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와 대화 이어…‘조흥은행 매각 토론회’도 열릴 뻔했다
2003년 초 조흥은행과 신한은행 사이에 매각 협상이 진행 중이었는데 매각 여부와 방법을 놓고 온갖 주장이 난무했다.
5월7일(수) 9시 수석회의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조흥은행 매각 과정에 정부 개입이 없는지 질문을 했다. 권오규 정책수석이 단호한 어조로 그런 일은 절대 없다고 거듭 답하자 문재인 민정수석이 “그렇게 단정할 일이 아니고 예금보험공사의 개입 증거가 있다”고 반박했다. 조윤제 경제보좌관이 “가치평가는 기술적 문제인데 부실하면 대손충당금을 더 많이 쌓아야 한다. 얼마나 쌓느냐가 핵심이다. 매각이 안 되면 나라 경제가 곤란하다. 조흥은행 매각은 매우 중요하므로 반드시 성사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노 대통령은 “그렇게 말하면 안 된다. 누구는 매각을 반대하느냐, 제대로 팔아야 한다는 뜻이다”라고 지적했다.
5월22일(목) 9시 수석회의에서 노 대통령이 조흥은행 매각 관련 토론회를 대통령이 주재하겠다고 말했다. 김태유 과기보좌관, 조윤제 경제보좌관과 내가 만류해서 정책실 주관 토론회로 낙착됐다. 대통령 검사들과의 대화에 이어 대통령 조흥은행 매각 토론회도 할 뻔했다.
5월26일(월) 4시30분부터 6시까지 수석보좌관 회의가 정책실장실에서 열렸다. 유인태 정무수석은 수석회의 배석자가 너무 많아 언론 누설 위험이 크고 소신껏 이야기하기도 어려우니 금요 방담 식으로 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문재인 민정수석이 최근 이용득 금융노조 위원장을 만났는데 조흥은행 문제로 5월29일 파업이 예고돼 있지만 만일 정책실장이 토론회를 연다면 파업을 취소하겠다는데 어떠냐고 내게 물었다. 금융전문가인 조윤제 경제보좌관의 의견을 물으니 찬성하고 반대자가 없어 그렇게 하기로 했다. 조흥은행 출신인 이남순 한국노총 위원장에게 전화해 조흥은행 토론회를 열겠다고 했더니 잘 됐다고 하면서 “이용득 금융노조 위원장은 노동운동하다가 두차례 감옥 간 뒤 막 복권되어 사실 싸우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5월28일(수) 4시 청와대 정책실에서 금융문제 토론이 있었다. 이동걸 금감위 부위원장, 재경부의 김석동, 변양호 국장이 참석했다. 에스케이(SK)글로벌 생존을 주장하는 김석동과 청산을 주장하는 이동걸의 견해가 정면 대립했다. 조흥은행 매각 문제도 다뤘다. 금감위와 재경부는 그해 1월14일 저녁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와 이용득 금융노조 위원장 회동(오리식당 금강산)에서 조흥은행 문제와 관련해 ‘노조가 동의하는 제3자가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실사하되 독자생존 여부를 포함하며 신한지주의 인수능력도 평가한다’고 합의했는데 공식 발표되지 않아 온갖 소문과 억측을 낳고 있다고 보고했다.
5월29일(목) 10:30 이남순 한국노총 위원장의 대통령 면담에 배석했다.(백악실) 조흥은행 매각 문제는 과정이 정당해야 결과도 정당하므로 6월2일 청와대 토론회를 열어 결론 내리는 것으로 다시 확인했다. 이남순 위원장이 “대통령이 민주노총 사람들만 중용하고 한국노총을 소외시켜 섭섭하다”고 하자 노 대통령은 “민주노총이 아니고 대선 때 정책에 관해 도와준 사람들”이라고 답했다. 그밖에 하이닉스 상계 관세, 한전 배전 분할, 버스와 택시 문제도 의논했다. 5월30일(금) 오후 노 대통령이 조흥은행 매각 건이 어떻게 돼 가는지 전화로 묻기에 매각 쪽으로 결론 날 공산이 크다고 답하니 “그러면 안심입니다”라고 말했다.
