어아트 작품을 선보여온 박제성 작가(서울대 조소과 교수·사진)가 지난 7일부터 내달 25일까지 ‘갤러리508’에서 열리는 전시 ‘시의 기억’에서 던지는 질문이다.

전시는 박 작가가 AI와 협업해 만든 회화를 보여준다. 박 작가는 추상적 그림을 그리고 이에 대한 감정을 시로 쓴 다음 AI가 이 시와 그림을 해석해 새로운 이미지로 만들어내게 했다. 박 작가가 쓴 시를 AI가 이미지로 재구성한 뒤 박 작가가 채색을 더한 작품도 전시됐다. AI가 박 작가와 협업해 그려낸 이미지는 멀리서는 추상적 회화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세밀하게 묘사된 환상적인 사물들이 나타난다.

‘시의 기억’ 특징은 AI가 만들어낸 이미지들에 작가가 최대한 손을 대지 않았다는 것이다. AI를 창작의 동반자로 보고 AI가 그림과 시를 재구성하는 과정을 존중했다는 설명이다. 박 작가는 “AI가 구현한 이미지에 인간의 개입 정도를 높이면 더 논리적이고 완성도 있는 작품을 만들 수 있지만 손을 대지 않는 것이 AI와 소통하는 본연의 방법이라고 생각했다”며 “인간의 사고와 감정도 사실 비논리적이고 해체적인 측면이 강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박 작가가 작품의 재료로 AI에게 논리적 글이 아닌 시를 제공한 것 역시 비논리적이고 해체적인 인간의 특성을 투사하기 위해서였다. 박 작가는 AI가 비논리적 데이터를 충분히 학습하면 해체적인 인간의 언어도 이해하고 표현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박 작가는 “3년 전 AI로 영상 작업을 했을 때 AI가 당시 8살이던 아들과 판단력이 비슷하다고 느꼈는데 GPT 등이 출연하며 AI의 수준이 몇년새 비할 수 없이 발전했다”며 “조만간 AI가 창작의 동반자로 확고히 자리잡는 시대가 올 것 ”이라고 밝혔다.

박 작가가 첨단 기술을 활용하는 다른 작가들과 구별되는 차이점은 이처럼 기술과 인간의 교감에 방점을 두는 것에 있다. 박 작가는 “기술의 발전은 인간의 언어와 감정을 바꾸고 그 속도는 현대 사회에서 점차 빨라지고 있다”며 “기술과 함께 변화하는 인간의 삶을 직시하고 생각 거리를 던지는 것이 예술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AI와의 소통은 타인과의 교감이기도 하다. AI가 창작에서 활용하는 데이터들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타인이 축적해 온 기억이기 때문이다. 회화, 조각, 문학 등 인간의 모든 창작물 역시 온전히 작가 혼자서 창조해낸 것이라고 할 수 없지만 타인의 데이터를 활용하는 AI는 예술 작품의 주체가 누구인지에 대해 선명한 질문을 던진다.

김형주 기자·사진 한주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