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XY한 대법원][단독]올해 서울고법 신규보임 여성 법관 ‘0명’이었다
올해 서울고등법원에 새로 보임된 ‘고법 판사’ 15명 중 여성 법관은 한 명도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고등법원 부장판사 제도를 폐지한 뒤 선발성 보직으로 고법 판사를 뽑고 있는데, 여성은 한 명도 포함되지 않은 것이다. 이를 두고 법원 내부에선 큰 논란이 불거졌다. 법관 다양화에 대한 미흡한 인식과 여성 법관에 대한 암묵적 차별이 드러난 사례라는 지적이 나왔다.
23일 경향신문이 지난 2월 법관 정기인사 내역을 분석한 결과 서울고법에 신규 보임된 판사 총 15명 중 여성 법관은 전무했다. 최근 5년간 서울고법 신규 보임 판사 중 여성이 0명인 사례는 올해가 유일하다.
지난해에는 서울고법에 새로 배치된 판사 7명 중 2명(28.5%)이 여성이었다. 2021년엔 12명 중 5명(41.6%), 2020년 19명 중 6명(31.5%), 2019년 30명 중 12명(40%)이 여성이었다.
전국 고등법원으로 넓혀봐도 올해 신규 보임 고법 판사 중 여성은 소수였다. 전체 26명 중 여성 법관은 서울고등 인천재판부 1명, 광주고법 1명, 수원고법 2명 등 총 4명에 그쳤다. 비율로 보면 15.3% 수준이다. 매년 신규 보임되는 고법 판사 중 여성 법관의 비율은 2020년 37.5%까지 올랐다가 2021년 29.6%, 2022년 20.0%로 줄어드는 추세다.
올해 서울고법의 판사 신규 보임 결과를 두고 법원 내에선 ‘어떻게 여성이 0명일 수 있느냐’는 말이 나왔다. 올해 고법 판사 신규 보임 주요 대상인 사법연수원 36·37기는 처음 법관으로 임용될 때만 해도 전체 인원 중 여성 비율이 각각 48.4%(47명), 69.7%(67명)에 달했다. 37기의 경우 연수원 수료 시 수석과 차석을 모두 여성이 차지하기도 했다.
선발성 보직을 논의·결정하는 법관 인사위원회가 여성 법관을 고려하지 않은 게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됐다. 법관 다양성이라는 가치를 고민하기보다 정해진 기준에 따라 기계적으로 의사결정을 내린 결과라는 것이다.
출산·육아 등 부담을 지는 여성 법관이 평정에서 불리한 처지에 놓일 수밖에 없다는 해석도 나왔다. A 판사는 “재판 업무는 남성과 여성이 비슷하게 하더라도 법원 행사에 얼굴을 더 자주 비추는 남성 법관이 있다면 인사권자가 좀 더 챙기기 마련”이라며 “이런 게 한 두 번 쌓이면 평정에 간극이 벌어지고 선발성 인사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했다. B 판사는 “이런 것을 법관의 능력 차이로 볼 수 있는지 의문”이라며 “평정이라는 게 과연 공정할까라는 생각도 든다”고 했다.
사법행정 업무와 의사결정을 내리는 자리가 남성 중심으로 돌아가는 법원 구조 역시 여성 법관이 좋은 평정을 받기 어려운 배경 중 하나로 꼽힌다.
C 판사는 “자질 중 조직적합도를 평가하면 법원 행사나 위원회에 참석했는지, 바쁜 와중에도 시간을 쪼개 조직에 얼마나 기여했는가를 살펴볼 것”이라며 “여성 법관은 아무래도 남성보다 이런 자리에 참여한 경험이 적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경향신문이 최근 5년간 서울고법에 신규 임용된 남성 법관의 이력을 살펴본 결과 법원행정처 심의관이나 기획법관, 파견 등 경험을 쌓은 경우가 여성보다 훨씬 많았다.
법원은 이번 일을 계기로 대책 마련을 시작했다. 지금까지 매겨온 평정 방식은 공정한지, 어떤 기준을 적용해야 할지 논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법원 안팎에서 이어졌기 때문이다. 고법 판사의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해 어떤 기준을 추가로 적용해야 할지, 육아휴직을 쓰는 법관은 앞으로 점점 많아질 텐데 이런 부분을 평정에 어떻게 반영하고 조율할지 등이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김상환 법원행정처 처장은 지난 10일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대법원 국정감사에서 이 문제에 대해 “법관인사위원회에서 이 부분을 의제로 삼아 논의하도록 하겠다”며 “여러 고민을 들어 판단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경향신문의 기획시리즈 [이토록 XY한 대법원]의 XY는 남성의 성염색체를 말합니다. 헌정 사상 최초의 여성 대법관이 탄생한 지 20년이 됐지만 여전히 대법원은 남성 중심적으로 구성돼있습니다. 대법관 다양화와 관련한 더 많은 기사를 읽고 싶으시면 아래 링크로 들어오세요.
링크: https://m.khan.co.kr/series/articles/as378
김희진 기자 hjin@kyunghyang.com,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김혜리 기자 ha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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