6월2일(월) 3시 청와대 서별관 조흥은행 토론회 사회를 보았다. 정부 쪽에서 재경부 김광림 차관, 이동걸 금감위 부위원장, 노조 쪽에서 이남순, 이용득 위원장, 그리고 조흥은행 관계자, 전문가들이 참석했다. 재경부 변양호 금융정책국장의 경과보고에 이어 이용규 조흥은행 노조 부위원장이 은행 민영화에 찬성 발언을 했다. 연세대 박상용 교수가 독자생존 방안과 점진적, 단계적 매각 후 일괄 매각하는 방안을 설명하면서 결국 은행에 투입된 공적자금의 조기 회수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신한은행은 소매(가계)금융, 조흥은행은 기업금융에 각각 장점이 있으므로 두 은행 합병은 시너지 효과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인천대 이찬근 교수는 매각에 부정적이었다. 은행이 대형화하면 독과점 폐해가 우려되고, 장기적으로 기업금융이 하락 추세여서 대형 은행의 등장은 바람직하지 않아 단계적 민영화가 옳다고 주장했다. 정승일 박사도 매각 반대론을 폈다. “조흥은행이 신한은행과 합병하는 이유는 국민은행이 시장지배력을 갖고 덤핑 공세를 취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규모의 경제를 살리자는 논리인데 지식기반경제에서는 규모보다 핵심능력의 개발과 공정경쟁, 유효경쟁이 중요하다.”
최흥식 박사가 반론을 폈다. “민영화는 빠를수록 좋다. 그러나 적어도 5~6년 소요될 것이다. 제1원칙으로 정부가 출자한 현금 회수의 극대화가 기본이고, 금융산업 경쟁력 제고나 독과점 폐단 문제는 부차적이다. 조흥은행 매각은 실보다 득이 크다. 부분매각이냐 전체 매각이냐는 큰 의미가 없고 가격 문제는 당사자 간의 문제다. 은행산업은 카드대란, 에스케이글로벌 사태 때문에 연말 상황 악화가 우려되므로 서두르는 게 좋다.”
홍석주 조흥은행장도 발언했다. “매각 협상이 8개월이나 지속되는 바람에 어려움이 많고 시장에서 이미지가 악화하고 있어 매각 여부의 조기 종결이 바람직하다. 은행은 인적 자원이 전부다. 조흥은행 106년 역사 속에 8천명 직원이 자부심을 갖고 일해 왔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희망이 줄어들고 상실감이 커지고 있다.”
이인원 예금보험공사 사장은 이렇게 말했다. “가급적 비싸게 팔아 공적자금 회수하는 게 목표다. 원매자가 있을 때 팔아야 한다. 부분 매각, 할인 판매도 좋다. 은행을 정부가 소유하면 효율성이 저하하므로 외국의 시각에서는 은행 민영화를 환영한다. 만일 신한지주와의 매각 협상이 결렬되면 제일은행이 인수 의향이 있다.”
이남순 위원장은 “매각 불발 시 국제신인도가 저하한다는 증거는 없다. 일본의 경험을 보더라도 은행 대형화 논리는 근거가 약하다. 공적자금 회수를 주장하지만 조흥은행의 책임은 작고, 인력을 40%나 감축하며 뼈를 깎는 구조조정 노력을 해왔다. 신한지주의 자금능력도 의문스럽다. 지금은 매각 시기가 아니다. 홍석주 은행장의 발언은 완곡한 표현이다. 매각 과정이 이미 공정성, 투명성, 일관성을 상실했으므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제3자 실사 취지 속에는 독자생존 가능성도 포함돼 있는데 무시되고 있고 노조를 배제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허흥진 조흥은행 노조위원장은 “노조원 정서를 보면 독자생존에 대한 믿음에서 40%나 인력 감축에 동의했고 4년 간 생존을 위해 노력해 왔는데 2002년 1월 갑자기 방침이 변경됐다. 1997년부터 신한은행 쪽에서 ‘조흥은행은 곧 망하니 옮겨라’는 말이 나왔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이동걸 부위원장은 “독자생존의 정의는 다양한데 2000년 상황과 현재 상황은 다르다. 지금 독자생존 논의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난상토론은 장장 세시간 반이나 걸려 끝났다. 여러 이해집단과 전문가들이 충분히 의사표시를 했고 결국 노무현·이용득의 1.14 합의대로 실사 후 매각으로 결론 났다. 그 뒤 100년 역사의 조흥은행은 후발 신한은행에 합병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다만 100년 역사의 조흥은행이라는 이름을 살리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이용득 위원장은 그 뒤 한국노총 위원장을 세차례나 맡으면서 종래 보수적이던 한국노총을 개혁하는 선봉장이 됐다. 7월4일(금) 9시 수석회의에서 노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조흥은행 건은 얻어맞을 이유 없이 얻어맞았다. 정책에서 과정 관리가 중요함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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